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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행의 단 한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1.05.02 14:49
  • 수정 2022.05.19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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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어느 시간의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특별한 기회.
11명의 트래비스트가 여행을 답했습니다.

●Japan  
3명의 친구, 일본 홋카이도 

| 민보영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 2명과 함께했던 홋카이도 여행. 깔깔깔 침대에 구겨져 잤던 일, 오타루 눈빛 거리 축제, 쏟아지던 눈을 가득 맞으며 우산도 없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걷던 길, 오들오들 떨며 먹었던 해산물 구이, 머리는 춥고 몸은 따뜻했던 온천, 사람 키만큼 쌓인 눈,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노란 가스등이 비치던 홋카이도에서 어느 밤을 산책했던 그때. 춥지만 따뜻한 느낌. 당시 함께했던 친구가 3년 전 하늘로 여행을 떠나 더 그리운 추억이다. 지나간 여행은 돌아오지 않기에,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지금의 여행을 즐겨야겠다. 

●Russia  
꿈의 열차,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 김선주 


꿈에 그리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처음 오르던 순간. 기차에서 먹을 일주일 치 식량과 술을 사다 시간을 체크하지 못했다. 45L 배낭 그리고 양손 가득 들려 있는 비닐봉지. 마음 졸이며 있는 힘껏 뛰어올랐던 열차. 다행히 출발 전이었다. “괜찮아. 기차가 출발하려면 몇 분 남았어. 너의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해 줄게!” 나를 안심시키던 열차 직원의 목소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오랜 꿈을 이루었다는 벅찬 감동과 낯선 언어가 난무하는 공간의 불안함. 덜컹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맞이한 6번의 밤과 7번의 아침. 

 

●Malaysia  
사직서의 추억,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 주윤희


사직서를 제출하고 마음 맞는 회사 후배와 시린 겨울 떠났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핫팬츠에 민소매만 덜렁 걸치고 야시장을 거닐던 하루.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어시장에는 갓 잡은 생선과 해물이 가득했고 상인과 손님이 뒤섞여 왁자지껄한 풍경을 이루었다. 활력 넘치는 어시장의 공기에 살아있음을 느꼈던 기억. 붉게 물든 석양과 눈부시게 반짝이던 오렌지빛 바다를 보며, 후배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누었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가끔 한강을 지나치며 석양이 보일 때, 문득 그때 후배와 나누었던 말레이시아 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Thailand  
땀과의 전쟁, 태국 방콕 

| 박유정 


홀로 방콕 여행 중 ‘왓 아룬’ 사원 앞에서 태국 전통 의상 ‘춧 타이()’를 체험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보통 왕족과 정치계 인사들이 공식 석상에 자주 입고 나오는 ‘춧 타이’는 화려한 색상과 장식이 특징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있었다. 그건 바로 태국의 날씨. 쩍쩍 달라붙는 머리카락, 침인지 땀인지 모를 습기, 허리에 반짝거리는 금 벨트, 치렁거리는 팔찌. 당시 찍은 사진을 보니 얼굴이 홍당무가 따로 없었다. 여행은 늘 변수로 가득하다. 당시에는 더위 때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인데, 오히려 지금은 변수가 가득했던 그때가 그립다. 여행이 그리워졌다는 신호다.  

●France  
노천카페의 맥주, 프랑스 몽펠리에 

| 김수환


유럽을 여행하던 중, 일정을 급하게 틀어 방문하게 된 곳이 몽펠리에였다. 당시 몽펠리에역은 중앙 홀과 출입 통로만을 제외하고 전부 공사 중이었으며 예약한 호텔은 사진과 다르게 코딱지만 했었다. 선결제로 예약을 했건만 결제가 안 됐다고 고집부리는 프런트 직원과 실랑이까지 벌였으니 몽펠리에의 설렘은 호텔 방만큼 쪼그라든 상태였다. 불만을 가득 품은 채 시내로 향했다. 웅장한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edie)이 정면에 보이는 노천카페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시켰다. 평범한 라거 맥주였는데 그 청량함에 불만이 한번에 씻겨 내려갔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싫다가도 좋은. 몽펠리에 코메디 광장, 어느 노천카페의 맥주가 정말 그립다. 

●Philippines  
한밤의 수영, 필리핀 팔라완 

| 유의민 


<트래비> 팔라완 원정대에 참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라겐 아일랜드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모두가 잠잘 준비를 하는 시각, 최소한의 조명만이 불을 밝히고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물 위에는 달과 별, 리조트 조명이 비쳐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운을 벗어던지고 물속을 여행했다. 뒤로 누워 팔과 다리는 물에 뜰 수 있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둥둥 떠다니며 하늘을 바라보니 물 위에 있던 그림이 현실이 되어 두 눈에 담겼다. 귓가에는 고요함 속에 잔잔한 물소리만이 들려왔고, 밤공기는 깨끗한 하늘만큼이나 맑고 시원했다. 그냥 그렇게 보고만 있어도 좋았던 팔라완의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Japan  
새로운 시작, 일본 기타큐슈 

| 홍수지 


일본 기타큐슈 첫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날, 동네 산책을 나섰던 순간. 4월 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기숙사와 그 앞에 있는 유치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법주차된 차나 쓰레기 하나 없이 잘 정돈된 도로와 작은 정원으로 둘러싸인 일본식 주택, 그 사이로 작은 편의점 하나. 일본 주택가의 골목길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살랑이는 봄바람과 벚꽃이 일본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았던 그때. 흐린 기억으로나마 그날의 마음을 되새기며, 힘든 시기를 이겨 내는 중이다. 

●Italy  
꿈 그리고 BTS, 이탈리아 로마 

| 박진영


오랜 기간 승무원을 꿈꿨다. 몇 번의 면접과 탈락, 20대가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곤 한 달간 훌쩍 유럽으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그 여행의 종착지였다. 이탈리아 바티칸박물관 투어가 전부 끝나고 광장 중앙에 멍하니 서 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처음으로 꿈과 현실 사이, 타협점을 찾았을 때다. ‘여행이 좋아 승무원이 하고 싶었구나. 그렇다면 1년에 2~3번이라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굳이 승무원이 아니어도 좋다’라고 생각했다. 쓸쓸하고 허무한 타협이었지만, 미련 없이 가벼웠다. 아 참, 그곳에서 만났던 BTS(방탄소년단) RM의 모습도 생생히 기억난다,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어쩌면 전자보다 후자일지도.

●Galapagos Islands  
고요한 석양, 갈라파고스 이사벨라섬 

| 윤아진 


갈라파고스 제도의 이사벨라섬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폭신폭신하고 보드라운 모래 해변에서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완벽하게 동그랗고 붉은 태양이 산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그저 나 홀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요하지만 부족한 게 하나 없는 완벽한 순간. 복잡하고 번잡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유난히 그 순간이 계속해서 그리워진다. 모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던 이사벨라섬의 석양. 

●Thailand  
맥주와 감자튀김, 태국 카오락 

| 김유니나  


태국 카오락 해변의 선베드. 옆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싱하 비어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감자튀김이 놓여 있었다. 파도가 친다. 맥주 한 모금. 머리까지 시원해지는 느낌. 이후 짭조름하고 포슬포슬한 감자튀김 한 입. 뜨거운 열대 날씨에 언제라도 바다에 뛰어들어갈 수 있도록 비키니를 입곤 살랑거리는 소재의 원피스를 겹쳐 입고 있었던 때. 매년 고향처럼 찾던 태국 카오락에서의 평화롭던 시간이 절실하게 고픈 요즘이다.

●Hongkong  
놓쳐 버린 야경, 홍콩 침사추이 

| 정봄비 


홍콩 여행 첫날, 아쿠아 루나 크루즈를 타고 ‘심포니 오브 라이트’ 레이저쇼를 보기 위해 침사추이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 시간이 다가오자 아쿠아 루나 크루즈가 항구에 도착했다. 크루즈를 타기 위한 줄이 워낙 길어 천천히 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데 열중했다. 아뿔싸, 크루즈가 항구를 떠난다. 시무룩한 채 침사추이 항구에 우두커니 서서 야경을 즐겼던 기억. 아직도 허탈한 기분이 든다. 여행을 하며 실패를 통해 또 새로운 경험을 배운다지만, 아쿠아 루나 크루즈가 항구로 들어오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홍콩 여행의 첫날밤, 누구보다 로맨틱한 야경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글 트래비스트  사진 트래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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