달린다, 동해로
달린다, 동해로
  • 곽서희 기자
  • 승인 2021.03.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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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카와 함께하는 로드트립
빠르게 달린다, 동해로
빠르게 달린다, 동해로

일상에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액셀을 밟았다. 

 

여행경로: 서울→7번 국도→동해 추암 해수욕장→새천년도로→삼척 원평 해수욕장→신남 해수욕장→울진 후포리 벽화마을

●등뼈를 타고

동해, 동, 해, 동─해. ‘동해’를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 본다. ‘동’에서 드넓은 바다로 98톤의 고래가 푸웅덩 잠수했다가 ‘해’에서 고요한 바다 표면이 반짝인다. 혀끝에 파란이 인다. 그게 좋아서 핸들을 잡았다. 어디로든 떠나야 했던 매일도 있었고. 간절한 건, 그저 시동을 거는 일. 버튼을 누르자 엔진이 드릉드릉, 뛸 준비를 한다. 액셀을 밟는 발에 망설임이 없다. 바퀴가 시원하게 구른다. 서울은 빠르게 뒤로 남겨졌다.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추암 해수욕장의 전경. 파도가 철썩인다
추암 해수욕장의 전경. 파도가 철썩인다

서울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동해고속도로를 거쳐 동해 IC에서 7번 국도로 갈아탄다. 휴전선부터 강원도를 지나 부산까지, 한반도의 척추를 타고 이어지는 513.4km의 국도다. 별명은 ‘등뼈 국도’. 강원도부터 경상북도 포항까지의 구역에선 동해가 내내 곁에 머무른다. 출발한 지 3시간째. 왼편에 바다를 놓고 한참 달리다 핸들을 꺾었다. 창문에 바다가 물든다. 동해 추암 해수욕장이다. 두 손을 푹 담그면 손바닥이 새파랗게 염색될 것만 같은 바다가 지금, 눈앞에 있다. 생크림 같은 파도를 울컥 뿜어내면서.

뾰족한 연필심을 연상케 하는 동해 촛대바위
뾰족한 연필심을 연상케 하는 동해 촛대바위

해수욕장 옆으로 난 해파랑길 33코스 해물금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오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이 된 곳. 추암 해수욕장의 명물, 촛대바위다. 일출 명소로 이름난 그는 경계선에 있다. 바다를 바라본 방향에서 바위의 왼쪽은 동해시, 오른쪽은 삼척시다. 촛대 같지만 뾰족한 연필심도 떠오른다. 누가 깎았는지 참 잘도 깎아 놨다 했는데, 범인은 바다였다. 바다는 수백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을 조각칼 삼아 동해의 석회암을 이리저리 쓸어 냈다. 그 정성스런 작품에 반한 1호 팬은 조선 세조 시절의 한명회. 강원도에 파견됐던 그는 이 지역의 기암괴석에 반해 촛대바위를 포함한 일대를 능파대, 그러니까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 같은 곳이라 불렀다. 팬심 가득한 애칭인 셈이다. 


보드라운 걸음(미인은 아니지만)으로 언덕을 내려온다. 칼바위, 형제바위, 거인바위, 그리고 아직 코끼리나 양머리 따위가 되지 못한 무명의 암석기둥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미니 동굴이 된 암석도 보인다.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날름 들어왔다 나간다. 거대한데 신비롭기까지 한 갤러리에, 관람료도 안 내고 염치없이 놀다 가는 기분이다. 아티스트에게 존경을 표하고 돌아선다. 바람이 구깃구깃한 소리를 냈다.

바다를 감싸는 동해 드라이브 코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다
바다를 감싸는 동해 드라이브 코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다

●소개팅에 나섰다


다시 달린다. 추암 해수욕장에서 차로 4분. 잠깐 새에 삼척 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잇는 새천년도로에 닿았다. 새천년도로는 소개팅 주선자다. 여행자와 동해 사이에서 수줍은 둘의 손을 잡아끈다. 예쁘지 않느냐고,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았다고. 그러면 그 둘은 못 이기는 척 마주 앉아 4.8km의 구간동안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길처럼 울렁이는 마음으로. 2000년에 건립된 이후 21년간, 새천년도로는 주선자 역할을 썩 잘해 왔다. 동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행객들도 따라서 늘어만 갔다. 

창문을 열면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새천년도로
창문을 열면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새천년도로

드라이브 코스지만, 경주마처럼 마냥 앞만 보고 내달리는 도로는 아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소망의 탑, 10여 개의 조각품이 전시된 조각공원, 해안가를 감상할 수 있는 쉼터 등 잠시 차를 멈추고 숨 돌리기 좋은 스폿이 곳곳에 있다. 쉼표 좀 찍어가며 달려도 괜찮다는,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다. 자동차 소리만 요란한 도로는 더더욱 아니다. 2014년에 삼척시는 새천년도로를 따라 보행 데크를 설치했고, 2017년 12월에 미개통 구간이었던 나머지 800m에 군 경계 철책을 철거하고 보행 데크를 완전히 개통했다. 그 길 위로 수많은 소개팅 당사자들은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그렇게 동해와 신나게 사랑에 빠지고 있는 중이다. 

비릿한 향기가 가득한 부둣가에 멈춰섰다
비릿한 향기가 가득한 부둣가에 멈춰섰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부쩍부쩍 다가온다. 이번 드라이브 여행에서 조수석은 내내 바다의 차지였다. 7번 국도부터 새천년도로까지. 당연해질 법도 했는데. 이 세상엔 지겹도록 보아도 좀체 지겨워지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몰래 전율했다.

7번 국도 드라이브는 좀체 지겨워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
7번 국도 드라이브는 좀체 지겨워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

●귀가 길어지는 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삼척항에서 출발한 지 20분도 안 됐을 때였다. 삼척 원평 해수욕장의 야영장 바닥엔 차박 용품들이 어지러이 깔렸다. 원평 해수욕장의 바다를 품은 채 잠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평마을회에 자릿세만 지불하면 끝.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개수대를 갖췄고 텐트 대여 및 전기 설치도 가능하다. 게다가 비수기에는 무료로 노지 캠핑도 할 수 있으니, 캠핑을 즐기기엔 사실 이만한 장소도 없다. 

차의 뒤칸에 잠잘 공간을 만들고 챙겨 온 담요와 이불을 폈다. 노란 꼬마전구, 랜턴, 장작불, 몸을 데워 줄 따뜻한 음료와 간식까지 준비하니 금세 아늑한 숙소가 생겼다. 갓 쪄 낸 알감자처럼 포근포근하다. 자는 문제는 해결됐으니, 걷는다. 원평 해수욕장 뒤로는 소나무길이 길게 뻗어 있다. 워낙 울창해 한여름에도 햇살을 막기 위한 별도의 타프(방수 코팅된 나일론 가림막)가 필요 없을 정도다. 알싸한 바닷바람이 분다. 조개와 솔방울이 뒤섞여 발밑에서 까드득 까드득, 깨어졌다. 걸으며 바란다. 모든 것에 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파도가 치는 것, 바퀴가 굴러가는 것, 부릉부릉 소리를 내는 것, 갈매기가 와아와아 하고 나는 것, 솔방울이 통─ 낙하하는 것, 그리고 웃음소리들.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운동성이 마음을 토닥인다. 그들은 무언가를 쓸고, 훑고, 밟고, 그 위를 덮고, 자국을 남기고, 그러면서 이곳에 머물 낯선 이들을 밤새 위로할 거였다. 


차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물살이 물살을 덮치고, 또 다른 물살이 물살 위에 겹쳐진다. 대화가 없어도 공백이 없다. 영원히 음소거가 안 될 것 같은 밤. 핸드폰 녹음기를 켰다. 언젠가 잠 못 드는 밤이면 소중히 꺼내어 볼 소리였다. 작은 파도의 소리에도 한껏 예민해지고 싶다. 귀가 자꾸만 길어졌다. 

삼척 신남 해수욕장의 빨간 등대, 그 뒤로 펼쳐진 바다
삼척 신남 해수욕장의 빨간 등대, 그 뒤로 펼쳐진 바다

 

●어항 속 낚시


어항이었다. 애정을 담아 오목조목 잘 꾸민 거대한 어항. 암초는 여기에 가지런히 두고, 조개조각도 솔솔 뿌리면 예쁘겠어. 물은 신선한 새것으로 갈아 줘야지. 그렇게 누군가 홀로 한참을 중얼거리며 공들인 어항 같은 곳. 공룡 뼈 같은 마른 나무토막도 소품처럼 느껴지던 곳. 삼척 신남 해수욕장이었다. 

낚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낚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는데, 얕은 건 둘째 치고 물이 정말 맑다. 깨끗하게 정수된 새 물을 부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작은 바위 위에선 아저씨 한 분이 낚시에 열을 올린다. 한동안 잠잠해 세월을 낚으시나 보다 했더니, 그의 낚싯대가 곧 휘청인다. 은색 물고기가 날아올랐다. 우럭이다. 신남 해수욕장은 낚시 덕후들의 숨은 성지다. 내가 아니고, 5년 동안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낚시하러 여길 찾고 있다는, 그새 자연산 우럭 두 마리를 낚은 아저씨의 말이다(때론 공인된 정보보다 한 사람의 퇴적된 경험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운이 좋으면 농어도 종종 잡히고 미역도 많다고. 오늘 저녁상엔 우럭과 다진 마늘을 가득 넣고 팔팔 끓인 매운탕 한 사발이 올라갈 거라고 했다. 낚시는 모르겠는데 매운탕이 좀 끌린다. 언젠가 난데없이 낚시에 취미가 붙으면 기억해 두고 와 볼 일이다. 힘이 덜 빠진 우럭이 바구니에서 퍼덕인다. 

작은 어촌 마을을 지나 차창 밖으로 마주한 바다 그리고 등대
작은 어촌 마을을 지나 차창 밖으로 마주한 바다 그리고 등대

●말끝의 무게

 

고치고 싶은데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것 같다’는 말을 달고 사는 문제. 나 배고픈 것 같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걔도 참 문제인 것 같더라.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은. 여지가 있는 애매한 말들. 그런데 이상하다. 울진에선 말끝에도 무게가 실린다. 바다가 참 예쁘다, 전복해물탕이 맛있네, 전 여기가 좋아요…. 추가 대롱대롱 매달린 듯하다. 없던 확신이 자꾸 생긴다. 

바람, 파도, 하늘. 모든 것이 잔잔했던 한때
바람, 파도, 하늘. 모든 것이 잔잔했던 한때

울진 후포리 벽화마을에선 여지를 둘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게 분명했다. 즐겁다는 감정까지도. 후포항에서 도보로 5분. SBS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의 애청자였다면 더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던 후포리는 TV 방영 후 벽화마을로 인기를 끌었다. 30분이면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마을이지만 심심하단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부터 신석기 유적관까지 도처가 볼거리다.

이른 새벽, 문어 한 마리를 망에 넣고 있는 어민
이른 새벽, 문어 한 마리를 망에 넣고 있는 어민

마음이 자꾸 편안해지는 게 의아했는데, 그건 대체로 벽화에서 비롯된 거였다. 후포리의 일상은 벽에 기록됐다. 오징어 말리는 아주머니, 진달래꽃, 감 따는 아이, 갈매기와 바다, 연 날리는 아이들. 벽화에 후포리의 삶이 반영됐고, 후포리의 삶엔 벽화가 함께했다. 빨래 너는 그림 뒤로 진짜 빨래가 널려 있고, 문어와 그물이 그려진 집에선 엉킨 그물을 잘라 내고 있는 할머니가 잔기침을 한다. 날씬한 고양이 그림 옆으로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뚱뚱한 고양이가 벌렁 드러누워 있다. 아무리 작은 골목이라도 벽화가 없는 곳은 없고, 마을 사람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벽화와 다르지 않게. 이렇게밖에, 나는 후포리에 대한 나의 다정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달리 찾지 못했다. 

울진 후포리 벽화마을, 오징어가 가득 걸려 있다
울진 후포리 벽화마을, 오징어가 가득 걸려 있다
조금은 바랬지만 아직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있다
조금은 바랬지만 아직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있다

후포리의 하늘이 붉어진다. 돌아갈 시간이다. 뒤도 보지 않고 떠나왔던 나의 도시, 나의 일상으로. 비행기 대신 차에 오른 건, 아마도 기회였다. 밖으로만 뻗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내륙으로,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으로 모을 수 있었던 기회. 그렇게 건 시동의 결과가 여기, 동쪽 바다였다. 서울의 일상엔 브레이크를, 바다로는 액셀을 밟아야 할 날이 잦아질 것만 같다. 서울까지 350km. 시동을 건다. 세상에 아쉬움 없는 여행은 없다고 생각하며. 기름을 더 넣어야겠다. 

골목 앞 놓인 자전거는 어릴적 기억을 간지럽힌다
골목 앞 놓인 자전거는 어릴적 기억을 간지럽힌다

▶TRAVEL INFO 


TRANSPORTATION 
쏘카 차량 대여 | 기분 전환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하나. 여행길에 차를 렌트하는 것이다. 새로운 차로 새로운 길을 달리다 보면 기분마저 신선해질 것. 드라이브 여행시 차량을 대여하고 싶다면, 역시 쏘카(SOCAR)가 제격이다. 최소 30분부터 10분 단위로 예약이 가능하며, 소형차부터 SUV, 승합차, 전기차까지 차종도 다양해 골라 타는 재미가 있다. 서울에서 동해까지는 차로 약 3시간이 소요되며, 서울-동해 구간은 KTX로 이동한 뒤 동해에 하차해 차량을 대여하는 방법도 있다.

요금: 주중 일일 대여 요금(소형차 기준) 5만1,000원부터, 주말 7만1,600원부터
홈페이지: www.socar.kr

 

▶PLACE

동해 해암정
촛대바위에서 내려오면 기암괴석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해암정이 있다. 1361년에 지어진 정자로, 송시열이 함경도 귀양길에 들러 글을 남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

삼척 장호항
197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항이다. 바다낚시를 즐기기 위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촌 체험 마을도 조성돼 있다. 

울진 은어다리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은어 두 마리가 조각된 다리다.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다리로, 천천히 산책하기에 좋다. 주변 관광지로는 울진 엑스포 공원, 왕피천 케이블카, 울진 아쿠아리움 등이 있다.

 

▶FOOD

동해횟집
추암 해수욕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바다 뷰가 훌륭하다. 전복을 비롯한 다양한 회가 담긴 그릇에 살얼음 가득한 새콤한 물회 소스를 부어 먹는 전복물회가 별미. 날씨가 좋다면 바깥 테라스 좌석을 이용하길 추천한다.
주소: 강원 동해시 촛대바위길 22  
전화: 033 521 3250
가격: 전복물회 2만원, 곰치국 1만5,000원

바닷가횟집
반찬부터 합격이다. 오징어젓갈과 미역줄기볶음에 이미 밥 한 공기가 홀랑 비워진다. 오징어와 홍합, 전복, 조개 등이 푸짐하게 올라간 전복해물탕이 인기 메뉴. 회는 포장도 가능하다.
주소: 강원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길 80 
전화: 033 572 9939
가격: 전복해물탕 1인 1만5,000원(2인 이상 주문 가능), 매운탕 小 3만원

 

글 곽서희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쏘카(SO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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