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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가 숨 쉰다, 강화 교동도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1.06.01 07:35
  • 수정 2021.11.0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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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멎은 듯한 대룡시장의 골목
시간이 멎은 듯한 대룡시장의 골목

살아 본 적도 없는 시대인데 향수가 생겼다. 
교동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나는 20분째 엉덩이뼈를 으스러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해골처럼 뼈대가 앙상한 철제의자는 ‘요즘 카페의자’답게 작고 좁고 딱딱했다. 앉으면 여지없이 송곳니 같은 게 양쪽 골반을 쿡쿡 찌르는 듯한 의자. 그런데 사진은 잘 나오는 의자. 예쁜 고문의자. 1시간 웨이팅의 결과가 이거라니. 그러고 보니 카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인테리어에 대기 줄이 길었고, 크로플을 팔았고, 옷 잘 입은 언니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하긴, 요즘 유행하는 카페는 다 그렇다.

대룡시장 담벼락에 그려진 정겨운 벽화
대룡시장 담벼락에 그려진 정겨운 벽화

최근 내 핸드폰 사진첩은 인스타그래머블 스폿들에게 점령당했다. 신상 카페, 가오픈 맛집 따위를 발견하는 (그리고 자랑하는) 재미에 눈을 뜬 탓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도 반복적으로 향유하다 보면 어딘가 좀 질리는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라, 뭔가 색다른 게 필요했다. 말하자면 일상의 환기 같은 것. 교동도로 떠난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랬다. 교동도는 강화도에서도 한 뼘 더 깊숙이 위치해 있어, 마치 보이지 않는 벽 너머의 세상을 뚫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입구에 적힌 문구부터 그랬다. ‘여기서부터 민북지역, 검문에 협조 바랍니다.’ 교동도는 북한 땅과 가까운,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쪽에 위치한 섬이라 출입신청서를 작성한 후 차량출입증을 받아야만 갈 수 있었다. 검문을 통과하고 교동대교를 건넜다. 여행이란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는 일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건 정말이지 ‘여행’이었다. 

작은 골목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작은 골목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교동도에선 시간마저 다르게 흘렀다. 서울보다 좀 더 느릿하고 잔잔했다. 교동향교는 약 9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2021년의 하루를 또 한 겹씩 쌓아 가고 있었고, 대룡시장의 시계는 1960년대의 어느 오후에 분침과 초침이 모두 멈춰 버린 것 같았다. 낡은 이발관 간판과 오래된 극장 건물, 좁은 골목길. 살아 본 적도 없는 시대인데 향수가 생긴다. 그리움이란 감정은 어쩌면 직접적인 경험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북적이는 곳에선 어김없이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난다
북적이는 곳에선 어김없이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난다

시장 골목의 한 다방에는 웨이팅도 크로플도 없었다. 젊은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소곤소곤한 말소리와 뜨끈한 쌍화차가 있었다. 주인 할머니께 영업시간을 여쭤 보니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라고 하셨다. 정해진 스케줄 없이 그저 그만큼 일하고 그만큼 쉰다고. 급할 것 없으니 그뿐이라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대답보다 교동도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어느 느직한 일요일 오후. 푹신하고 낡은 다방 소파에 앉아 주인 할머니가 우려 주신 쌍화차를 마셨다. 호로록 넘긴 쌍화차 한 모금에, 엉덩이가 모처럼 편안했다.

양쪽에서 유혹이 쏟아진다, 뭐부터 먹어 볼까
양쪽에서 유혹이 쏟아진다, 뭐부터 먹어 볼까

 

●60년대 옛 시장
대룡시장

대룡시장이 교동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된 건 2014년, 그러니까 교동대교가 개통된 이후 TV 프로그램 <1박2일>, <알쓸신잡> 등의 촬영지로 거듭 소개되면서부터다. 과거에 시간이 멎어 있는 듯한 대룡시장의 레트로한 모습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여러 번 덧칠된 낡은 간판만 해도 그렇다. 마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다. 군데군데 그려진 정겨운 벽화와 시간이 쌓인 오래된 건물들도 다분히 복고풍이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 대룡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로 즐거운 일이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 대룡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로 즐거운 일이다

대룡시장이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북한 주민들은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 된 이후 귀향하지 못하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대룡시장이 탄생했다. 교동도는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어 오랫동안 외지인들의 출입이 통제됐고, 덕분에 대룡시장은 골목의 생김새와 넓이, 상점의 간판까지 모두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됐다.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아 느린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고 교동향교, 파머스마켓, 난정저수지 해바라기정원 등 주요 관광지와도 가까워 교동도 여행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주소: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35

 

●지도에 콕! 
대룡시장 추천 스폿

제비 동상을 발견했다면 교동제비집에 잘 찾아왔다는 뜻이다
제비 동상을 발견했다면 교동제비집에 잘 찾아왔다는 뜻이다

교동도 여행의 출발점
교동제비집

교동도 여행이 처음이라면, 출발점은 교동제비집으로 정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대룡시장 입구 근처에 위치한 교동제비집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교동도 관광안내소다. 교동도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IT 기반의 다양한 관광안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1층에는 관광 안내데스크, 체험 공간, 회의실 및 주민 복합문화공간이, 2층에는 카페 쉼터와 전망대가 있다. 1층의 터치스크린을 통해서는 교동도 지도 위에 표시된 관광 명소와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고, VR체험과 교동신문 제작도 직접 해 볼 수 있다. 흑백 사진 촬영 및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주소: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0-1  
영업시간: 매일 10:00~18:00(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 휴무)

 

옛날 교복을 입고 흑백 사진을 남겨 볼 수 있는 교동스튜디오
옛날 교복을 입고 흑백 사진을 남겨 볼 수 있는 교동스튜디오

교복사진 한 컷
교동스튜디오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볼 수 있는 사진관. 강화군에서 중앙 및 지방정부 협력으로 추진하는 관광객 체험공간으로, 교복 대여와 흑백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은 장당 5,000원으로 의상 대여에 사진 인화까지 포함된 가격이라 꽤 합리적이다. 별다른 보정 작업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인화할 사진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는 게 교동스튜디오의 이용 꿀팁! 현재는 코로나19로 임시 휴업 중이지만, 운영을 재개하면 대룡시장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 봐야 할 곳이다.

주소: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 38  
영업시간: 매일 10:00~18:00(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 휴무)
가격: 옛날 교복 대여 5,000원

교동다방의 쌍화차엔 주인 할머니의 인심이 담겨 있다
교동다방의 쌍화차엔 주인 할머니의 인심이 담겨 있다

교동도 최고참 카페
교동다방

교동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라는 명성에 맞게 인테리어부터 압도적이다. 수십년간 다방을 다녀 간 손님들의 방명록이 천장 가득 붙어 있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7080 노래는 다방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한 스푼 더한다. 대표 메뉴는 대추, 잣, 호두 등이 수북이 들어간 쌍화차. 노른자를 톡 터뜨린 뒤 저어서 훌훌 마시면 발끝까지 따뜻해진다. 무더운 여름엔 시원하고 달콤한 오미자차가 좋겠다. 주인 할머니 피셜, 영업시간은 ‘대략 아침 9시 즈음부터 해 질 때까지’다.

주소: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4-10  
영업시간: 매일 9:00~해 질 때까지(화요일 휴무)  
가격: 쌍화차 7,000원, 다방커피 3,000원, 오미자차 3,000원

강만장의 인테리어는 전부 사장님의 솜씨다
강만장의 인테리어는 전부 사장님의 솜씨다

바이커들의 성지
강만장

바이커들의 성지로 불리는 대룡시장의 바이크 카페. 번쩍번쩍한 멋진 오토바이들이 카페 앞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에 줄 지어 있고, 실내에는 헬멧, 라이더 자켓, 바이크 잡지 등 다양한 바이크 관련 용품들이 진열돼 있다. 바이크를 타는 본인을 포함해 가족까지 함께 입장할 수 있으며, 라이더들에겐 커피도 10% 할인해 준다. ‘그냥 북쪽으로 끝까지 달리세요.’ 다소 터프한 카페 위치 설명도 너무나 강만장답다. 60년 전통의 황해도 국밥과 냉면을 판매하는 대풍식당과 맞붙어 있으니, 시동을 걸기 전 국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워 봐도 좋겠다. 

주소: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24  
영업시간: 매일 10:00~00:00
가격: 아메리카노 5,000원 오리지날 식혜 5,000원

파머스마켓은 대룡시장과 맞붙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파머스마켓은 대룡시장과 맞붙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힙한 농산물 장터
강화도 파머스마켓

지난해 4월, 옛 LG농기계 수리 센터가 창고형 마켓으로 ‘힙’하게 변신했다. 파머스마켓은 강화도의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장터로, 총 30여 개의 점포에서 강화도와 교동도에서 수확한 질 좋은 농산물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고려산 벌꿀, 찰 보리빵, 강화섬쌀 등 강화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산품뿐 아니라 추억의 장난감과 간식들을 판매하는 문방구와 뽑기 가게도 눈길을 끈다.

옛날 장난감과 간식들을 판매하는 파머스마켓 안 문방구
옛날 장난감과 간식들을 판매하는 파머스마켓 안 문방구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핫하게 떠오른 ‘교동 밀크티’도 바로 여기, 파머스마켓에 있다. 레트로한 폰트가 적힌 참기름병에 찰랑찰랑 담긴 밀크티는 딱 색깔만큼이나 부드럽고 달달하다. 파머스마켓에선 각별히 후각을 조심할 것. 방심하는 순간, 즉석에서 구워 주는 고소한 만두와 각종 튀김 냄새가 사방에서 정신없이 코끝을 강타할 테니. 에코백, 접시 등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도 함께 열리니 파머스마켓에 갈 때 필요한 건 두둑한 지갑과 느슨한 허리띠, 두 가지뿐이다.

주소:  교동면 교동남로 22
영업시간: 매일 10:00~17:00(월요일 휴무)

 

무려 약 900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교동향교
무려 약 900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교동향교
싱그러운 초록빛 나무들이 교동향교를 둘러싸고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나무들이 교동향교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교동향교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교동향교가 가장 초록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계절이다. 홍살문(서원이나 향교 앞에 세우던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을 지나 순한 초록빛 나뭇잎이 우거진 언덕길을 가볍게 걸어 올라가면 교동향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 지방의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고려 충렬왕 12년에 문신이었던 안향이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신 게 우리나라 최초로 향교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지금은 교육공간이었던 명륜당, 동재, 서재와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 동무, 서무가 남아 있다. 교동향교로 향하는 길 입구에는 수군절도사, 도호부사, 삼도수군통어사 등 지방 관직들의 비석 40개를 한곳에 모아 둔 읍내리 비석군이 있으니 놓치지 말 것. 현재는 코로나19로 출입이 제한돼 홍살문과 비석군만 관람할 수 있다.   

주소: 교동면 교동남로 229-49 
입장료: 무료

●나만 알고 싶은, 교동도의 숨은 인생숏 장소

푸릇한 청보리 물결  
난정저수지 청보리밭

교동도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생숏 장소를 한 곳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난정저수지 청보리밭부터 외치고 볼 일이다. 사실 난정저수지는 9월에 해바라기가 만개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난정1리 지역마을공동체에서 올해 3월에 과감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난정저수지의 약 100만 평방미터 부지에 청보리를 심은 것. 해바라기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청량한 여름 날씨와 푸릇푸릇한 청보리란 흠 잡을 데 없는 조합이고, 여기에 새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까지 합쳐지니 인생숏 남기는 건 일도 아니다. 바다 건너로는 북한 연안군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근처 난정낚시터에서는 입어료를 지불하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공동기획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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