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1
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1
  • 트래비
  • 승인 2006.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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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스파이스 아일랜드의 유혹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겨’


여행을 시작한 60일째. 슬슬 ‘이렇게 내가 여행에만 빠져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슬슬 침투해 오기 시작할 때 즈음, 60일 만에 메신저로 접속된 십년지기 친구가 제게 이런 충고를 선물하더군요. 저를 너무도 잘 아는 친구라, 마치 선생님의 허락을 받은 듯, 그 날부터 며칠간 저의 ‘여행 중 휴가’가 시작되었답니다.

쪽빛 바다에 여유 있게 떠 있는 다우(dhow,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배)를 바라보며 해변에 나른하게 앉아 소설 책을 한가롭게 넘기는 제 모습. 상상이 가시는지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은 제 친구의 충고를 실천에 옮기기에 안성맞춤인 섬이었습니다.

인도양에 두둥실 떠 있는 이 섬의 북쪽에 있는 능위(Neungwi) 해변은 한없이 여성적이고 따뜻하더군요. 그래서 이곳이 그렇게나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투명한 바다에 클로브(Clove, 잔지바르의 대표적인 향신료) 향이 묻어나는 공기. 저도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귀가 씻겨지더군요. 감히 지금까지 제가 만난 최고의 해변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해변뿐만 아니라 잔지바르 섬의 더 큰 매력은 다른 데 있습니다. 회벽 건물과 그 사이의 좁은 길, 그리고 수줍은 이슬람 여인들이 세월의 더께를 안고 살고 있는 섬이거든요. 야릇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길, 헝클어진 머리를 한 것 같은 오묘함이 바로 잔지바르의 매력입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잔지바르를 전설의 섬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수메르, 이집트, 인디안, 오만, 페르시아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등 수많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이 섬에 들어왔었거든요. 아랍인들이 노예 무역의 했던 본거지로 활용하기도 했었죠. 

잔지바르에 발을 디디면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중동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온몸을 부이부이(이슬람 전통 의상)로 꽁꽁 감춘 이슬람 여인들, 수시로 들리는 끝없는 기도 소리. 멍하니 잠시 길에 서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옛날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답니다. 이것이 바로 잔지바르의 노른자 ‘스톤타운’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자 생명력이죠. 

잔지바르는 향신료도 유명해요. 그래서 각종 향신료를 재배하는 농장을 방문하는 ‘스파이스 투어(spice tour)’가 인기랍니다. 스파이스의 왕이라는 ‘카다몬 클로브’, 여왕이라는 ‘시나몬’을 비롯해서 모기를 쫓는 데 쓰인다는 ‘레몬 글래스’까지 생전 처음 보는 향신료 나무에 투어 내내 신이 났더랍니다. 

잔지바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 구경입니다. 옛날에는 문의 크기와 사용하는 나무의 재질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냈다는군요. 열쇠가 무겁고 목재가 두꺼울수록, 그리고 천정이 높을수록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대요. 주로 마호가니나 티크, 잿플룻 같은 나무로 만드는데요. 잔지바르는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섬답게 대부분의 문들이 독특한 멋을 풍기고 있답니다. 

잔지바르 목수들의 크리에이티브에 감탄하며 문을 좇아가다 보면 금세 길을 잃고 맙니다. 잔지바르의 길은 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좁을 뿐만 아니라 미로 같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여행자들은 이 미로 같은 길에서 헤매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하거든요. 바둑판처럼 짜여진 삶 속에서 한번쯤 길을 잃어 보고 싶어서였을까요? 내일 날이 밝으면 저도 다시 한번 길을 헤매기 위해 골목 속으로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가끔은 그렇게 길을 잃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요.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기자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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