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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버투어리즘을 말하는 이유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1.1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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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국에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기억을 살짝만 되돌려 봐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은 섣불리 손대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잠시 열기가 식었을 때 살살 벗겨 보자.

●종로구가 쏘아 올린 특별관리지역 


회상해 보자. 북촌에 깃발 든 관광객과 사진 출사 동호회와 인스타그래머들이 북적이던 그 시절을. 고즈넉한 궁궐 북편 한옥 마을이 핫 플레이스가 된 건 누구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상인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쓰레기와 소음, 주차 문제로 종로구청엔 민원이 밀려들었다. 정류장 인근 도로를 점령한 관광버스 때문에 할머니가 도로까지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이화마을의 담벼락 훼손 사건, 서촌과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 결국 비슷한 갈등이다. 


종로구에서는 2017년부터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곤소곤 대화해 주세요(범칙금 3만원)’, ‘문 틈새로 몰래 촬영하지 말아 주세요(과태료 최대 4,000만원)’ 등 에티켓 여행을 홍보하고 방문 제한 시간을 지정하고, 북촌지킴이도 운영해 왔지만, 문제는 강제력이 없었다는 것. 결국 오버투어리즘 대응책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종로구가 떠안게 됐다. 


“처음엔 못한다고 했어요. 무엇보다 이건 일개 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했죠. 하지만 정부의 관광정책 기본 기조는 관광 활성이잖아요. 사실상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건드릴 컨트롤 타워가 없었어요.” 

감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관광을 전공하고 종로구의 임기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인 이은지 문화관광국 관광과 주무관 앞에 뚝 떨어졌다. 한 마을의 문제가 아니라 도심 관광시스템 개선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주민, 시민, 업계 관계자, 관광·교통·환경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일반적 행동자유권(헌법 제37조 제2항)에 제한을 두려면 무엇보다 특별관리지역 지정 관련 법 규정의 신설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종로구는 2018년 8월과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관광진흥법 일부개정안(제48조의3 지속가능한 관광활성화)을 건의했고, 올해 4월 공포를 거쳐 10월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그사이 종로구에서는 발 빠르게(또는 절실하게) 개정된 내용을 종로구 관광진흥조례 규정(제10~11조)에 반영해 특별관리지역 지정을 추진 중이다. 이로써 주민 정주권을 위해 특별관리지역을 지정하고 마을 방문시간 제한이나 과태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3년여에 걸친 법 개정이 이뤄지는 동안 이은지 주무관은 북촌과 서촌의 오버투어리즘 관련 주제로 지난해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행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깊은 고민을 병행한 것이다. 

관광 에티켓 안내판이 부착된 모습 ©종로구청
관광 에티켓 안내판이 부착된 모습 ©종로구청

 

●법 그리고 최소한의 도덕 


하지만 여행의 멈춤은 예고도 없이 닥쳐왔다. 날 선 민원에 전전긍긍하며 대응한 오버투어리즘 현상은 코로나와 함께 허무하게 증발해 버렸다. 동네가 한산해져서 좋다는 건 좀 쓸쓸한 자위이고, 마을의 상권에도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낙담도, 방심도 금물. 차분하게 생각하고 대응할 시간을 벌었다. 한 걸음 더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유비무환(有備無患)하기 좋은 때가 없는 셈이다. 대립보다는 상생, 공존을 위한 지속가능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니 말이다. 


이번 법 개정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도 ‘지속가능한 관광’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현행법에서는 ‘지속가능한 관광’을 환경적인 측면에서만 규정해 왔다면, 이번 개정안 수용으로 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광 역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대중(대량) 관광이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인식은 보편화되었지만, 지역의 공동체와 문화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이제야 법의 손이 닿은 셈이다.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하지 않나. 오버투어리즘의 원인은 ‘숫자’가 아니라 ‘상식과 도덕’의 위기일지 모른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통화하지 말고, 남의 집을 함부로 기웃거리지 않고,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 방문을 자제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상식 말이다. 

●가까운 사람도, 멀리서 오는 사람도


주민 정주권 보호와 관광지로서의 매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은 ‘특별관리지역’을 지정할 ‘진단 툴’이 필요했기에 종로구는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특별관리지역 지정 진단지표’를 개발하는 용역을 진행했다. 부산 감천마을이나 통영 동피랑 등 전조현상이 보이는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지표다. 2022~2023년 사이에는 실제로 특별관리지역을 지정하고 운영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규제 및 혜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2024년 이후에 정리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의 최전방에 종로구가 있다. 이런저런 규제보다는 세금 감면 등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만들고 싶지만, 주무 부처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복잡해 갈 일이 멀다. 


“주민들도 의견이 분분해요. ‘지금 하는 일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인 건 아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고,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는 말씀을 주신 분도 있으세요. 사실, 관광객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북촌 주민들은 물론이고, 지자체에서도 관광객을 막고 싶은 건 절대 아니거든요. 북촌 주민들은 자부심의 스케일이 달라요. 역사 등에 대한 지식도 많으시고, 관광 현안이나 정책에 대한 질문 수준도 달라요. 어느 쪽이든 관광객을 오지 못하게 막자는 의견은 절대 아니에요.”


한꺼번에 몰려올까 두렵고, 자고 나면 아무도 오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 좀 ‘뜬다’는 여행지의 딜레마다. 법은 최후의 보루일 뿐, 분출하는 여행자의 욕망을 다루는 컨트롤 타워는 우리 자신이다. 오지 않은 것처럼 가시라. 그래야 다시 가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 근자열원자래,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온다는데, 과연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참, 최근 북촌의 주말이 다시 붐비고 있다고 한다. 

▶이은지 종로구 문화관광국 관광과 주무관

학부와 대학원에서 관광을 전공한 후 종로구청의 관광 전문 임기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한양도성길을 명실상부한 서울 대표 여행코스로 발굴한 일이나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 조성 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던 일. 작년에 패스한 박사 논문의 주제였던 북촌 주민과 관광객까지, 재미있고 보람찬 순간들을 쌓아 가고 있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트래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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