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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맛이 느껴지는 골짜기 마을, 곡성"

  • Editor. tktt
  • 입력 2005.11.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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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에 걸쳐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곡성이었다. 깊은 골짜기 가운데 숨어있다고 해서 이름이 곡성이란다. 처음 그 이름을 고모님에게 들었을 때는 고모님의 사투리만큼이나 구수하고 푸근한 것이 퍽이나 시골스럽다고 생각했다. 시골이 무엇이냐, 할머니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며 대문밖으로 나와 반겨 주시고, 밭에서 손수 따오신 수박이며 토마토를 시리도록 차가운 지하물로 헹궈주시던, 대청마루에 앉아 햇살 내리쬐는 마당의 풍경이 나른하던, 그런 곳 아닌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지 못하게 되면서 시골이란 이름은 어릴 적 동요만큼이나 그립고 아득한 곳이 되버린 지 오래다. 그런 시골마을을 난 내 딸아이에게 뵈주고 싶은 마음에 조는 아이를 담요에 싸 안고 버스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곡성은 시골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흙길을 조금 가니 곧 동네 분들이 고모님께 아는 척을 하신다. 처음 보는 이들의 눈빛은 퍽 푸근하다. "누기?"란 말에는 호기심보다는 "허허허, 잉잉잉." 다 안다는 듯한 푸근함. 난 생면부지의 그들이 내 고모, 이모처럼 마구 가서 응석을 피우고 싶을 만치 익숙하게 느껴졌다. 눈치빠른 아이는 그들의 표정을 읽고는 금새 그들에게 매달려 귀여움을 떨었다. 그래서 얻은 감이며 떡, 사탕을 아이는 종일 달고 다녔다. 인구가 만여명도 되지 않는 마을, 그 흔한 공장 하나 자리잡지 않은 무공해의 그 마을은 섬진강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섬진강이라고 하면 우리 나라 지도에도 익숙한 퍽 큰 강 아니었던가. 그런 강이 마치 깊은 산속의 개울처럼 맑은 것이 나에겐 낯설어 이국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더랬다. 사람이 적으니 나무가 많고, 공기가 좋으니 물도 맑은가? 그 강을 보며 서울에만 갖혀있던 딸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던 것은 개울에서 머리감고 개구리, 송사리 잡던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인가 보다. 11월의 노을진 숲은 그대로 강에 비춰 그림처럼 예뻤는데, 웅장하다거나 절경이라기 보다는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시골스러운 소소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난 더 좋았다. 그런 곳은 ´와´하는 탄성을 나오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리운 고향을 다시 본 듯한 뭉클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원래가 큰 상처보다는 손가락 슬쩍 베인 상처가 더 쓰린 법이고, 박물관견학보다는 할머니랑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 잤던 기억이 가슴에 더 큰 자리를 메우는 법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 강을 기차를 타고 가며 보았다. 곡성은 큰 소득이 별로 없는 지역인지라 나름대로 헌 기찻길을 사들여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광광상품을 내걸고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의 무대로 쓰여지기도 했고, 문화재로도 지정되어있는 낡은 기차역, 나무들로 우거진 낡은 기찻길, 복원한 모형 기관차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없는 나름의 멋을 더해 시골길을 심심치 않게 해주었다. 곡성은 섬진강을 끼고 있어 참게라는 민물게가 유명한 모양이었다. 작지만 단단하고 두개의 큰 집게에는 털이 보숭보숭 나 있는데 게장을 담가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또 유난히 감나무가 많았다. 그때까지도 나무 군데군데 감이 달려 있었는데, 약을 많이 하지 않아 모양은 투박해도 맛이 달아 알음알음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것 마저도 본격적인 농사로 발전한 곳과는 다르게 옆집사람들과 나눠 먹듯이, "돌이네 사과가 엄청 달더라니께.""벌써 묵고, 우리 감나무 털어강께 느도 싸게 와. 없어서 못먹어불라." 하는 식이다. 그런 인심또한 곡성답다. 우리는 섬진강 강가에 노을이 지기도 전에 서둘러 출발을 했다. 그래도 한밤중에야 도착을 할 수 있기때문에 그것도 늦어진 거라면서 동네분들이 재촉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또 갈길이 멀어 한숨을 쉬는데 딸아이가 못내 아쉬운지 동네 할머니를 붙잡고 늘어졌다. 할머니는 "또오믄 되니께, 응?"달래어 아이를 태운다. 그렇지, 또 가면 된다. 골짜기 마을이니 꽃이 피면 또 얼마나 이쁠까. 내년 봄, 아이와 또 한번 찾으려고 한다. 그래도 사철 시골에 대한 그림은 아이게게 남겨줘야 한다고 핑계삼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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