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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인천 산책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21.10.22 10:44
  • 수정 2022.05.20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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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이 오롯이 느껴졌다.
인천에서는 시공간이 교차했다. 

건국기념일을 맞아 타이완 국기가 물결치는 인천 차이나타운
건국기념일을 맞아 타이완 국기가 물결치는 인천 차이나타운

●소소한 욕심 


떠나기 전 늘 작은 기대를 품는다. 여행지에서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바라는.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차이나타운 거리 곳곳에서 붉은 타이완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알고 보니 타이완 건국기념일을 맞아 한시적으로 걸어둔 것이라고. 크고 작은 국기가 나풀나풀 바람에 날려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보통 차이나타운하면 중국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왜 타이완 국기가 걸려있는 것일까? 바로 차이나타운 화교의 90% 이상이 타이완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1884년 이후부터 한중수교(1992년) 이전까지 유입된 화교의 후손으로, 길게는 약 130년간 이곳을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화려한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화려한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유난히 좋은 날씨와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땀이 뻘뻘 났다.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무역을 위해 인천항 인근에 터를 잡다 보니 오르막길에 마을을 형성하게 됐다고. 청일조계지경계계단을 사이에 두고 중국풍과 일본풍으로 확연히 분위기가 나뉘는 점도 흥미롭다. 붉은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중국풍 건물을 감상한 뒤, 유니짜장과 찹쌀탕수육을 주문했다. 이름부터 생소한 유니짜장은 다진 고기를 뜻하는 중국어 ‘유니’에서 유래했다고. 돼지고기, 채소 등의 재료를 잘게 갈아 만든 짜장을 취향껏 면과 비벼 먹으면 된다. 같이 곁들여먹는 찹쌀탕수육은 쫄깃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소스가 일품이다. 월병, 샤오롱바오, 펑리수 등 걸음마다 간식거리가 유혹하니, 여행 앞에서 다이어트는 언제나 내일부터다. 

 

익살스러운 자이언트트리
익살스러운 자이언트트리
송월동 동화마을을 거니는 세 모녀
송월동 동화마을을 거니는 세 모녀

송월동 동화마을은 알록달록 동심을 자극하는 벽화와 구조물이 가득한 공간이다. 구불구불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자이언트트리, 무지개계단 등 포토존을 만나게 된다. 엄마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행복은 전염된다. 

 

●여행도 스마트하게


무조건 부딪히고 보는 스타일이라지만, 오늘은 조금 똑똑해지기로 했다. 인천역 관광안내소에 들러 넓은 차이나타운을 어떻게 둘러볼지 고민했다. 안내사의 추천은 모바일 게임. 인천은 우리나라 제1호 스마트관광도시로, 최신 기술을 활용해 더욱 풍성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게임을 완수하면 전통시장 상품권도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홀린 듯이 모바일 앱을 깔고 여정을 시작했다. 인천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해 짜장면박물관, 대불호텔, 은행 거리, 근대건축전시관, 자유공원 등을 차례로 방문해 퀴즈를 푸는 방식이었다. 미션은 ‘인천 개항장에서 가장 신기한 물건을 찾아라!’, 구한말 조선의 얼리어답터가 되어 개항장을 누볐다. 아주 솔직히 감상을 말해보자면, “생각보다 재밌는데? 이거 왜 재밌지?”의 연속. 

 

일본제1은행 건물을 활용한 인천개항박물관
일본제1은행 건물을 활용한 인천개항박물관

잠시 인천개항박물관에 들렀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활용해 다양한 근대 문물과 관련 자료를 수집 및 연구하는 곳이었다. 차례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항장 일대 조계지 거리, 은행을 통한 수탈 등의 테마 전시가 이어졌다.

짜장면박물관
짜장면박물관

이외에도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박물관, 대불호텔전시관 등 총 5개의 박물관이 있는데 통합관람권을 이용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알차게 관람이 가능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대불호텔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역사가 펼쳐진다. 운영난으로 인해 호텔에서 셋방으로, 셋방에서 중국음식점으로 변화를 거쳤다고.

중구생활사전시관
중구생활사전시관
이국적인 일본식 목조건물
이국적인 일본식 목조건물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중구생활사전시관은 7080 추억의 포토존으로도 좋다. 일본풍 목조건물이 가득한 근대 거리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188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으로, 각국 공동 조계지에 위치해 각국공원으로 불리다 1957년 맥아더장군 동상 건립 이후 현재까지 자유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자유공원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마지막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 답이 궁금하다면 직접 인천을 찾아 도전해 보시길. 

자유공원에 우뚝 선 맥아더 장군 동상
자유공원에 우뚝 선 맥아더 장군 동상

 

●엄마의 추억이 딸의 공간으로 


배다리헌책방거리에서는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바로 인천에서 나고 자란 친구다. 어떤 공간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알려주기 어렵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그 공간에 추억이 끼어들게 되니까. 평생 기억하고 싶은 책방을 친구가 꽁꽁 숨겨둔 이유라고 했다. 친구의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친구의 단골 책방은 친구의 어머니가 고등학생 때부터 다니던 곳이자 친구가 어릴 때부터 꼬박 하루를 보낸 곳이었다. 들어서자마자 헌책 냄새가 풀풀 풍겼다. 어린이 서적, 역사, 세계문학, 한국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가를 한참 들여다보다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고르기로 했다. 우리의 취향을 골몰하며 정성껏 골랐더니 “이거 내가 판 책 같은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한마디에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오래된 책방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책방이 솟아나기도 하는 배다리헌책방거리에서. 

배다리헌책방거리 아벨서점
배다리헌책방거리 아벨서점
헌책방거리 속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헌책방거리 속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월미도는 활기가 가득했다. ‘바이킹 안전바가 풀린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농담처럼 퍼져나가는 월미테마파크가 대표적이다.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에는 어찌나 벌벌 떨었던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바이킹에 탑승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을 해소했다. 바이킹이 무섭다면 디스코팡팡, 회전목마를 즐겨도 좋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었다. 일몰을 보기 위한 이들이 하나둘 바닷가로 모여들고, 석양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에 여념 없었다.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선 음식점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이들과 월미도의 밤을 수놓는 버스킹 소리, 화려한 네온사인까지. 어느새 밤이 깊었다.  

월미테마파크에서는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월미테마파크에서는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월미도 야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이들
월미도 야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이들

 

●물 위를 떠다니는 낭만


송도 센트럴파크는 바닷물을 이용한 국내 최초 해수공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상 보트였다. 공원 가운데 위치한 인공수로에서는 수상택시, 카누, 문보트 등 다양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이용 시간은 30분. 구명조끼를 입고 아늑한 문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 모양이 달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밤이면 반짝이는 조명이 운치를 더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레버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선장이 될 수 있으니, 여기저기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항해가 시작됐다. 짜릿한 바이킹을 즐겨서일까.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지만, 여유를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기념사진을 남기는 연인과 즐거운 수다를 나누는 친구들이 모두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다른 보트보다 높은 문보트를 선택했다면 수로 가운데 위치한 다리를 지날 때 꼭 가운데로 통과할 것. 

고층 빌딩 사이 송도 센트럴파크는 여유를 선물한다
고층 빌딩 사이 송도 센트럴파크는 여유를 선물한다
수상보트는 센트럴파크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
수상보트는 센트럴파크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

보트를 타고 한 바퀴 가볍게 둘러봤으니 직접 걸어볼 차례. 무려 37만㎡에 달하는 면적에 가볍게 둘러보는데도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발길 가는 대로 걷다 한옥이 모여 있는 작은 한옥마을을 만났다. 고즈넉한 기와집이 풍기는 고풍스러움과 공원을 둘러싼 높은 건물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이외에도 다양한 테마의 볼거리가 가득한데, 현재 코로나19로 사슴정원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푸른 나무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산책로를 걸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달을 닮은 문보트
달을 닮은 문보트

 

인천 글·사진=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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