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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향한 조금 낯선 시선

  • Editor. 손고은 기자
  • 입력 2021.11.01 09:10
  • 수정 2021.11.0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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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창 말고, 치킨 말고, 김광석 말고.
근대기 대구를 일으킨 건축물을 찾았다.

폐철강공장의 거친 느낌을 살려 개조한 카페, 빌리웍스
폐철강공장의 거친 느낌을 살려 개조한 카페, 빌리웍스

보고, 듣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살이라서, 그래서 여행만큼은 가볍길 바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봤다. 호기심을 쫓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잠자리를 찾는 데 시간을 쏟았다. 생각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팩폭’ 세포가 물었다. “언제까지 비워 내기만 할 건데!” 


대구 건축문화기행을 접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건축 전공자도 아니고, 평소 건축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대하기 어려운 존재다. 아마 그 안에 담긴 게 너무 많아서일 거다. 구조며 소재, 기법은 물론 시간, 즉 역사까지 깃들었다고 생각하면 겁이 났달까. 그런 내가 건축문화기행을 다녀왔다. 쉽게 부수고, 버리고, 다시 짓는 일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아직 남아 주어 고마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들었다. 한동안 텅 비었던 마음이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대구 건축문화기행

2021년, 대구에서 의미 있는 건축 자원이 모여 네 개의 길이 생겼다. 대구의 건축물을 통해 문화와 역사를 전하고 의미를 되짚기 위해 대구관광재단이 조사하고 평가해 만든 코스다.  올해 12월12일까지 ‘나를 짓다’ 캠페인을 통해 건축문화기행 코스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질 예정이다.  
 

▷Course 1  브릭(Brick) 로드 | 도보 1시간
1900년대 대구 근대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다.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이국적인 건축물에서 동양의 건축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Course 2  대구 르네상스 | 도보 1시간 
그대로 보존되어야 할 건물이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재조명 받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책과 민간의 투자로 만들어진 대구의 새활용 건축물을 따라 걷는다.  

▷Course 3  천년 대구 | 동구 코스 차량 1시간, 달성군 코스 차량 1시간 30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까이에 남아 고맙다. 대구의 찬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옛 건축물. 정겹고, 안온한 길이다. 

코스사진 ©대구광역시

▶▶Course 2  
대구 르네상스

언제나 새것이 옳은 건 아니다 

1905년 1월1일, 대구역이 문을 열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이국적인 기차역 앞으로 서양식 카페와 양품점, 식당과 공장, 금융 기관들이 모여 상권을 형성했다. 기차역은 돈을 몰고 왔다. 그랬던 동네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건 1969년 동대구역이 들어서면서다. 훨씬 큰 규모의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구도심은 쓸쓸하지 않다. 대구는 낡고 늙은 공간을 지우거나 방치하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제자리를 지키며 구도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대구의 르네상스를 만났다. 

●예술가들이 모이면 꽃이 핀다 
향촌문화관·대구문학관


1950년 7월. 6·25 전쟁으로 전국에 피란민이 넘쳐나던 때였다. 대구에도 전쟁에 떠밀려 내려온 외지인들이 모여 피란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대구역 맞은편 향촌동은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문화 예술의 꽃을 피운 거리다. 예술가들이 향촌동에 모인 건 비슷한 이유에서다. 가장 번화했던 대구역 앞으로 세련된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선술집과 같은 공간이 많았고, 이곳에서 이중섭이나 구상, 유치환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향촌동에는 ‘대화의장’과 같은 복합문화공간을 비롯해 여러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들이 문을 열고 영업 중인 걸 보면, 대구 르네상스는 70년 이상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향촌문화관과 대구문학관은 대구 르네상스의 중심, 향촌동에 위치해 있다. 조금 평범해 보이는 베이지색 건물은 과거 ‘은행’의 기능을 맡았다.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 선남상업은행으로 쓰이다가 조선상업은행 대구지점, 한국상업은행(지금의 우리은행) 대구지점을 거쳐 2014년 대구시가 인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1~2층은 향촌동 일대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기록해 놓은 향촌문화관으로, 3~4층은 대구가 낳은 문호들의 작품과 일화를 기록한 대구문학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층층이 대구의 거리를 거닐었다. 과거 영광이 가득하던 자리에서 다가올 앞날의 영광이 언뜻 스쳤다.

주소: 대구 중구 중앙대로 449 
운영시간: 4~10월 09:00~19:00, 11~3월 09:00~18:00, 월요일 휴관

 

●여전히 아름다워 잔인한 
대구 근대역사박물관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 지금으로 치면 도청과 같은 경상감영이 대구에 있었다. 1932년 경상감영 바로 앞으로 보란듯이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이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건물. 철저한 보안과 경계를 위해 삼중 문을 설치했고 독일에서 수입한 벽돌로 외벽을 쌓았다. 

조선식산은행은 식민지 수탈의 상징적 존재였으나 24칸짜리 한옥이었던 경상감영과 대조되는 이국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은 길을 오가는 조선인들에게 일본 제국주의를 은밀하게 선전했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금융의 역할을 이었다. 이후 2011년, 근대기 대구의 거리와 생활 모습을 영상과 사진, 모형 등으로 전하는 지금의 대구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의미와 역할을 새로 얻었다. 대구 근대역사박물관은 기능만 바뀌었을 뿐, 이국적인 모습은 그대로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열심히 사진에 담다가도 적산을 어떻게 대하는 게 맞는지, 잠시 침묵했다.

주소: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67
운영시간: 매일 09:00~18:00, 월요일 휴관

●공장으로 출근하는 작가들 
대구예술발전소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기능이 노후되는 것처럼 건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수명이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치의에 따라 개량, 보수, 보강 공사, 리모델링과 같은 수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1949년 한국담배인삼공사 대구연초제조창 별관으로 사용되던 건물도 1999년 폐쇄됐다가 2013년 대수술을 받아 대구예술발전소가 되어 돌아왔다. 담배를 만들던 공간이 예술을 창작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한 것. 대구시에서 무려 200억원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다양한 장르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국내외 문화예술과 관련된 각종 간행물과 서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예술정보실, 공연장, 키즈아트팩토리 등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의 신진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고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레지던스도 마련됐다. 이제 이곳은 똑같은 물건을 찍어 내는 공장이 아니다. 창의력을 발휘한 가지각색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주소: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31-12
운영시간: 4~10월 10:00~19:00, 11~3월 10:00~18:00, 월요일 및 1월1일, 설날, 추석날 휴관

●새활용의 의미 
수창청춘맨숀


대구예술발전소 이웃으로 수창청춘맨숀이 있다. 수창청춘맨숀은 1976년부터 대구연초제조창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택으로 사용됐다. 1996년 폐쇄되고 20년 이상 방치된 채 시간을 보내다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도심재생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낡은 건물의 외벽은 을씨년스러워 보여도 그대로 보존된 데 의미가 있다.

이곳의 가치를 알아본 김향금 관장은 찢어진 벽지, 테이프 자국까지 오래된 것들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낡은 것과 어울리는 그림과 오브제를 배치했다. 굳이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새활용’의 가치를 실천한 흔적이 돋보인다. A동, B동, C동. 3개 동은 이제 청년 예술가들의 실험실이자 대구 시민들에게 열린 복합문화공간이다. 폐허에 예술을 더하니 더 이상 이곳을 기피하는 이들은 없다. 예술은 사람을 모은다.

주소: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27
운영시간: 매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온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 팬으로서 KBO 리그 10개 구단의 홈구장 ‘도장깨기’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대구시민운동장은 2015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이었다. 지금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로 이전했지만. 대구시민운동장은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이기 이전인 1948년부터 시민들의 건강한 활동을 지원하는 체육시설로 개장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야구장과 축구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60년 이상 조금씩 몸집을 키운 운동장 안에는 오늘도 푸릇한 초록 잔디가 쑥쑥 자라고 있다.

주소: 대구 북구 고성로 191

●낡은 철공소와 교회 
빌리웍스


대구시민운동장 북쪽은 1960년대 철강산업의 꽃을 피운 곳이다. 철공소들이 북적이던 한때가 있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임차료 상승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 외곽으로 떠나면서 인적 드문 동네가 됐다. 빌리웍스는 폐철강공장의 변신을 제대로 보여 주는 카페다. 대구에서 공장을 카페로 만든 첫 번째 시도다. 공장 창고 내부 구조물의 거친 느낌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수창청춘맨숀과 마찬가지로 낡고 오래된 것과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 조명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창고와 맞닿은 2층짜리 건물 폐교회는 깨끗하게 페인트칠하고 여러 가지 식물과 그림을 걸어 또 다른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빌리웍스는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운 ‘예술’을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그래서 빌리웍스에서는 맛있는 커피와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나 굿즈, 서적 등을 만나고, 창고 분위기와 어울리는 전시도 자연스레 감상할 수 있다. 한적했던 골목에 따뜻한 체온이 감돈다.

주소: 대구 북구 고성북로10길 41
운영시간: 매일 11:30~22:00 

●우리, 비밀의 정원에서 만나 
투가든


빌리웍스 바로 맞은편에는 이마트24가 조성한 복합문화공간 투가든(2garden)이 있다. ‘정원으로 향한다(To garden)’는 의미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정원이라는 의미도 담은 복합문화공간. 의약품 폐공장과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 대기업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났다. 투가든에는 무려 400여 종의 와인을 구비한 편의점 이마트24 아웃렛과 커피와 베이커리로 유명한 나인블럭, 스테이크 하우스, 문화의 정원이 자리하고 조만간 프리미엄 피트니스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원’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다양한 식물이 담벼락 너머로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주소: 대구 북구 옥산로 118

●당신의 열정을 응원 
대구삼성창조캠퍼스


대구 르네상스 코스의 마지막 장소는 대구삼성창조캠퍼스다. 삼성그룹의 제일모직 대구공장 부지를 활용해 조성된 곳이다. 대구에서 태생한 제일모직이 구미로 공장을 옮기면서 삼성그룹은 할일을 잃은 부지에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었다. 오페라하우스가 꽤 큼직한 규모로 들어섰고 삼성의 모태가 되는 삼성상회 복원 건물을 비롯해 창업자 호암 이병철 선생의 동상이 눈에 띈다. 대구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이병철 선생의 동상을 모신 걸 보면 지금의 캠퍼스 땅이 대구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쁨을 가져다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캠퍼스 내 경북 최초의 창조경제 혁신센터에서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미래를 이끌어 갈 꿈을 꾸고 있으며, 옛 기숙사 건물에는 신진 작가들의 스튜디오와 아카데미가 둥지를 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왠지 모를 넉넉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이든 시작의 끝엔 크게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주소: 대구 북구 호암로 51 

 

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대구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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