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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민통선, 거리 두기의 재발견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1.06.01 08:15
  • 수정 2022.05.24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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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산성이지만 2017년에야 사적으로 지정된 덕진산성
삼국시대 산성이지만 2017년에야 사적으로 지정된 덕진산성

70년 가까이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이 4km의 간격을 지키는 곳. 
가히 거리 두기 생활의 원조라고 할 만한 DMZ 민통선 북쪽을 다녀왔다. 
그 오랜 ‘경계’가 지켜 낸 것은 일상 그리고 자연이었다. 

철책 너머 임진각 갈대생태습지는 고라니의 천국이다
철책 너머 임진각 갈대생태습지는 고라니의 천국이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육군 제1사단이 지키는 민통선 검문소에서 차를 멈추고 통행증을 내밀며 윤도영 파주미래DMZ 대표가 입을 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대한민국의 땅,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자유의 다리, 통일대교 등 염원이 담긴 다리들은 건재하지만, 최근 몇 년은 사람도, 바이러스도 오가지 못하게 철통 관리 중이다. 남북 관계의 악화에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의 영향도 덮쳤다. 얼마 전에 오픈한 임진각평화곤돌라가 텅텅 빈 채로 무한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안보관광 대신 평화관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도라산전망대와 땅굴만 보고 나와요.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태자원과 비경이 많은지는 대부분 모르고 나가는 거죠.” 그가 옳았다. 두 가지를 빼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덕진산성의 방어시설인 치(雉)
덕진산성의 방어시설인 치(雉)

●여긴 언제 와도 좋습니다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덕진산성(德津山城)을 오르며 윤대표의 말을 의심했지만, 의심은 곧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흐린 날에도 이렇게 장관인데 맑은 날 왔다면…. “천연 요새라는 단어를 그냥 딱 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삼국시대 고구려군이 여기에 서 있으면 백제든, 신라든 적군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덕진산성은 아름다운 산책로이기도 하다
덕진산성은 아름다운 산책로이기도 하다

해발 65m의 덕진당지 위에 올라서니 과연 남쪽으로 임진강의 하중도인 초평도와 강 너머 장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선 시대까지 성곽이 계속 확장될 만큼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지만, 지금은 국토의 ‘전략적’ 사각지대가 됐다. 그런 이유로 덕진산성은 2017년에 이르러서야 사적(537호)으로 지정됐다. 복원된 석축과 집수 시설은 새것이라 어색한데, 옛이야기는 잘 스며든다. 덕진산성의 지휘관으로 있다가 인조반정에 참전한 장단부사 이서(李曙)와 아내에 관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허준 묘소에는 3개의 무덤이 있다
허준 묘소에는 3개의 무덤이 있다

민통선 안에 있다는 이유로 그 존재가 묻힌 유적은 한둘이 아니다. “파주 출신인 허준 선생이 다른 지역에서 부각되고 있어서 좀 안타까워요.” 허준(許浚, 1539~1615년)의 묘소가 파주 진동면 하포리에서 발견된 것은 1991년의 일이다. 개인에 대한 기록이 극히 드문 허준의 묘소를 찾아 낸 이는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교수였다. 400년 전 양천 허씨 족보에서 기록된 장소에 가 보니 상부가 세로로 동강 난 묘비석이 뒹굴고 있었다는 것. 현재 묘소에는 허준 선생과 부인, 생모의 무덤과 문인석, 향로석 등 다른 출토물이 있다. 한때는 관광해설사가 상주했던 곳인데, 지금은 인적 없이 둥글레, 좀붓꽃, 앵초, 금낭화 등 야생화만 만발하다. 경희대에서 허준 묘소를 중심으로 ‘허준 한방의료산업 관광자원화 클러스터 사업’을 진행 중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평화수도 통일촌의 환영방식
평화수도 통일촌의 환영방식

 

●몰라봐 주니 아쉽습니다


비무장지대(DMZ)는 70년이 넘도록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온대성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된 천혜의 자연을 보여 준다. “파주엔 아까운 자원들이 너무 많죠. 임진강 갈대숲엔 고라니들이 엄청 많이 살아요. 겨울엔 독수리,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날아오고, 무공해 지역에만 산다는 뜸부기도 여기서 관찰되죠.” 통일촌 마을식당 앞 벤치에서 윤 대표가 아쉬움을 토로하는 동안 제비들도 정신없이 쫑알거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식당 건물 입구 쪽에 족히 30개가 넘는 제비집이 있었다. 목격한 최대 제비촌이다. 

평화농장에 가득 핀 튤립
평화농장에 가득 핀 튤립

식당도 숙박시설도 없는 민통선 안에서 식사는 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해결한다. 파주의 3대 특산물인 쌀, 인삼, 콩 중 2가지가 식탁에 올라오는데, 특히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조림이 별미다. 파주시에는 스마트팜 사전 단계로 평화농장을 조성해 주민들의 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군 복무할 때 여기는 다 미군 포격장이었어요. 이쪽은 불발탄을 제거해 농사를 짓지만, 저쪽은 아직 제거하는 중입니다.” 평화농장에서 만난 주민이 잠시 회상에 빠졌다. 


민통선 최대 마을인 통일촌은 1970년대 초 퇴역한 군인들에게 땅을 불하해 정착시킨 곳이고, 해마루촌은 2001년부터 실향민들의 이주를 허가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장단콩마을로도 알려진 통일촌이 전형적인 농촌공동체의 분위기라면, 해마루촌은 별장촌처럼 계획된 모습이라 대조적이다. 북쪽의 민통선 마을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해마루촌의 키워드가 모였다
해마루촌의 키워드가 모였다

사실 민통선 여행은 자유롭지 않았다. 어디에나 있다는 감시 카메라에 사진 촬영은 물론 차를 멈추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임진강 갈대생태습지의 접근을 막는 철책선은 두터웠고, 도라산역도, 캠프 그리브스도 입장이 불가한 상태.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지난겨울 독수리 탐조여행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해마루촌의 환영방식
해마루촌의 환영방식

전국이 고도로 개발된 작은 나라에서 DMZ의 생태학적 가치는 환산이 어려울 정도다.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문화관광, 생태관광의 시간이다. 마침 통일촌의 ‘DMZ 예술문화공간 통’에서 ‘불가항력과 인류세’를 주제로 한 전시가 개최 중이었다. 서로 거리를 지키는 방식으로 가능했던 DMZ의 생존법이 인류세를 살아가기 위한 ‘자연과 사람 사이의 거리 두기 연습’이었다고 생각하면, 갈라진 민족에게 좀 위로가 되려나.  

▶DMZ에서 외치는 
DMZ 2021 불가항력과 인류세 


경기문화재단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외 생태학자와 아티스트들이 연대하여 DMZ 접경마을(통일촌, 대성동, 해마루촌)의 생태와 기후에 대한 리서치와 연구, 토론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 전시회는 그간의 작업을 총망라한 환경 생태 예술 작업이다. 구 도라산전망대와 통일촌 ‘DMZ 예술문화공간 통’에서 진행 중이다. 

기간: 2021년 6월27일까지(월요일 휴관)  

▶속살을 보여 드립니다
파주미래 DMZ 윤도영 대표 

조상 대대로 파주에서 살아온 윤도영 대표가 생태자원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2년 전의 일이다. 파주미래DMZ를 세우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임진강생태보존회도 결성했다. 파주의 문화와 생태자원을 외부에 알리는 일에도 열심인데, 지난겨울 독수리 먹이 주기, 탐조여행 희망자가 넘쳐서 인원을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고. 봄부터는 윤도영 대표가 직접 안내하는 프라이빗한 민통선 생태역사평화 관광을 진행 중이다. 

파주DMZ 생태역사평화관광  
운영시간: 토, 일요일 10:00~16:30
요금: 1인 5만원


글·사진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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