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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을 넘어 섬이 보였다 '신안 반월도, 박지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1.10.01 08:25
  • 수정 2022.05.20 10: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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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브릿지는 두리마을과 반월도를 잇는 부잔교다
문브릿지는 두리마을과 반월도를 잇는 부잔교다

보라색은 이제 반월도와 박지도의 상징이 되었지만, 
색을 걷어 내면 진짜 섬의 모습이 보인다. 
갯벌과 오랜 담벼락, 섬 주민의 정다운 미소. 
바다에서 시작해 들녘과 갯벌을 건너온 바람이 볼을 스친다.

 

●보라색을 입은 섬


반월도와 박지도는 신안의 안좌도 남쪽 두리마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들이다. 2007년 두리마을에서 박지도, 다시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 이어지는 인도교가 놓였고, 신안을 상징하는 의미로 ‘천사의 다리’라고 명명했다. 당시는 안좌도까지 육로가 연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인도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알음알음 찾아가 걷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2019년,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자 이미 암태도와 연도되어 있던 자은도, 팔금도 그리고 안좌도 역시 차량으로 오갈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수위에 따라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는 문브릿지
수위에 따라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는 문브릿지

2020년은 반월도와 박지도의 역사에 길이 남을 해다. 보수공사를 통해 길이 1,462m의 목교가 보라색으로 칠해졌고 ‘천사의 다리’ 대신 ‘퍼플교’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렇게 보라색은 두 섬의 상징이 되었다. 가옥의 지붕, 도로, 조형물, 심지어는 밭을 덮은 비닐까지 보라색 옷을 입었다. 섬에 색이 칠해지자 관광객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마을에는 신안군관광협회에서 운영하는 펜션과 식당이 생겨났으며 걷지 않고도 마을을 탐방할 수 있는 전동셔틀도 등장했다. 그리고 두 섬은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00선, 2021년 가고 싶은 33섬 중 하나로,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최우수 관광 마을’의 대한민국 후보 마을로도 선정됐다. 

퍼플교는 두리마을, 박지도, 반월도를 잇는 1,492m의 목교다
퍼플교는 두리마을, 박지도, 반월도를 잇는 1,492m의 목교다

●논두렁에서 찾은 추억


두 섬을 다시 찾은 건 그들이 보라색 섬이 된 이후로 두 번째였다. 본디 반월도와 박지도는 갯벌 위에 놓인 섬이다. 여기엔 가슴 시린 사연이 있다. 박지도의 스님과 반월도의 비구니는 서로를 그리워하다 갯벌 위에 노둣돌을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둣돌이 연결되기 전,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갯벌을 뒤져 봐도 애틋한 노두의 흔적을 현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저 추측에 의존할 뿐이다. 

낡고 낡아 갯벌과 하나가 된 반월도 옛 선창
낡고 낡아 갯벌과 하나가 된 반월도 옛 선창
지붕도 꽃들도, 마을의 도로도 온통 보라색을 입었다
지붕도 꽃들도, 마을의 도로도 온통 보라색을 입었다

물 빠진 갯벌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산과 강과 바다의 자취가 확연하다. 칠게와 농게가 그 세상의 주인인 듯했으나 망태를 둘러맨 섬 주민이 깊은 땅 속에서 낙지를 끄집어내자 생각이 달라졌다.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닐 거라고.

대야들은 박지도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대야들은 박지도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대야들의 벼는 제초제를 쓰지 않는 우렁농법으로 재배된다
대야들의 벼는 제초제를 쓰지 않는 우렁농법으로 재배된다
반월도 카페에서 판매하는 자색고구마 아이스크림
반월도 카페에서 판매하는 자색고구마 아이스크림

보라색 지붕의 색을 걷어 내니 옛 마을이 나타났다. 높은 곳에 있는 이장님 댁은 소박하지만 예스러운 품격이 있다. 지나가는 여행자를 불러 수박과 커피를 흔쾌히 내주었던 10년 전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이제 수박은 철이 지났고, 바람도 제법 선선해졌다. 박지도도 곧 가을이었다. 박지도의 남쪽 해안가에는 대야들이라 불리는 광활한 억새밭 군락지가 있다. 햇살을 부수며 춤을 추는 억새의 물결은 계절의 증표다. 연못에는 물방개, 물장군, 소금쟁이가 한가로이 노닐었다. 논둑에 앉아 어린 시절의 들녘을 가만히 소환하고 있으니 논두렁 아래 물  속에 우렁이가 꿈틀댔다. 

보라색을 걷어 내고 싶은 박지도 옛 가옥
보라색을 걷어 내고 싶은 박지도 옛 가옥
보라색 바가지는 박지도의 상징이 되었다
보라색 바가지는 박지도의 상징이 되었다

●부서진 것은 부서진 대로


반월도는 박지도에서 915m의 ‘퍼플교’를 건너거나, 두리마을에서 ‘문브릿지’라는 부잔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목교가 놓이기 전 섬사람들은 도선을 타고 박지, 두리, 반월을 오갔다. 다리가 이어진 후에도 현재까지 도선은 묵묵히 운항 중이다.

발 하나가 유난히 크면 수컷 농게임에 틀림없다
발 하나가 유난히 크면 수컷 농게임에 틀림없다
변함없이 반월도, 두리마을, 박지도의 선창가를 오가는 두리호
변함없이 반월도, 두리마을, 박지도의 선창가를 오가는 두리호
갯벌이 드러난 박지도 해안에 가득 피어난 숙근아스타
갯벌이 드러난 박지도 해안에 가득 피어난 숙근아스타

반월도를 한 바퀴 돌았다. 섬에선 평범한 찻길을 걷는 것도 즐겁다. 바다가 앞장서는 덕분에 시야의 반 이상은 시원하게 트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뒤로하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거센 바람과 파도는 어구를 보관하던 창고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고친다 해도 다시 부서질 것을 알기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부서진 것은 부서진 대로 두는 것. 낡은 것은 낡은 대로 남기는 것. 반월도는 세월의 흔적에 구태여 손대지 않는다. 반월도의 마을 앞 바닷가는 몹시 적막했다. 갯벌 위로 모습을 드러낸 낡은 선창과 그 주변으로 터를 잡은 철새 떼의 모습에 감성이 먹먹하게 젖어들었다.  

▶Place

반월도 당숲
‘2013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한 숲이다. 팽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난대수종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현재도 주민들이 제를 올리는 등 당숲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있어 쉽게 탐방할 수 있다.

900년 우물
당산 뒤편에 900년 된 우물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사를 올리던 우물이다. 현재의 모습은 원형과 차이가 있으며 음용은 불가하다.

▶Photo Spot

갯벌의 낙지잡이
안좌 두리마을과 박지도, 반월도를 둘러싼 바다에 물이 빠지면 갯벌은 광활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대나무 광주리를 옆에 찬 주민들이 긴 장화 옷을 입고 들어가 낙지를 잡기 시작한다. 퍼플교 위에서 바라보면 펄을 헤쳐 가는 동작과 걸음 하나하나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박지도의 반영
반월도 선착장 부근의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면 퍼플교와 박지도의 모습이 바다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늘과 물의 경계가 없는 단조로운 풍경이지만 섬과 섬을 잇는 다리의 진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반월도 옛 선창
박지도의 해안에는 풍파에 부서진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단한 섬사람들의 삶을 보여 주는 듯하다. 특히 마을 앞 옛 선창은 낡고 낡아 이미 갯벌과 하나가 된 지 오래다.

▶Activity 트레킹


①박지·반월도 걷기 여행 코스 (10.2km)
박지선착장→라벤다공원→박지마을→대야들→반월박지교→반월마을카페→당숲→일주산책로→토촌마을→문브릿지→퍼플섬 입구


②박지도 둘레길 (4.2km)
박지선착장→라벤다공원→박지마을→대야들→박지선착장


③반월도 둘레길 (5.7km)
반월마을카페→마을당숲→일주산책로→토촌마을→반월마을카페

▶FOOD & STAY
박지도에 마을호텔과 마을식당이, 반월도에 무인카페와 마을식당이 있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인스타그램 avoltath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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