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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역사의 시작, 란쌍 왕국

  • Editor. 차민경
  • 입력 2021.10.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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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씨엥통
왓 씨엥통

●에메랄드 불상, 프라깨우의 흔적


라오스에서 불교와 평화, 독립이 지닌 의미는 상당하다. 국가 문장에서도 라오스 불교의 상징인 탓 루앙 불탑(Pha That Luang)을 ‘평화, 독립, 민주주의’ 등을 표기한 리본이 감싸고 있다. 이와 같은 가치가 중요해진 이유는 라오스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란쌍(Lan Xang) 왕국이 그 시작점이 된다. 특히, 짧지만 굵은 라오스의 역사는 에메랄드 불상, ‘프라깨우(Phra Kaew)’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라오스에 깃든 불교문화
라오스에 깃든 불교문화

라오스 여행이 시작된다면 란쌍 왕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도 가능하다. 현재 원칙적으로 모든 외국인이 입국 금지인 상황이지만, 라오스 코로나19 예방통제대책위원회 허가를 받으면 단체 관광객 입국이 가능한 상황(10월5일 기준)이다. 또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50%를 목전에 둔 만큼 라오스 여행 재개도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란쌍 왕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다가올 여행을 기다리는 것도 좋겠다.

란쌍왕국의 흔적
란쌍왕국의 흔적

●란쌍 왕국의 시작


란쌍 왕국 이전의 라오스는 여러 소국의 각축전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의 왕가에서 성장한 ‘파 웅음(Fa Ngum)’은 크메르 왕의 명령을 받들어 지금의 라오스 일대를 공격해 점령에 성공한다. 그는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 수도를 정하고, 크메르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1353년,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조 란쌍 왕국을 세우게 된다.

‘란쌍’은 라오스어로 ‘백만 마리의 코끼리’를 뜻한다. 란쌍 왕국의 중심, 무앙수아(루앙프라방)는 예로부터 코끼리가 많기로 유명해 붙은 이름이다. 당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국왕과 장군들이 코끼리를 타고 군대를 지휘했던 만큼, 코끼리가 많다는 것은 강한 국력을 대변하는 그 자체로 여겨졌다. 게다가 파 웅음의 시대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라오스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당시 신성한 황금 불상인 ‘프라방(Pra Bang)’을 스리랑카에서 란쌍 왕국으로 가져오게 된다.

이에 얽힌 전설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오던 이 불상이 비엔티안에서 벗어나지 않아 당시 수도였던 루앙프라방까지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불상을 비엔티안에 두게 됐다고 한다. 다만, 란쌍 왕국의 초대 왕이자 훌륭한 군사 지도자인 파 웅음은 귀족과 지방 세력을 장학하지 못한 탓에 결국 왕권에서 쫓겨나게 된다.

호 쁘라께오 박물관
호 쁘라께오 박물관

●최대 번영, 그리고 평화


파 웅음 다음으로 그의 큰아들, 쌈쎈타이(Sam Saen Thai)가 왕권을 이어받는다. 국왕의 이름인 ‘쌈쎈타이’는 당시 란쌍 왕국에 살았던 성인 남성의 숫자를 뜻한다. 쌈쎈은 ‘30만’을 뜻하며, 타이는 ‘타이족’을 뜻한다. 타이족은 오늘날 라오스와 태국 중북부 지방에 살던 민족이다.

쌈쎈타이는 18세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행정체계를 개편하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무려 43년을 통치했다. 라오스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기를 맞이한 것도 이때다. 동시에 란쌍 왕국의 평화도 오랫동안 유지됐다. 쌈쎈타이 사망 이후 혼란기도 있었지만, 14대 왕 ‘위쑨나랏(Wisunarat)’이 재위하면서 다시 안정기를 맞이했다.

위쑨나랏은 자신의 이름을 따 루앙프라방에 왓 위쑨나랏(Wat Wisunnarat)이라는 사원도 건설했다. 이후 왕권을 이어받은 포티싸랏(Phothisarat)은 불교를 라오스의 유일한 종교로 인정했다. 당시 태국 중부 지방에 있던 왕국, 아유타야 왕국까지 장악하기 시작하며 루앙프라방보다 남쪽에 있는 비엔티안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불상
에메랄드불상
탓루앙사원
탓루앙사원

●혼란의 시대


포티싸랏 왕의 뒤를 이어 란쌍 왕국의 왕권을 차지한 쎗타티랏(Setthathirat)은 란나 왕국에서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에메랄드 불상)’를 란쌍 왕국으로 가져오게 된다. 또 당시 세력을 불리던 버마, 그러니까 오늘날의 미얀마를 의식해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을 천도하게 된다.

쎗타티랏은 당시 버마의 위협으로부터 란쌍 왕국을 지켜냈으며, 탓 루망(That Luang)과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를 건설한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버마의 통치를 받게 됐지만 란쌍 왕조의 마지막 국왕인 쑤리야웡싸(Souliya Vongsa)가 재위하며 란쌍 왕국은 황금기를 맞는다. 무려 67년간의 평화가 계속됐지만 그를 마지막으로 라오스는 3개의 왕국으로 분열하며 다시금 혼란기로 돌입한다.

루앙프라방 전경
루앙프라방 전경

▶왕국의 몰락과 새로운 라오스


라오스는 계속된 분열로 국력이 약해졌다. 심지어 오늘날 방콕에 수도를 두고 있던 태국 ‘시암(Siam) 왕조’는 외교를 빌미로 란쌍 왕국의 수도인 비엔티안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당시 시암은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와 파방을 방콕으로 옮겨갔고 오랫동안 라오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재 에메랄드 불상인 ‘프라깨우’는 방콕 왕궁 내 자리한 ‘왓 프라깨우’에 자리한다.

루앙프라방은 버마의 침략, 시암의 침략 등을 거치며 상당수의 사원이 화재로 소실됐다. 완전히 힘을 잃은 라오스는 프랑스의 기나긴 식민 지배마저 받게 된다. 식민 지배가 끝나갈 무렵 반 프랑스 민족주의자와 라오스 공산당 간의 내전으로 시련을 겪었으며. 2차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중 미국의 공중 폭격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받기도 했다. 1975년, ‘빠텟 라오’가 내전에서 승리하며 지금의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이 됐다.
 

글 차민경, 사진 트래비 (Travie)
자료 제공 메콩 연구소, 한-메콩 협력기금 (Mekong Institute, Mekong-ROK Cooperation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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