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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16번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1.05.01 0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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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소현 팀장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 

훌쩍 떠났었습니다. 10년간 정주했던 서울 무교동 5층 사무실을요. 120여 권의 잡지를 만드는 동안 한 달 단위로 묶였던 일상의 매듭이 사라지자 한동안은 끝도 시작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시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한 끝에 잃어버린 시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계절입니다. 잡지라는 것이 한두 달씩 앞서 사는 일이라, 겨울이면 봄의 꽃대궐, 봄이면 여름의 짙은 녹음, 여름이면 가을의 울긋불긋한 산하, 가을이면 순백의 설경을 그리며 일 년 내내 욕구불만에 시달렸던가 봅니다.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은 광주 양림동에서 살았습니다. 눈이 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동무’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로지 눈을 위한 산책을 즐겼죠. 유난히 따스했던 3월에 순번을 잊은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계절의 여왕을 칭송하더군요. 저도 덕분에 여왕님을 기쁘게 영접하며 제철의 여행을 되찾았습니다. 

두 번째는 내일입니다. 다음 주면, 다음 달이면, 내년이면…. 고대하던 여행의 귀환이 희망 고문처럼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니, 속이 다 울렁거렸습니다. 계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더군요. 기다림 위에 ‘언젠가’라는 봉인을 씌우자, 비로소 현재가 자유로워졌습니다. 책을 읽고, 운동하고, 클럽하우스를 틀어 놓고 재봉틀을 돌리는 하찮은 일상만으로 오늘이 풍성하고 내일이 기대되더군요.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시간 여행을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한 해의 3분의 1이 훌쩍 지난 걸 보니 우주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입니다. 그래도 시작과 끝을 잘 배운 것 같습니다. 엉킨 실타래 같았던 마감을 술술 풀어내어 제철의 여행에 잘 묶어서 모두의 손에 척 달라붙는 실마리로 건네려 합니다. 특별히 이번 호에는 <트래비>와 자매지인 <여행신문>, 그리고 콘텐츠 서포터즈인 ‘트래비스트’분들까지 손을 보태 주셨습니다. <트래비>가 16주년을 맞이했으니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여행의 실마리를 찾아 <트래비>식으로 감았습니다. 예쁜 매듭은 직접 지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늘 기다려 주시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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