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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온 메시지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1.04.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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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평화로웠던 로마의 아침
매일이 평화로웠던 로마의 아침

1인용 모카 포트에 보골보골 커피를 끓이는 아침.
로마에서 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행의 전조

그날도 피온(Fionn)은 거침이 없었다. is가 아닌 was, have been이 아닌 had been, get보다는 take가 좋겠다며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들을 사정없이 토막 내는 것이다. 아일랜드 더블린 어학연수 2개월 차. 이름만 귀여운 델핀 어학원(Delphin English School)의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중급)’ 클래스에서의 나의 일상은 말하고 까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부끄러울 건 없었는데 다들 고만고만한 처지였으니까. 호되기로 소문난 피온 선생님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막 처음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함께 난도질을 당하던 동지들은 다음과 같다. 브라질에서 온 브루노(Bruno), 폴란드에서 온 마이크(Mike)와 아이슬란드에서 온 마이클(Michael), 스페인에서 온 라우라(Laura)와 오네이다(Oneida), 한국에서 온 예지(Yeji)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마티나(Martina)가 있었다.

아일랜드를 벗어난 첫 유럽 여행지, 로마
아일랜드를 벗어난 첫 유럽 여행지, 로마

그중에서도 마티나와는 유독 쿵짝이 잘 맞았다. 금발의 그녀가 어쩔 땐 한국인처럼 보이기도 했을 정도다. 색을 달리한 필기에 집착한다거나 무작정 걷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비슷했다. 산보다는 무조건 바다, 그녀도 나처럼 매운 음식을 곧잘 먹었다. 3월1일, 나보다 2살 많은 마티나는 생일은 나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신기하리만큼 잘 맞았다. 마티나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기까지, 3개월 동안 우리는 어느덧 ‘악당’ 피온의 팬이 되었고 서로의 형광펜을 돌려가며 필기에 몰두했다. 수업이 끝나면 어딘지도 모르는 더블린의 골목을 함께 누비다가 간판에 새빨간 고추가 그려진 몽골 음식점에 들어가 고추 그림이 3개나 달린 메뉴를 시켜 먹었다. 주말엔 기차를 타고 바다엘 갔다. 피시 & 칩스와 딱딱한 빵을 오순도순 나눠 먹으며 연애와 취업 같은, 그 시절 우리의 난제를 논했다. 그건 그렇고 저녁엔 어느 기네스 펍에 갈 것인지에 대해 진심 진지하게 고민했다.

 

●본 조르노, 모든 게 처음이라

“Yeji! When on earth are you coming(예지! 대체 언제 올 거야)?” 
로마로 돌아간 마티나의 집요한 물음은 몇 달간 계속됐다. 2~3일마다 문자와 메일로 나의 로마행을 열렬히 재촉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를 벗어난 나의 첫 유럽 행선지가 이탈리아 로마가 된 사연이다. ‘Soon(곧 갈게).’ 더 이상의 뭉갬은 통하지 않겠다 싶을 때쯤 ‘초’저비용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 Air)에서 세금 포함 30유로도 채 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특가로 로마행 티켓을 질렀다. 더블린에서 가장 큰 기프트 숍에서 앙증맞은 자석과 엽서, 묵직한 기네스 컵을 골라 담았다. 호텔이나 공항 픽업 서비스, 가이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바티칸 광장의 분수
바티칸 광장의 분수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에는 마티나와 그녀와 꼭 닮은 아버지가 내 이름을 든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의 발음으로 ‘키아(KIA)’ 차를 타고 마티나네 집으로 향하던 과정은 소상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던 순간부터가 생생하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살았다는 마티나네 아파트(라기엔 빌라에 가까운)는 참 고전적이었다. 날렵한 화살표 모양을 한 현대식 엘리베이터의 버튼과는 달리 투박한 빨간색 버튼을 철컥, 깊게 눌러야 했다. 조금은 걱정스러운 움직임의 엘리베이터가 철커덩, 무사히 1층에 도착하면 수동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아마도 ‘알파치노’가 아닐까
그의 이름은 아마도 ‘알파치노’가 아닐까

3층에 위치한 마티나네 집은 여느 영화에서 보던 이탈리아 가정집처럼 단란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취향일 꽃무늬와 체크무늬가 각각 식탁과 창문에 규칙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마티나의 방은 정말이지 여행자의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사 모은 엽서와 자석, 인형으로 가득한 방은 2주일간 나의 방이 되었다. ‘본 조르노(Buon Giorno, 아침 인사)!’를 힘차게 외치시던 마티나의 부모님은 당분간 나의 가족이 되었다. 화장실에 있던 아기 세면대는 알고 보니 비데였다. 

점점 다가오는 콜로세움
점점 다가오는 콜로세움

 

●로마는 달다

로마에서는 아침을 달게 먹는 듯했다. 매일 아침 모카 포트에 끓여 낸 에스프레소와 설탕, 초코칩 쿠키와 블루베리 머핀 등이 상에 올랐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는 순간 마티나와 나는 철저히 현지 가이드와 여행자가 되었다. 콜로세움, 바티칸 궁전 등 관광지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인과 동행한 이방인의 여행은 순탄했다. ‘스쿠자(Scusa, 실례합니다)’로 운을 떼며 다가오는 수상한 사람들에게는 곧 현지인의 앙칼진 반격이 가해졌다. 현지인의 경험적 조언에 따라, 이방인은 한 가지 소원을 쪼개어 동전 몇 개에 나눠 담아 트레비 분수에 던졌다. 속에 별로 든 것도 없이 간이 딱 맞는 2유로짜리 햄 샌드위치를 하나씩 입에 물고서 파스타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게에 들어가 이건 얼만지, 저건 얼만지 양껏 물었다. 

가방 사이즈를 고려해 결국엔 두 봉지만
가방 사이즈를 고려해 결국엔 두 봉지만

여행자는 잘 가지 않는 곳이라던 성당(미안하지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마티나는 영어로 역사를 설명하느라 진을 뺐다. 그러고는 달달한 게 당긴다며 데려간 바티칸 궁전 근처의 젤라또 집 앞은 마치 학창시절 쉬는 시간에 가던 학교 매점을 방불케 했다. “딸기 좋아? 생크림 올려 줘?” 틈새를 용케 뚫은 우리는 한국어가 능숙한 직원의 추천대로 생딸기 젤라또와 생크림이 한가득 올라간 아이스크림 콘을 손에 쥐었다.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나란히 걸어와 철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스타 익는 냄새가 솔솔 풍기던 초저녁의 잠이 어찌나 꿀처럼 달던지. 블루베리 머핀에도 딸기 젤라또에도 비할 것이 아니었다. 

 

●티라미수 받고 에스프레소

손님이 있어서가 아니라던 ‘평소’ 로마식 저녁식사는 풍성했다. 야구공만 한 모짜렐라 치즈가 5~6개나 올라간 바질 샐러드를 시작으로 치즈를 올린 돼지고기 오븐 구이, 토마토 파스타에 티라미수로 마무리. 매일 밤 허리가 실종되기 일쑤였다. 배를 꺼뜨릴 겸 설렁설렁 나가는 밤 산책의 재미도 쏠쏠했다. 마티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마리오(Mario)는 차례로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서 성 베드로 광장(Saint Peter’s Square)을 돌곤 했다. 그리고 광장 앞 노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이 더없는 낙이었다. 로마의 밤은 짙은 주황빛에 가까웠다. 

갈 때마다 축제 같았던 스페인 계단
갈 때마다 축제 같았던 스페인 계단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공항으로 가기 전 마티나와 나는 동네 마트에 들러 1인용 모카 포트를 함께 골랐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다음에 꼭 함께 여행하자며 손가락을 걸었던 이후로 여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는 is와 was, have been과 had been 정도는 애써 생각하지 않고도 구별해 말할 수 있게 됐다. 각각 로마와 서울의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SNS에 따르면 브루노도 라우라도 어엿한 어른이 된 모양이다. 애인과 스페인으로 간다던 피온은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겼다. 마티나도 나도 이제 3월1일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마리오는 마티나를 떠났다. 

포폴로 광장에서의 한때
포폴로 광장에서의 한때
이방인이 관찰한 현지인
이방인이 관찰한 현지인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던 막연한 희망이 그야말로 막연해져서일까. 작년 이맘때부터 마티나가 부쩍 메시지를 보내 왔다. 사람들이 자꾸 죽는다는 끔찍한 전보를 전하던 시기는 다행히 가시고, 요즘은 꽤 익숙해진 집콕 생활을 담담하게 공유하는 식이다. 지난 3월1일, 또다시 돌아온 생일에 로마에서는 ‘본 조르노’ 엄마표 파스타와 티라미수 사진이 날아왔다. 서울에서 8시간 먼저 한 살을 먹고 만 나는 1인용 모카 포트에 커피를 끓이는 사진으로 답신을 보냈다. 많은 것들이 스쳐가도 로마를 사이에 둔 우리는 여전한 것이다. 

성 베드로 광장의 밤. 주황빛 기억으로 남았다
성 베드로 광장의 밤. 주황빛 기억으로 남았다

 

글·사진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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