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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 솔솔, 강화도 예술 여행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1.04.01 09:00
  • 수정 2021.11.09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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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방직을 장식하는 골동품 컬렉션
조양방직을 장식하는 골동품 컬렉션

예술과 카페, 
강화도에선 마음의 부등호가 
한 쪽으로 기우는 법이 없었다. 

 

●악동 DNA


어릴 적 나는 동네에서 소문난 악동이었다. 아파트 층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건 기본, 멀쩡한 엘리베이터 문에 ‘고장’ 문구를 적어 두는가 하면, 단지 내 토끼장의 토끼를 밥 먹듯이 풀어 줘 경비 아저씨를 매번 곤란하게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맘때쯤 태어난 동생에게 가족들의 관심이 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사실은 그냥 경직된 분위기를 부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게 좋았다. 

해든뮤지움의 공식 포토존, 야외 거울 벽
해든뮤지움의 공식 포토존, 야외 거울 벽

몸 속 어딘가에 악동 DNA라도 남아 있는 걸까. 부모님의 회초리와 위대한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힘으로 ‘벨튀’를 일삼는 건 진작 졸업했지만, 여전히 난 세상의 모든 ‘금지’들을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이런 습성은 유독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문제가 됐다. 미술관이야말로 금지의 집합체였다. 사진 금지, 취식 금지, 대화 금지, 만지지 마시오, 뛰지 마시오….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은 곳.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일상과 미술관의 그 두터운 경계가 못 견디게 피로했을 뿐이다. 


그런데 강화도에선 달랐다. 카페인 듯 갤러리인 듯, 미술관인 듯 카페인 듯한 곳들이 골목마다 살금살금 숨겨져 있었다. 숨 쉴 수 있었다고나 할까. 도솔미술관에서는 따끈한 생강차 한 잔과 함께 그림을 감상했고, 해든뮤지움의 조각공원에선 아이들이 조각품 사이로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조양방직에선 입으로 실컷 수다를, 눈으론 무수한 골동품을 좇느라 바빴다. 미술관답지 않은 미술관, 카페답지 않은 카페. ‘~답지 않은 곳’들에서 규율은 느슨했고, 경계는 흐릿했다. 갤러리인지 카페인지 헷갈렸지만, 아무렴 어때. 어느 쪽이든 마음의 부등호는 한쪽으로 향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즐거운 방황을 했다. 

도솔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
도솔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

●한옥 안 보물찾기
도솔미술관

 

도솔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하나. 보물찾기를 하듯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다. 한옥 갤러리 카페인 도솔미술관에는 본관 1층과 2층, 별관, 뜰안채 등 곳곳에 다양한 예술 작품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발견하고 감상하는 건 방문객의 몫이다(별관은 미처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눈을 압도하는 화려한 작품들과 친절한 작품 설명까지 더해지니, 영락없는 ‘미술관’이 맞다. 이참에 지면을 빌어 도솔미술관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해야겠다. 외관만 보고 단순히 예쁜 한옥 카페라고 단정 지은 데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다.

본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소나무 정원
본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소나무 정원

카페로서의 정체성도 놓치지 않았다. 한옥 카페답게 음료와 디저트에서부터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수제로 만든 생강차와 단호박 식혜, 그리고 아침마다 직접 찌는 보리빵과 약식이 특히 별미다. 본관에서 한눈에 보이는 소나무 정원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작은 꽃 한 송이도 정성스레 가꾼 정원에서는 제기차기, 투호놀이 등 전통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주소: 길상면 길상로210번길 52-71 
영업시간: 매일 09:00~21:00

 

해든뮤지움의 미러가든에서는 마음껏 웃고 뛰놀 수 있다
해든뮤지움의 미러가든에서는 마음껏 웃고 뛰놀 수 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러그 작품, 인스타그램에서 인생숏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러그 작품, 인스타그램에서 인생숏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조각에 커피를 더하다
해든뮤지움

 

입장과 동시에 귀를 간질이는 건,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다. 미술관에선 정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해든뮤지움의 미러가든과 시크릿가든에서 완전히 쪼개진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미술관 1층의 미러가든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야외 조각품을 배경으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뿐더러, 사진 촬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해든뮤지움의 입구
해든뮤지움의 입구 ©강화군

볕이 좋은 날이라면 1층 해든카페에서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 한 잔을 들고 토닥토닥 시크릿가든으로 나가 보는 게 좋겠다. 시크릿가든에는 조각품을 내려다보며 휴식할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호로록, 커피 한 모금과 예술 작품 감상이라니. 두말하면 입 아픈 ‘꿀 조합’이다.

실내는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피카소, 샤갈, 세자르와 같은 세계적인 현대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백남준, 장욱진 등 유명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뛰어난 채광도 미술관의 매력에 한 끗을 더한다. 열린 공간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빛이 내부를 환히 밝히면 미술관의 오후가 한층 더 반짝인다. 2013년, 해든뮤지움이 ‘올해의 건축 베스트7’에 선정된 이유 중 하나다.

 

주소: 길상면 장흥로101번길 44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조양방직의 조명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조양방직의 조명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공장 건물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공장 건물

●카페라고 하면 섭하죠
조양방직

 

오래된 목마, 낡은 유선 전화기, 빛바랜 영화 포스터…. 시대와 출처를 가늠할 수 없는 빈티지 소품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뾰족뾰족한 옛 공장의 지붕과 세월이 쌓인 회색빛 시멘트 벽은 또 어떤가. 인테리어조차 범상치 않으니 눈동자가 자꾸 길을 잃는다. 조양방직이 여타의 갤러리와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갤러리가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라면, 조양방직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야외에도 골동품이 즐비해 있다
야외에도 골동품이 즐비해 있다

1933년, 강화 최초의 방직공장이었던 조양방직은 2018년에 새 주인을 만나 카페 겸 갤러리로 새롭게 탄생했다. 아니, 새롭게 탄생했다는 말은 어쩌면 어색할지도. 약 990㎡가 넘는 공장터와 건물 골조부터 방직기계가 있던 작업대까지, 남길 수 있는 건 모두 남겼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들의 자리는 주인장이 중국와 유럽 각지에서 직접 발굴한 골동품들로 채워졌다. 유리창이 깨진 문짝은 영국의 어딘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둥근 거울은 체코의 옛 기차에서 건너왔다고. 이 거대한 공장은 마치 겹겹의 시간을 한껏 품은 채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조양방직을 단순히 ‘카페’라고 표현한다면, 엄청난 실례다.


주소: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
영업시간: 월~금요일 11:00~20:00, 토~일요일 11:00~22:00

1년 365일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DRFA365 예술극장 ©강화군
1년 365일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DRFA365 예술극장 ©강화군

●섬 속의 작은 극장
DRFA365 예술극장

연안 갯벌로 둘러싸인 동검도. 여의도보다도 작은 이 아늑한 섬에, 1년 365일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 DRFA365 예술극장이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장은 2005년, 유럽에서 본 영화 한 편에 영감을 받아 극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그의 결심 덕에 국내에서 개봉하지 못한 고품질의 예술영화들이 매일 이곳에서 빛을 발하는 중이다. 극장은 35석으로 규모는 다소 작지만, 코로나19 여파에도 객석 점유율이 꾸준히 60%에 육박하고 있다고. 관객의 반 이상은 재방문 고객일 정도로 마니아층도 두텁다. 

2층 카페 벽면에 붙여진 수많은 영화 포스터
2층 카페 벽면에 붙여진 수많은 영화 포스터

2층 카페에서는 음료뿐 아니라 함박스테이크, 카레덮밥, 샌드위치 등 음식도 판매한다. 영화에 관한 열띤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예술영화는 마음으로 먹는 알약’이라는 주인장의 모토에 맞게, 치유 받기 위한 영화 팬들의 발걸음으로 오늘도 극장은 바쁘다.   


주소: 길상면 동검길63번
운영시간: 영화 상영표에 따라 운영 시간 상이

 


●또 하나의 예술공간, 동네 책방
 

소금빛서점

그 남자의 독립서점  
소금빛서점

소금빛서점은 고택을 수리해서 만든 독립서점이다. 그릇가게인 유림상회와 맞붙어 있는데, 주인장 부부 중 남편이 소금빛서점을, 아내가 유림상회를 운영한다. 소금빛서점은 아동용 서적부터 기독교 서적까지, 주인장이 직접 읽은 책들로만 채웠다고. 무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책을 고른 뒤 결제는 유림상회에서 하면 된다. 최근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뜨겁게 인기몰이 중이다. 

주소: 강화읍 남문안길 7
영업시간: 월~수요일, 금~토요일 11:00~17:00, 일요일 13:00~17:00, 목요일 휴무

 

딸기책방 
딸기책방 

내 아이를 위한 서점  
딸기책방 

오래된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골목길. 동화에 나올 법한 파란 지붕 집이 보인다면, 딸기책방에 잘 찾아왔단 뜻이다. 출판일에 종사하던 부부가 차린 책방으로, 아동을 위한 국내외 그림책과 만화책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아이와 함께 오기 좋다.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주인장표 핸드 드립 커피도 놓치지 말 것. 내부 사진 촬영은 반드시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주소:  강화읍 동문안길 33
영업시간:  화~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무

 

쑥 라떼 ©강화군
쑥 라떼 ©강화군

▶FOOD
향긋함이 두 배 쑥 라떼 

적당히 달달하고, 넘치게 향긋한 음료를 찾고 있다면 주목! 쑥 라떼는 강화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먹음직스러운 초록빛 라떼를 한 입 가득 머금으면, 입 안에 봄이 핀다. 강화도의 쑥은 특히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돼 있을 만큼 강화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라떼뿐 아니라 쑥으로 만든 떡, 케이크, 타르트 등 다채로운 디저트들도 놓치기 아깝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공동기획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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