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품은, 제주의 섬
봄을 품은, 제주의 섬
  • 김민수
  • 승인 2021.03.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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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둠벙을 향해 가다 바라본 추자도 북서해안
용둠벙을 향해 가다 바라본 추자도 북서해안

추자도의 봄은 꽃보다 먼저 와 있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오랜 섬 여행으로 단련된 촉은 봄이라 말했다. 나른한 부둣가, 미로처럼 이어진 대서리 골목, 그리고 담벼락에 채색된 파란 물결을 타고. 그렇게 오고 있는 중이라고.  

잔잔한 후포해변은 스킨스쿠버 초보자들의 연습 장소로도 이용된다
잔잔한 후포해변은 스킨스쿠버 초보자들의 연습 장소로도 이용된다

●제주 섬의 절반


제주도에는 유인도 8개를 포함해 79개의 섬이 있다. 그중 절반은 추자군도에 모여 있다. 추자면은 완도군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제주도에 편입되었다. 추자도를 포함해 그 뒤를 따랐던 40여 개의 작은 섬들도 제주도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추자도에는 총 4개의 섬, 즉 다리로 이어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그리고 추포도와 횡간도에 사람이 살고 있다. 추자로 가려면 완도항과 해남 우수영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지혜로운 여행객들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날아가 다시 추자도로 거슬러 오는 여객선에 오르기도 한다. 수도권에 거주한다면 오히려 후자가 비용과 시간의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후포는 캠핑, 아우팅, 라이딩을 포함한 모든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시발점이다
후포는 캠핑, 아우팅, 라이딩을 포함한 모든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시발점이다

추자도는 다양한 여행 인프라를 갖춘 섬이다. 낚시, 캠핑, 트레킹, 라이딩 등의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기에도, 펜션에서 맘껏 여유를 부리며 뒹굴거나 식당을 전전하는 미식 여행을 하기에도 최적이다.

온화한 날씨 덕에 둘째 날은 텐트를 나와 침낭만으로 밤을 보냈다
온화한 날씨 덕에 둘째 날은 텐트를 나와 침낭만으로 밤을 보냈다

●막걸리 한 병에 든 사실


상추자 후포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서슬 퍼렇던 한겨울 바닷바람도 한풀 꺾인 느낌이다. 후포는 상추자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우천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는 물론, 깨끗한 화장실에 개수대까지 갖춰 캠핑하기에도 적당하다. 후포 해변에서 좌측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용둠벙과 나바론 절벽이 있고, 우측 길을 따라가면 다무래미를 거치고 봉글레산을 넘어 상추자항에 닿게 된다. 상추자항 부근의 대서리는 추자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여객선터미널, 여행자 센터, 특산물 가게, 펜션, 식당, 카페, 편의점 등이 여정을 풍성하게 해 준다. 

밝아 오는 아침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추자항의 고깃배들
밝아 오는 아침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추자항의 고깃배들

식당에서 요즘 제철이라는 자연산 참돔회로 저녁을 먹고 텐트로 돌아오는 길에 제주막걸리를 한 병 샀다. 추자도는 제주면서 제주가 아닌 듯한 문화와 정서가 있다. 주민들의 말투부터 그렇다. 제주와 전라도 방언이 혼용되어 쓰인다. 그럼에도 추자도가 제주도라는 사실은 막걸리를 구매할 때 절감하게 된다. 육지에서는 먹을 수 없다는 제주막걸리를 이곳에선 쉽게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들고 자연이 지켜 온 횡간도의 해안 절경
자연이 만들고 자연이 지켜 온 횡간도의 해안 절경

●두레박에서 담수장으로


추포도와 횡간도로 가는 행정선은 하루 한 차례(금요일은 두 차례) 추자항에서 출발한다. 오전 9시, 추자항을 벗어난 배가 속력을 올렸다. 수많은 무인도와 주민이 출타 중인 추포도를 제치고, 얼마 후 횡간도에 닿았다. 추자에서 건너온 생필품들과 함께 낚시꾼들이 내리자 마을 주민 두 명이 배에 올랐다. 짐들은 모노레일에 실려 섬의 위쪽으로 사라져 갔다. 마을은 한참이나 높은 곳에 있었다.

생선은 해풍을 맞고 꾸덕꾸덕 건조돼야 더 맛있다
생선은 해풍을 맞고 꾸덕꾸덕 건조돼야 더 맛있다

2000년도 초까지만 해도 횡간도는 난방과 취사를 아궁이에 의존하던 섬이었다. 기름을 연료로 하는 열악한 발전시설로 인해 전기도 하루 2시간 동안 제한적으로 공급되었고 주민들은 마을 안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식수로 사용했다. 세월이 흘러 여건이 다소 좋아졌지만 이미 많은 주민이 섬을 떠났고 자연이 그 빈 곳을 채웠다. 횡간도가 살 만한 섬이 된 것은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김영태씨와 주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태양광발전소를 유치하여 전기 걱정을 없앴고 담수장을 설치해 용수를 풍부하게 했다. 모노레일 역시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머지않아 낡은 행정선 대신 15톤급의 새로운 배가 투입되고 운항횟수도 늘어날 예정이다.

연로한 섬 주민들은 모노레일을 통해 생필품을 운반한다
연로한 섬 주민들은 모노레일을 통해 생필품을 운반한다

●방해를 막아 낸 방패


횡간도는 북서 그리고 남동 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다. 이름을 풀이하면 삐딱하게 누운 방패란 뜻이다. 추자 본섬을 막아서고 모진 풍파를 받아 내며 조각된 거친 땅덩어리, 횡간도의 해안 비경은 그렇게 생성되었다. 비교적 완만한 지형으로 이뤄진 섬의 남동 끝 지점에는 또 하나의 선착장이 있다. 대형설비나 건축자재 등을 들여오기 위한 접안시설이다. 이곳의 태양광발전소에서 시작된 길은 섬의 허리를 타고 이어져 북서 끝 거대한 해안 절벽 앞에서 멈춘다.  

머잖아 새로운 배로 교체될 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간 행정선
머잖아 새로운 배로 교체될 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간 행정선

횡간도에서는 동백나무와 지천을 덮고 숲을 이룬 신우대, 그리고 폐교 입구에 피어난 노란 수선화마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섬의 일부로 살아간다. 의도된 것이라고는 주민의 삶과 낚시꾼들이 잡아낸 물고기 몇 마리가 고작이다. “횡간도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아요.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 되죠.” 김영태씨는 섬이 변해 가는 과정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이기심을 지우고 섬을 자연 그대로 보전하는 일은 고작 7명에 지나지 않은 주민들만의 몫일까?


섬의 능선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널찍한 공해(空海) 너머 병풍도(조도면), 보길도, 소안도, 청산도가 쟁쟁하다. 보길도를 거쳐 제주로 귀양 가던 윤선도의 뱃길이 선하게 그려졌다.  


●PLUS+ 
추자도 가 볼 만한 곳 

여객선 |  
완도여객선터미널 → 하추자 신양항 (차도선, 1일 1회 / 2시간 40분 소요)
해남 우수영여객선터미널 → 상추자항 (쾌속선, 1일 1회 / 1시간 30분 소요)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 상추자항 (차도선, 1일 1회 / 1시간 20분 소요)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 하추자 신양항 (쾌속선, 1일 1회 / 2시간 소요)

추자등대
상추자도 큰 산 정상에 있는 추자등대는 1981년에 처음 세워진 이후 제주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들의 바닷길을 밝혔다. 지금의 등대는 200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등대 전망대에서는 추자군도의 크고 작은 섬들은 물론 보길도까지 멀리 조망된다. 그리고 하추자도의 예초리, 묵리, 돈대산과 추자대교, 상추자항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용둠벙 
용둠벙은 하늘길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다시 달구는 촉진제와 같은 곳이다. 바다에서 용이 올라온 터라고 전해지는 기발한 화산지형은 8,500만 년 전 추자도와 함께 태어났다. 용둠벙 전망대에 오르면 시퍼런 파도가 거대한 나바론 병풍 절벽을 타오르는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모진이해변
하추자 신양항 부근에 있는 추자도 유일의 해수욕장이다. 길이 200m, 폭 30m의 해변에는 파도에 씻긴 깨끗하고 둥근 몽돌이 깔려 있어 물놀이는 물론 캠핑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하늘, 태양, 바다. 몽돌해변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단순한 아름다움은 번잡함을 싫어하는 여행객들에게 힐링 포인트가 된다.

다무래미
추자의 소매물도로 불린다. 밀물 때마다 섬이 되는 다무래미는 물이 빠지면 기다렸다는 듯 상추자와 하나가 된다. 오랜 세월 파도에 치여 자잘해진 몽돌들이 육계사주를 이루어 두 섬을 연결한다. 이때 채 쓸려가지 못한 미역과 다시마가 몽돌 위에 널리기도 한다. 다무래미 바닷길은 하루에 두 번 열린다. 

나바론 하늘길
나바론 절벽이란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따온 이름으로 상추자 남서쪽의 거대한 해안 절벽을 일컫는 말이다. 2.1km의 하늘길이 개통된 후 탐방객들은 추자올레와는 별개로 깎아지른 절벽 길을 걸으며 그 아찔함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 하늘길 정상에 서면 상추자 대부분의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횡간민박 
횡간도의 유일한 민박이다. 1일 1회(금요일은 2회, 토·일요일 휴무) 행정선이 다니기 때문에 횡간도에 들어가면 최소 하루를 묵고 나와야 한다. 횡간민박의 거실은 마치 근사한 카페를 방불케 한다. 통창 앞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 너머로 보이는 오롯한 추자도와 추포도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사장님의 요리 솜씨가 좋으니 밥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전화: 010 7171 2558  
가격: 1인 기준 1박 5식 5만5,000원(예약 필수)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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