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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호주여행기

  • Editor. tktt
  • 입력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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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호주여행기


 바야흐로 때는 2005년 4월 25일 외국문화를 정복하리란 대찬 마음을 품고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호주 케언즈 행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출발도 하기전인 하루 전날밤부터 사고는 터졌다. 여행 잘다녀오겠다고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에 오토바이( 흔히 뽈뽈거려 뽈뽈이라는 스쿠터 )를 이용했는데 쓰레기를 피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오토바이 고놈! 지금 생각해도 참 위험한 놈이다! 그리고 나서 내 오른쪽 발목은 왼쪽 발목의 두배가 되어있었다. 호주에 가니 못가니하는 가족의 논쟁속에서 이때 아니면 언제 한번 나가보나라는 심정으로 한의원에서 침한방 맞고 부은 발목에 치자 열매로 만든 약을 붙여 응급처치를 끝내고 정말 배낭하나 달랑메고 절뚝거리며 호주가기위해 경유하는 일본의 JAL기를 탔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약 6시간을 기다린후 저녁 9시쯤 다시 호주 콴타스 항공기를타고 공항에 도착후 검역대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호주에서 첫 번째 일이 터졌다. 바로 발에 붙인 치자가 문제였다. 검역관이 그 치자붙인 것을 보고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Medicine"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통하지 않았다. 약의 성분을 묻는 것 같았는데 내가 치자의 성분을 우찌 알아? 결국 생각해낸 것이 된장이었다. 된장을 설명할수 없어 전자 사전을 뒤져 보여주었더니 드디어 호주 케언즈의 땅을 밟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새벽 5시였고, 나는 배낭하나 달랑메고 목적지없이 왔기에 어디로 갈지 막막했다.

 


 

 일단 날이 밝기를 공항에서 기다린후에 여행자 숙소가 있단 말을 듣고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행자 숙소는 보통 4인실을 함께 쓰는데 가끔씩 남녀가 방을 함께 쓰는 경우도 생겼다.(이게 웬떡?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케언즈에서 비자라벨을 받고 일을 하기위해 필요한 Tax file과 은행계좌를 트고 케언즈 도시를 구경했다. 호주 출발할 때 가져온 돈은 겨우 한달치 생활비밖에 없었기에 약간의 노동의 댓가로 숙식을 제공받고 농장문화를 교류한다는 ‘우프’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하지만 문화교류는 무슨놈의 문화교류!! 이건 거의 노동자 또는 하인취급에 가까웠다. 우프를 하기위해 어느 시골지방 깊은 산속 농장에 갔는데 (농장들은 거의 깊은 산속에 있었다.) 정말 산의 잡일 다하고 잠자리는 캐러밴(캠핑카. 고물이었다.)이었고, 그것도 유리창이 다깨져 밤에는 모기들과 사투를 벌려야하는 그런 곳이었다. 일도 많이 하는 날엔 밥도 맛있게 해주고 조금하게되는 날이면 거의 빵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하는 찰나 농장주가 나에게 교회에 가자고 권했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녔기에 그나마 종교에서 위안을 얻고자 좋다고 했고, 함께 교회로 갔다.

그런데 젠장!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교회에는 목사도 없었고 분위기 자체가 왠지 음산했다. 그 교회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이분위기는 도저히 빠져 나갈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외국에서 소리소문없이 제거될순 없잖아! 교회밖에 Kingdom 어쩌구 적혀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여호와의 왕국 즉 여호와의 증인집단 이단종교였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못한 이단 종교까지 간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수 없었고, 한달을 머무르기로 한 약속을 파기하고 탈출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넓은 호주땅!! 땅이 넓다보니 탈출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짐을 싸고 몰래나와 산속을 헤집고 걸은지 4시간. 겨우 집한채 보일똥 말똥 했으며, 히치하이킹(차를 잡아 얻어타는 일) 조차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기적적으로 히치하이킹을 통해 다시 케언즈 도시까지 갈수 있었다.

 


그때는 벌써 호주에 도착한지 20일이 훌쩍 지난후였고 돈도 점점 바닥나는 상황이라 어떻게 일을 구할까 고민하는동안 야외 수영장 앞에서 작은 가방을 도둑맞았다. 누가 호주사람들은 다 친절하다고 했던가? 순간 무너지는 가슴과함께 외국사람들이 전부 도둑으로 보였고, 가방에는 여권과 약간의 돈, 전자사전, 핸드폰등이 들어있어 이제 여권없이 어떻게 여행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경찰서에가서 신고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돈은(얼마되지도 않았지만..) 은행에 저금해두어 숙식비는 조금 남아 있었다. 경찰서에서 말도 안되는 영어와 손짓 발짓 다해가며 모든 체크 사항과 연락처, 주소등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오니 2시간 정도 후에 가방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고, 가방속에는 다 훔쳐가고 달랑 여권하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야?! 아~ 재수!를 연발 날리고 다시 일자리를 찾기로 하고 여행안내소와 책자, 나같은 배낭 여행자들에게 정보를 모았지만 직접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은 도박과 같았다. 결국 여행 책자에 안내된 곳중 일이 많을 것 같은 버다버그라는 호주 동부로 내려갔고, 버스를 쉬지않고 22시간이라는 긴시간을 타야하는 경험도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버스에서 먹을 샌드위치를 무려 12개나 만들어싸고 (재료는 식빵에다 달랑 햄버거 패티 하나였다.) 물병하나로 농장일이 많다는 번다버그에 무사히 도착했다.

 

 

 번다버그는 일과 숙소가 많다는 안내책자와는 달리 일은 많아도 숙소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같은 세계의 배낭족들이 이미 그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아~절망! 하루죙일 발품을 팔았지만 결국 숙소를 구하지 못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숙(이런 내팔자!)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동양사람들에게 밤늦게 위험한 곳이 호주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만약 이글을 읽는 사람이 동양인이라면(뭐 당연하겠지만~) 외국에서 밤늦게 활보하는 것을 권하고 싶진않다. 어쨌든 노숙하는 그날저녁 처참하게도 비까지 내렸다. 비를 피해 야외무대같은 곳에 앉아 있었는데 곧 경찰이 내게왔다. 여기서 뭐하냐고...(뭐하겠냐? 보면 뻔한걸~) 계속 여기 있을 것이냐고 눈치를 주길래 밤새도록 길을 걸으며 그렇게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날 운이 좋게도 한 숙소에서 방이 생겨 Federal Backpackers란 곳에 들어갔다. 거기서 참 좋았던 것은 나같은 세계 여러나라의 배낭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고 함께 일하며 어울릴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은 일을 일찍 끝내고 다함께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 독일, 프랑스, 일본, 아프리카 , 영국, 호주등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이니 자연스레 월드컵이 되기도 했다. 물론 나도 헤딩슛으로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국친구에게 영어를 배우는 기회를 가질수도 있었고 라덱이라는 독일 친구는 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역시 한국의 자랑스런 매운 맛인 고추장으로 불고기를 만들어주어 서로간에 많은 어울림을 나눈 장소였다.

 농장일들은 운에 따라 결정되었는데 주로 과일이나 채소따기였고, 쉬운일은 별로 없기에 많은 시간을 일하고 돈을 많이 받는다는게 이곳의 대세였다. 처음에는 농장의 4대 피할작물(쥬키니, 바나나, 망고, 피망)중 하나인 쥬키니 따는 것을 시작했는데 정말 허리가 끊어질만큼 아푸고 돈이 안되는 그런 일이였지만 한 4일후에 운좋게 토마토 세척하는 곳에서 일을하게 되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보수가 꽤 좋았기 때문에 두달간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는 호주의 문화 중심도시인 멜번에 가기로 작정하고 일을 그만두었는데 일하는 마지막 날은 내생일이었다. 별기대도 없이 그냥 조용히 넘어가리란 나의 예상을 뒤엎고, 일을 같이한 외국 동료들이 나 몰래 케익을 직접 굽고,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며 내 영어 이름인 Jimmy를 연신 외쳐주었다. 태어나 처음받는 색 다른 감동이었고, 그 곳의 아쉬움을 뒤로한채 브리즈번을 거쳐 문화의 도시 멜번에 도착했다.

 

 


 멜번의 아름다운 도시광경과 고급스런 건물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고 매력적이었다. 한 삼일정도는 멜번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는 기분좋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후엔 Great ocean road라는 거대한 바닷길 투어에 참여했는데 호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마음속까지 뻥뚫은 자유함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또한 그 곳에서 야생 돌고래, 캥거루, 코알라도 볼수 있었던 좋은 기회도 있었다. 멜번까지 왔는데 호주의 환상의 섬 타즈메니아를 가보지 않을수 없어 계획에 없던 섬 (처음부터 그랬지만) 타즈메니아에 갔다. 타즈메니아 섬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번다버그에서 멜번을 거쳐 타즈메니아까지 오는데 교통비가 무척 비쌌기에 타즈메니아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으나 일이 없었다. 결국 고민하다 다시 우프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번엔 농장이 아닌 직업이 다이버인 사람의 집으로 갔다. 글렌이란 이름을 가진 다이버는 주로 전복을 잡는 우리나라 해녀같은 해남(?)이었고, 그의 아내는 방송국 저널리스트였다. 처음 우프와 달리 이번 우프는 사람들도 좋았고, 집앞에 바로 바다가 있어 전망도 좋고 여유가 많았다. 하루는 다이버인 글렌이 경치좋은 타즈메니아안에 또다른 섬에 구경가자고 제안했고, 그 곳에서 보트낚시를 즐기기로 약속하고 브로니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으로 갔다.

 

 

 


 브로니 아일랜드는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중 한곳이였다. 그곳에서 보트 낚시를 즐기고 글렌이 전복따는 것을 구경한후 바다표범도 보는 행운을 갖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 속에서 또한번의 대형 사고가 터졌다. 보트낚시를 즐기는 동안 배멀미가 생겨 돌아오는 길은 소위말하는 상태메롱의 상태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트와 차를 싣고 타즈메니아로 돌아가는 큰배에서 멀미를 가라 앉히려 바람을 쐬러 선박위에 올라갔다가 여권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글렌 집에 도착하고나서야 이사실을 알았고, 결국 경찰서에 신고 했지만 찾을수 없었다. 할수 없이 영사관을 가기위해 시드니행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제 학생증과 여권 복사본이 있었기에 신분상의 문제는 없었고, 시드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영사관에서 여권을 재발급 받기위해선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고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얼마후에 귀국할 생각이었기에 비행기 티켓의 귀국 날짜를 변경한후 일주일간 시드니를 구경했다. 그래서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아름다운 석양을 구경하기도 하고 호주에서 누드비치로 유명한 본다이 비치도 구경했다.(솔직히 조금 기대하고 갔지만 겨울이라 벗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ㅠ.ㅠ) 그렇게 시드니에서 일주일을 보내고나니 어드덧 호주를 여행한지 5개월이 지나 있었다. 잃어버린 여권덕에 호주공항, 경유하는 일본공항, 심지어 우리의 한국공항 심사대에서 다잡혀  조사하고 검사받아 끝까지 고생하며 돌아왔지만 짧은 인생에서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를 누리고 사람들과 이즐거운 나눔을 더욱더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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