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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비행기 화재가 더 위험한 이유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1.04.01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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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검색은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을 싫어하게 할 만큼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내 소지품이 위험물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할 때는 짜증까지 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마 생각이 좀 달라질지도.  

배터리 등 잠재적 위험물을 많이 싣는 화물기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배터리 등 잠재적 위험물을 많이 싣는 화물기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융통성?

10여 년 전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 출장 일정을 마치고 이날도 귀찮기 짝이 없는 수하물 검사를 통과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엑스레이를 그대로 통과할 줄 알았던 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내 짐은 검사관의 손에 들려 나왔다. 가방을 뒤적뒤적하던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은 ‘아주 작은 병(25ml)’에 담긴 공작용 도료 두 개였다. 싸게 구했다고 뿌듯해했는데 지금 ‘검거’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사 온 경우가 몇 번 있었고 게다가 달랑 두 개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도료가 인화성 물질이라며 인정사정없이 압수해 버렸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에 두툼하고 단단해 절대 깨질 일도 없는 용기에 담긴 것인데 위험물이라니….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속으로 ‘융통성이 이렇게 없어서야….’ 중얼거리며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조치가 사실 매우 고마운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반대로 한 번은 미국 출국 때 아이의 가방이 짐 검사에서 걸렸는데 ‘문제될 것이 없는데?’라며 의아해하던 차, 작은 금속제 장난감 자동차들이 문제였다. 가방 내에 흩어져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하필 그 시점 한 뭉텅이로 몰리자 이게 엑스레이로는 졸지에 정체불명의 위험물처럼 보였던 것. 앞서 압수당한 도료도 다른 물건과 겹쳐 있거나 했다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냥 넘어갔을 수 있단 말이다. 사실 의외로 엑스레이 짐 검사는 완벽하지 않다. 다시 말해 보안검색이 완벽치 않아 승객 전체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이제 위험물을 가려내는 일은 승객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이제 위험물을 가려내는 일은 승객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자동차와 다른 비행기 

 

고속도로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차에서 불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얼른 차를 세우고 내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간단한 절차임에도 큰 참사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비행기에서의 화재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일이다. 비행기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기내 화재도 잘 대응하면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비행기에도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것이 있을 테니 불이 확산되기 전에 끌 수 있을 테고. 혹시 안 되면 근처 공항에 빨리 비상착륙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하지만 비행기 화재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예전 비행기 화재는 대개 애연가들에 의해 발생했다. 즉, 담뱃불이 주 원인이었다. 나중에 금연이 대세가 되자 승객들은 몰래 담배를 피고 꽁초를 화장실 등에 버려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해지기도 했다. 반면 최근의 화재는 대개 화물칸에서 발생한다. 필수품이 된 전자기기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 원인이다. 물론 화물칸에도 화재 감지 장치와 소화 장치가 있다. 하지만 화물칸 화재의 특성 중 하나는 발화물이 배터리를 포함한 위험물인 경우가 많아 일단 발화가 되면 급속히 확산되고 불길이 강력해서 진화가 쉽지 않다. 또 화재가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특히 화물칸의 경우 수증기 등이 화재경보기를 오작동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 심지어 불이 난 건 맞는지조차 확인이 쉽지 않다.

 

비행기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연기나 열기 등의 화재 징후가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경보기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조종사 입장에서는 이 경보음이 진짜 위험한 화재인지 오동작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오작동의 사례도 종종 있기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동반하는 비상착륙을 무턱대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화재로 확인을 하더라도 강력한 화재는 자체 소화 장치만으로 불을 끄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까운 공항에 비상착륙을 하는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지 않는 이상 대개 근처에 공항이 없는 경우는 없는데, 문제는 계획에 없던 공항에 착륙하는 것은 차 세우듯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게와 안전 때문에 연료를 버려야 하고, 하늘 길의 교통정리도 기다려야 하고, 활주로 정렬 절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명적 문제점


화재경보기가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상황 파악한다고 시간 끌다가 불이 급속히 심각한 단계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불길이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가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겉으로는 매끄럽고 단순해 보이는 비행기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온갖 장치와 배선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구조물이다. 각 방향타나 승강타를 조종하게끔 연결된 케이블, 전자장치의 각종 배선, 그리고 물리적 작동을 하게 해주는 유압장치들이 얽혀 있다. 이런 것들이 화재로 손상되는 순간 더 이상 비행기 내에 전기 장치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게 되고, 무엇보다 최악은 주요 날개의 조작이 불가능해져서 비행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발생한 기내 화재는 평균 17분 내에 참사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화재가 의심되거나 바로 진화되지 않는 경우 비행기는 무조건 17분 내로 인근 공항에 신속히 비상착륙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말처럼 그게 늘 실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이 날 바에는 차라리 객실에서 나는 게 낫다. 적어도 객실에서는 불이 언제 어떻게 어디서 났는지는 바로 파악이 가능하고 또 즉각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터리를 위탁 수하물이 아닌 기내용 캐리어에만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실 내 화재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여압을 위해 밀폐된 객실에서 연기가 차면 뺄 수도, 이를 피할 방법도 없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하늘이 도와 기적적으로 비행기가 무사 착륙한 후에도 마지막 함정이 남아 있다. 불씨가 남아 있는 상태로 비행기의 문을 열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듯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문을 여는 순간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마치 가스에 불붙이듯 화재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애초부터 불을 내지(?) 않는 것이다. 비행기에서는 자나깨나 불조심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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