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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음악 그리고 사람 '제주도 자작나무숲'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1.10.01 07:40
  • 수정 2021.10.15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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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깊숙이 뿌리 내린 자작나무에 바람이 스친다. 일렁이는 나뭇잎의 고운 선율이 숲을 이뤄 섬을 감싼다.

제주도 치유의 숲에서 열린 자작나무숲 음악회. 자연 속 음악이 바람처럼 맴돈다
제주도 치유의 숲에서 열린 자작나무숲 음악회. 자연 속 음악이 바람처럼 맴돈다

자작나무숲은 제주도민들로 구성된 클래식 음악 단체다. 2002년부터 제주도 지역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색소폰, 아코디언 등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작나무숲을 이끌고 있는 ‘우상임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튜브: 자작나무숲

제주도 산지등대 앞에서 만난 우상임 음악감독
제주도 산지등대 앞에서 만난 우상임 음악감독

 

그런데 제주도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나?

없다. 자작나무는 주로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예를 들면 강원도 같은 곳.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도 기후가 따뜻한 지역이라 자생지로 적합하지 않다. 성질이 너무 상극이다. 


그럼 ‘자작나무숲’이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음악 단체와는 잘 맞지 않는 이름인 것 같은데.

제주도는 섬이다. 지역 특색을 가득 머금은 향토적인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는 반면에 문화적인 다양성은 서울 같은 도시에 비해 좁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는 문화적으로 ‘추운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추운 지역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자생하는 자작나무가 되겠다는 팀의 의지. 그 의지를 이름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숲’이라는 단어와 음악회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느껴졌다.


글쎄, 숲과 음악회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듣는 것과 보는 것?

음악회와 숲의 공통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작나무숲’이라는 팀명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자작나무숲 음악회 MC를 맡은 우상임 음악감독, 그녀는 라디오 DJ로도 활약 중이다
자작나무숲 음악회 MC를 맡은 우상임 음악감독, 그녀는 라디오 DJ로도 활약 중이다

 

정말 멋진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 자작나무숲은 제주도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렸나?

애초에 자작나무숲의 목표는 ‘숲’과 ‘음악’을 결합해 제주 지역민들에게 문화적인 힐링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2016년부터 제주도의 ‘치유의 숲’에서 본격적인 음악회를 개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음악회를 이어오고 있다. 점점 뿌리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관객들은 주로 여행자인가?

놀랍게도 반반이다. 여행자 반, 제주도민 반. 처음에 숲에서 진행하는 음악회를 기획할 때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 ‘이 멀리까지 올까? 주차도 어렵고 이동도 불편한데….’ 입소문이라는 것이 대단하긴 했다. 주변 숲을 산책하던 제주도민, 어느 SNS에서 보고 온 여행자, 그들에게서 건너 들은 누군가, 누군가의 친구 혹은 가족. 


아무래도 음악회는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의 타격은 없는지.

왜 없겠나. 여행객도 줄고, 무엇보다 모이면 감염 위험이 있으니 음악회를 자주 진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음악회를 영상 콘텐츠로 새롭게 담아 유튜브에 업로드 중이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제주의 숲과 자작나무숲의 음악의 접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제주는 숲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작나무숲은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여행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두 숲의 접점은 ‘감동의 매개체’가 아닐까. 소통의 창구라고 생각한다.


제주도 치유의 숲이라는 공간은 처음 들어 본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인가?

치유의 숲은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다. 오래전 화전민들이 살았던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숲이다. 피톤치드를 제일 많이 내뿜는다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군락이 가득해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곳이다. 대략 15km, 12개의 다른 코스로 숲을 돌아볼 수 있다. 이러니까 숲 해설사가 된 기분이다.

자작나무숲의 음악은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힐링을 선사한다
자작나무숲의 음악은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힐링을 선사한다

 

숲에서 펼쳐지는 음악회. 듣기만 해도 참 낭만적이다.

맞다. 숲과 음악. 누구에게나 손을 먼저 내밀어 포근히 품어 주는 것들 아닌가. 자작나무숲 자랑을 좀 해보자면 말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어느 날 음악회에 암 환자 한 분이 찾아왔던 적이 있다. 긴 투병 생활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그런 관객이었다. 다음 공연에도, 다음 공연에도 매번 찾아왔다. 올 때마다 같은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는 이들을 한 명, 두 명 데리고 왔다. 어느 날 “참 힘이 됐습니다”라고 하더라. 마음이 이상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흔한 감상평이었겠지’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연주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나의 손을 거쳐 나오는 선율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그리고 가치를 지니게 하는 일, 이게 첫 번째 낭만이다. 두 번째 낭만은 숲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도감이다. 그런데 대답을 이렇게 길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말이 조금 많다(웃음).

서귀포 쓰레기위생매립장에서 진행된 음악회. 자연에게 일방적으로 받아 온 힐링을, 자연에게 다시금 ‘관심’으로 돌려주기 위한 자작나무숲의 노력
서귀포 쓰레기위생매립장에서 진행된 음악회. 자연에게 일방적으로 받아 온 힐링을, 자연에게 다시금 ‘관심’으로 돌려주기 위한 자작나무숲의 노력
제주도 산지등대 앞에서 진행된 자작나무숲 단원 자녀들의 합창
제주도 산지등대 앞에서 진행된 자작나무숲 단원 자녀들의 합창

 

계속 말해 달라, 자작나무숲의 두 번째 낭만.

숲에서 진행하는 음악회는 ‘야외’라는 장소적인 특성을 심히 고려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다. 귀찮게 얼굴로 달려드는 벌레도 있고, 더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갑자기 비가 쏟아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 비가 쏟아진 적이 있다. 섬 날씨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숲을 가득 메운 빗소리는 기어코 음악 소리를 전부 덮어 버릴 정도로 거세졌다. 주변에는 순식간에 안개가 차올랐고 잠시 음악회를 멈췄다 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관객분들이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비를 피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음악 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였다. 음악회가 끝나고는 오히려 비가 와서 다행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때 ‘힐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자작나무숲 음악회는 오로지 ‘음악’이 좋아서 좋았던 것이 아니다. 음악이라는 감정이 들리고, 숲이라는 낭만이 보였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었다. 그때 자작나무숲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숲이 사람에게 주는 힐링만큼, 사람도 숲에게 힐링을 선사해야 한다는 작은 목표.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존재, 인간을 스스로 팔 벌려 품어 주는 것만 같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존재, 인간을 스스로 팔 벌려 품어 주는 것만 같다

 

참 좋다. 사람이 숲에게 ‘숲’이 되어 주겠다는 생각.

자작나무숲의 연주를 숲에서 선보였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힐링 요소를 자연으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젠 반대로 사람이, 마을이, 더 나아가 문화가 자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어떤 것을 행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 어렵지만, 자연에게 받은 만큼 이제 갚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보다 훨씬 작은 존재이지 않나.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관심인 것 같다. 자연에 우리가 남긴 것들에 대한 관심. 좁은 골목에 버려진 플라스틱, 사방팔방 널브러진 담배꽁초 같은 것에 대한 작은 관심. 자작나무숲은 치유의 숲을 벗어나 서귀포 쓰레기위생매립장으로 향했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구역질을 겨우겨우 참아가며 연주했다. 그곳에서 필사적으로 참았던 악취는 우리의 냄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작나무숲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연주이기에, 연주를 하며 계속 생각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자작나무숲은 먼 미래에도 여전히 제주도에서 멋진 음악회를 선보이고 있을 것이다
자작나무숲은 먼 미래에도 여전히 제주도에서 멋진 음악회를 선보이고 있을 것이다

참 생각이 많아지는 기획이다.

자작나무숲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소통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무궁무진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자연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지만, 분명 계속 연주하다 보면 언젠가 관심을 넘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작나무숲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 오래 생각해 본 질문이다. 숲의 가장 멋진 미래는 여전히 숲인 것 같다. 한 그루 한 그루 모여 단단하고 건강한, 그런 자작나무숲을 여전히 이루고 있을 거 같다.  


글 강화송 기자  사진제공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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