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달린다. 페달이 경쾌하다.
젖을 새 없이 땀이 마른다.
아직은 순했던 봄볕 아래에서.
●방해꾼 없는 강
섬진강에는 방해꾼이 없다. 물살을 막아서는 하구 둑과 보가 없기에, 섬진강은 때에 따라 불규칙한 얼굴을 보인다. 건기에는 개울처럼 좁고 얕게 흐르다가 우기가 되면 큰 강의 위용을 사납게 드러내는 식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강 풍경이 익숙하다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강의 모습이란 본래 그렇다. 인위적인 간섭이 없는 자연스러움.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약해지는 물살의 움직임. 자연 하천을 바라보는 두 눈에 애정이 묻어나는 이유다.
●오르막길
섬진강은 동쪽에 지리산을 끼고 흐른다. 지리산은 깊은 계곡을 만들고, 피아골과 화개천 중상류에 쌍계사와 연곡사를 품었다. 섬진강에서 방향을 틀어 지리산 불국토로 향한다. 한동안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하는 오르막길. 자전거는 숨이 가쁘다. 그러나 다시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여정은 브레이크 손잡이를 움켜쥐지 않으면 여지없이 쾌속 질주하게 되는 하산 길이다. 오르막이 나온다고 한숨 쉴 일도, 내리막이라고 마냥 신날 일도 아니다. 올랐으면 내려오고, 내려와야 또다시 오를 수 있는 것. 자전거 여행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다.
●4월의 색
4월 중순, 섬진강의 색은 연초록이다. 부드러운 연두빛이 점점 억세지고 있지만 아직 짙은 초록엔 미치지 못한 색. 가로수 밑을 달리다 보면 광합성 중 잎에서 빠져나온 물기가 빗방울이 떨어지듯이 얼굴에 닿는다. 신록이 온통 너울대지만 그 많던 매화와 산수유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얼마 전까지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 없던 광양 매화마을길도 고즈넉하다. 대신 새로운 주인공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섬진강변과 매실나무 밭에 유채꽃이 꽃망울을 터뜨린 것. 3월의 섬진강이 희고 붉은 매화로 출렁거렸다면, 4월엔 노란 유채꽃이 물결을 이룬다. 만발한 유채꽃은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연초록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더없이 상쾌한 봄의 색을 뽐내며.
*이호준 작가의 자전거 여행 무수한 도시와 촌락, 아름다운 사찰과 서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페달을 밟습니다. 강길 따라 흘러가는 국내 자전거 여행. 따르릉, 지금 출발합니다.
글·사진 이호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