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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뿌리는 숲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1.08.01 14:52
  • 수정 2021.08.19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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꿉꿉한 장마철,
내 방을 여름날의 숲으로 만들어 줄
5가지 제품들. 

 

노트가 뭐예요?
노트(Note)는 향에 대한 느낌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발향 순서와 향의 특성에 따라 톱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나뉜다. 톱 노트는 가장 먼저 맡게 되는 향이다. 향의 첫 인상을 결정한다. 미들 노트는 여러 종류의 향을 조합했을 때 중단 단계를 이루는 향이다. 톱 노트보다 휘발 속도가 느리며, 향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이스 노트는 휘발 속도가 느려 가장 마지막까지 맡을 수 있는 향이다. 흔히 잔향이라고 한다. 

●묵직한 숲 내음
씨흐트루동  
듀 Deux


결단코 최애 브랜드. 그만큼 할 말도 많다. 일단 역사가 어마무시하다. 씨흐트루동은 무려 1643년에 설립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향초 브랜드다. 루이 14세 때부터 베르사유 궁전에 향초를 전속 납품했다고. 2017년부터는 향수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듀(Deux)’ 향은 정말이지 묵직하다. 숲은 숲인데,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숲이랄까. 노르웨이 어느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숲에서 뿜어져 나올 것 같은 향이다. 진득한 이끼 향 같기도 하고, 나무껍질을 한 꺼풀 벗겨 냈을 때 나는 축축한 흙냄새와도 닮았다. 그러니 가벼운 시트러스 향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비추. 씨흐트루동의 다른 향들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빡센(?) 향들(예를 들면 탄약 향이라든가 절간 향 같은…)이 많은데, 듀는 무난하다. 씨흐트루동의 베스트셀러답게 누구나 좋아할 만하다. 국내에서는 롯데백화점 명동점,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총 3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단점은 오직 가격뿐.


Top Note 푸른 잎, 비터 오렌지 
Middle Note 소나무, 페퍼, 쥬니퍼
Base Note 시더, 인센스, 엠브록산, 캐시미란
100ml 32만원

●청량한 블랙베리
조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 코롱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여름,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공항 면세점에서다. 조말론의 ‘블랙베리 앤 베이 코롱’에게 성별이 있다면 어쩐지 ‘그’보단 ‘그녀’일 것만 같다. 생 블랙베리를 통째로 으깨어 갈아 넣은 듯한 향인데, 좀 더 자세히 묘사하자면 이렇다.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마을(배경은 꼭 초여름이어야 한다), 지금 막 블랙베리를 잔뜩 딴 소녀의 보라색으로 물든 손끝에서 날 것 같은 향. 딱 그렇다. 과즙 넘치는 풍부한 향의 비결은 자연의 블랙커런트 꽃봉오리에 부코나무 에센스를 가미한 데에 있다. 아무래도 과일류의 향이라 마냥 달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달콤한데, 시원하다. 블랙베리 앤 베이 코롱이 지닌 최고의 매력 포인트다. 우디하고 드라이한 잔향 때문에 언뜻 맡으면 남성용 스킨 향 같기도. 중성적인 느낌이라 남자친구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다 좋은데, 지속력이 아쉽다. 조말론의 다소 치욕스러운 별명(조루말론)에 맞게 향이 금방 휘발되니, 작은 공병에 넣어 조금씩 자주 뿌리는 것을 추천한다.

Top Note 블랙베리
Middle Note 월계수 잎
Base Note 시더우드
100ml 19만2,000원

●사막의 오아시스
몬더  
리와 마지 Liwa Magi


몇 달 전 집들이에 온 친구들이 하나같이 반해 버렸던 그 향.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향기’를 만드는 몬더의 제품이다. 향이 정말 오묘하다. 우선 떠오르는 배경은 머나먼 타국에 위치한 사막. 쨍한 모래사막 위에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떠 있다. 작은 샘 주변으론 달큰한 꽃과 초록빛 수풀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바람이 불자 물 내음에 꽃과 풀 향이 섞인다. ‘리와 마지’는 그런 순간에 맡을 수 있을 듯한 향이다. 강렬하거나 모난 데 없이 잔잔하고 편안하다. 언젠가 망원동 뒷골목의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 맡아 본 향기 같기도 하고. 햇빛 강한 날,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 놓고 방 안에 켜 놓으면 단언컨대 촉촉한 오아시스를 맛볼 수 있다. 투명도가 좋은 글라스와 천연 소이왁스, 스모크리스 심지를 사용해 그을음을 최소화한 점도 매력적이다. 연소시간은 약 35시간이지만, 심지에 직접 불을 붙이는 대신 캔들 워머를 사용하면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재구매 의사가 넘쳐나는 건 비단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Top Note 푸른 잎, 메론, 물 
Middle Note 바이올렛, 프리지아, 작약
Base Note 앰버, 머스크, 우디
140ml 2만2,000원

●싱그러운 편백 숲
식물학  
클린 매직 피톤치드 스프레이


커피 마시러 갔다가 홀린 듯 집어 든 기억이 있다. 한 번 시향한 후 고민 없이 결제하는 내 모습이 그 다음 장면이었고. ‘클린 매직 피톤치드 스프레이’는 신사동 가로수길 골목에 위치한 이름 난 식물 카페 ‘식물학’이 아로마 라이프 브랜드 ‘프레이포잇’과 함께 만든 탈취제다. 향은 카페의 이미지와 꼭 닮았다. 편백나무 증류 추출물, 티트리, 로즈마리 등 식물 유래 에센셜이 함유된 덕에 초록초록하고 싱그럽다. 잠들기 전 이불에 2~3회 분사하면 새소리가 고요히 들리는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경험상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박하사탕처럼 살짝 청량하고 화한 향기도 난다. 향도 향이지만, 탈취 효과뿐 아니라 진드기 방지와 공기 정화 기능까지 고루 갖췄다. 피부에 직접 닿는 것보단 침구류, 세탁하기 힘든 옷, 커튼, 소파, 주방 싱크대, 하수구 등에 뿌려 주는 게 좋다. 삼겹살 잔뜩 구워 먹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손이 가는 제품.
120ml 1만5,900원

●우아한 목련 한 송이
프라고나르  
매그놀리아


솔직히 고백하자면, 겉모습에 이끌려 샀다. 보타니컬 느낌 가득한 병의 디자인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딱이었기에. 구매 의도는 불순했지만 향의 만족도가 높아서 놀랐던 제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랜드 자체가 짱짱하다. 1926년에 설립된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프라고나르는 향수의 메카인 프랑스 그라스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프라고나르의 에센스 추출 및 제조 방식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을 정도라고. 프라고나르는 매년 ‘올해의 꽃’을 선정하는데, 지난해의 주인공은 ‘매그놀리아(목련)’였다. 자칫 너무 달거나 코가 매울 정도로 스파이시해질 수 있는 목련 향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해 냈다는 평. 자꾸만 18세기 프랑스 왕실에서 희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향이다. 일 년 내내 햇살 가득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최상급의 꽃과 허브를 재배해 만들었으니, 향의 퀄리티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국내 오프라인 판매처도 여러 곳이다. 롯데백화점 본점, 미아점, 노원점 등에서 자유롭게 시향이 가능하다. 대신, 주의사항이 있다. 지갑이 마구 열려 통장이 '텅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Top Note 레몬, 바인 플라워, 칼라무스
Middle Note 매그놀리아, 티 로즈, 프랜지파니
Base Note 샌들우드, 머스크, 화이트 앰버
50ml 6만5,000원

*니치 향수 최상의 원료로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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