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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마시러 체코나 가 볼까

이우석의 놀고먹기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1.11.01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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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대는 말이다. 괜히 폼 난다. 
“홍콩 가서 만두나 먹고 올까? 야, 우동 먹으려면 오사카를 가야지!” 하는 이야기들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더 대단해 보인다. 

때론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날 때도 있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체코가 좋다. 체코는 세계 최고의 맥주나라다
때론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날 때도 있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체코가 좋다. 체코는 세계 최고의 맥주나라다

 

●프라하의 봄


맥주,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마신 액체다. 물은 그만큼 많은 양을 마시지는 않고 하루 세끼 꼬박 국물을 들이켰대도 하루 저녁 마시는 맥주량에 댈 정도는 절대 아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데 그중 맥주는 꼬박 0.5~1gal(갤런) 정도는 챙겨 마시는 듯하다. 1갤런 해 봤자 3.8L니 500cc 생맥주 8잔이고 0.5갤런이라면 4잔이다. 20대에는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영향으로 지금은 술자리마다 어김없이 마시고 있다. 그 물파스처럼 차가운 술이 식도를 타고 넘는 느낌에 중독되어 버린 듯하다. 물론 라거(Lager)를 주로 마신다. 에일(Ale)은 막걸리 같아 조금 꺼리는 편이다. 하면발효(아래로 가라앉은 효모로 발효시킨 맥주) 황금색 라거의 칼칼하니 톡 쏘는 느낌을 즐긴다. 라거와 에일 중 무엇이 좋은가는 제법 많이들 엇갈리는 취향이다. 발효법에 따라 맥주는 크게 이 두 종류로 나뉜다. 그 안에서 재료나 공법에 따라 다양한 맥주로 나뉜다.

유럽에선 어딜 가나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를 떠나게 만든다
유럽에선 어딜 가나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를 떠나게 만든다

 

그래서 왜 하필 체코인가. 보통 맥주라 하면 독일이라 대답하지 않는가? 어쩌면 아일랜드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테고, 녹색을 연상했는지 네덜란드나 벨기에라 대답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일은 커다란 맥주잔으로 아이코닉(iconic) 된 국가라 당연히 첫 번째로 꼽는 이들이 많다.


각국 맥주 소비량을 보자. 최근 몇 년간 세계 맥주 연간 소비량 1위 국가는 독일이 아니었다. 의외로 체코가 1등이다. 따끈한 2021년 통계를 참고하면 1병(330ml) 기준 프라하에 거주하는 체코인은 468병을 마셔 2위(417병)와 3위(411병)를 크게 따돌렸다. 문제는 2위도 독일이 아니란 점이다. 2위는 스페인 마드리드이며 독일 베를린이 3위다. 프라하의 봄은 겨우내 마신 술이 깨니까 어느덧 와 있었을까. 프라하는 3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맥주를 따라 많은 곳을 다녔다. 공항이나 호텔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는 게 현지 맥주를 마시는 일이다. 처음 맥주를 빚었다는 이집트에도 갔다. 참고로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이미 맥주를 2만 리터 이상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조장을 만들었다. 현대 이집트는 나일강 물로 스텔라 맥주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보통 만나면 물이나 차를 마신다. 그토록 위대했던 선조들은 왜 멸망했나 모르겠다.

세계적 명품 홉으로 인정받고 있는 체코 사츠 홉
세계적 명품 홉으로 인정받고 있는 체코 사츠 홉

 

●I hope so 


독일과 벨기에, 체코와 네덜란드의 맥주 공장도 갔었다. 하이네켄과 아사히, 에비스의 맥주 양조 체험 전시장에서 한동안 머문 적도 있다(아! 국내에선 홍천의 하이트 공장과 음성 코리아 크래프트 브루어리도 다녀왔다). 어마어마한 내수를 바탕으로 한 신흥 중국 맥주의 기함인 칭다오 공장 앞 맥주 거리를 다녀온 기억도 있다. 사실 돌아온 기억은 없다. 태국 싱하와 창, 필리핀 산미구엘, 베트남 사이공, 인도 피셔맨, 싱가포르 타이서, 보스턴 새뮤얼 애덤스 등 그래도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 이외에도 노르웨이 한자(Hansa), 핀란드 라핀 쿨타, 터키 에페스, 피지 비터비어, 모리셔스 피닉스, 크로아티아 판(Pan) 등 많은 나라의 맥주가 차가운 물결을 휘몰아치며 내 대장과 방광을 스쳐 지났다. 심지어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사카의 빌어먹을 호그와트 매점에선 버터 비어를 속아서 마신 적도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마신 맥주만 모아도 캐리비안 베이 메가스톰쯤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최초 하면발효 라거를 생산하는 플젠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체험 투어. 시음용 맥주는 330ml밖에 안 준다
세계 최초 하면발효 라거를 생산하는 플젠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체험 투어. 시음용 맥주는 330ml밖에 안 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체코 플젠의 필스너 우르켈 공장이다. 프라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전원도시에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이 있다. 양조회사야 물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니 이곳 또한 수량 풍부한 지하수가 있는 지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저온으로 발효한 황금빛 필스너(Pilsner)를 제조한 양조장이다. 쌉쌀한 홉 맛이 풍부하게 감돌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까지, 청량감이 우수한 맥주다. 체코를 대표하는 대중 브랜드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지하 깊숙한 저장고에서 살균 처리 전인 순수 ‘생맥주’를 한잔 얻어 마셨는데 이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잔을 기울이기도 전에 지독히도 향긋한 풍미가 콧속으로 밀려들더니 식도를 타고 서늘한 황금 액체가 넘어갈 때는 전율마저 느껴졌다. 뭔가 동화 속 생명수가 있다면 이런 맛일까 싶었다.

맥주 투어의 장점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술은 몇 종류 안 된다
맥주 투어의 장점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술은 몇 종류 안 된다

사실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가 거저먹었다. 필젠(Pilzen)은 예전에 독일계 프로이센(Preussen, 유럽 동북부와 중부에 있었던 나라)의 땅이었다. 당시 프로이센 필젠에서 독일 출신 양조자가 처음 이 같은 맥주를 고안하고 ‘필스너’란 이름을 붙였다. 혁신적 기술도 있었지만, 보헤미아 전통 양조법과 인근 자테츠(?atec, 체코의 도시) 지역의 사츠 홉(Saaz)이 결합됐다. 금빛을 내면서 맑고 시원한 이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이를 흉내 낸 맥주를 만들어 너도나도 필스너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현재 필스너란 맥주 종류가 존재하게 된 사연이다. 할 수 없이 다른 맥주와 구분하기 위해 우르켈(Urquell)이란 말을 갖다 붙였다. 우르켈은 무언가의 ‘기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센이 망하고 훗날 체코가 독립하면서 필젠은 체코 땅 플젠(Plze?)이 됐다. 당연히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를 대표하는, 아니 라거를 대표하는 맥주가 되었다. 


플젠 바로 옆 자테츠라는 도시에서는 필스너 우르켈이 만들어지기 전인 700년 전부터 홉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전통을 오롯이 보존해 왔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사츠 홉은 세계적 명품 홉으로 소문났다. 홉이 자라는 밭을 바라볼 수 있는 ‘홉 등대’부터 다양한 상식을 배울 수 있는 홉 박물관과 마을에서 자랑하는 소량의 최고 명품 홉으로 담근 로컬 맥주 자테츠 맥주도 맛볼 수 있다. Oh, I hope so!

자, 다같이 유럽에서 건배할 그날을 위해 건배!
자, 다같이 유럽에서 건배할 그날을 위해 건배!

 

●여행과 맥주 그리고 통풍


체코에는 필스너 우르켈 이외에도 버드와이저로 알려진 부드바이서 부드바르(Budweiser Budvar), 흑맥주 코젤(Kozel), 감브리누스(Gambrinus), 스타로프라멘(Staropramen, 일본 라면이 아니다) 등 다양한 맥주가 있어 나를 즐겁게 한다.


독일에선 어디서나(심지어 역 앞 키오스크에서도) 맥주를 팔아 즐거웠다. 갓 따라 내 구름 같은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맥주가 특히 근사했다. 라이프치히(Leipzig, 독일 동부 작센주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한 유서 깊은 식당은 맥주를 많이 팔기 위해 음식에 소금을 아끼지 않는 현명한 마케팅을 선보였고, 독일 유명 관광지인 블랙포레스트의 호숫가 호텔은 매우 추운 날씨였음에도 맥주만큼은 분명히 냉장고에 제대로 넣어 두는 진정성을 보였다. 이 자리를 빌려 독일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럽은 와인이 전부가 아니다. 다양한 맥주 문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세의 유럽 일부 지역에선 군대며 관공서, 직장의 월급 중 일부를 맥주로 줬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전통은 그 이전이나 현재까지도 상당히 유효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맥주를 일당으로 줬다는 기록이 있고, 현대에 들어선 돈으로 받아 어차피 맥주를 사 먹으니 같은 이치의 거래가 순환되고 있는 셈이다.


인구나 영토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나라에선 저마다 다양한 맥주가 있어 여행이 즐겁다. 관광지엔 어딜 가나 근사한 맥줏집이 있어 다행이다. 안주하기 딱 좋은 콜레뇨(체코식 족발 요리)나 더블치즈버거를 앞에 두고도 버블티나 망고 셰이크 따위를 마시며 당을 올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비록 지금이야 2L에 1만원에 파는 편의점 냉장고나 두리번거리고 있지만. 입에 허연 거품을 묻히고 파안대소를 짓는 미래의 그날을 위해 통풍에 대한 경계나 늦추지 말아야겠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그램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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