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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5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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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와 다우의 섬, 라무

 

 

어릴 적 집 가까운 곳에 동키 제과라는 빵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서 새어 나오는 향긋한 빵 굽는 냄새는 어린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었는데요. 그때는 몰랐죠. 제가 ‘동키의 왕국’에 오게 될 줄을요. 

어서 오십시요. 여기는 동키의 나라, 케냐의 라무(lamu) 섬입니다. 흔들흔들 동키를 타고 라무 섬 일주를 하고 막 돌아왔습니다. 큰 얼굴에 짧은 다리, 동질감과 연민이 함께 느껴지는 동키. 제과점 포장지에서 보던 ‘페이퍼 동키’가 라무에서는 주인공이나 다름없더군요. 

라무 섬에는 차가 없고 대신 동키가 차 역할을 한답니다. 물론 라무에서 교통 수단으로 동키를 이용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걷는 게 훨씬 빠르거든요.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타운이 아담하기도 하구요. 그래도 동키를 타는 것은 독특한 섬, 라무를 좀더 가깝게 느껴 보기 위해서죠. 

동키 주인인 자밀은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한 저를 보며 "릴랙스, 릴랙스"라고 웃음지었지만, 동키 위에 자리를 잡은 후 10분이 지나는데도 결코 편안해지지 않더군요. 제 키보다 더 높은 말을 탔을 때의 두려움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키에 올라 굽이굽이 좁은 길들을 가다 보니, 머리를 휘날리며 몽고 초원을 달리던 그 맛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이 느껴지더군요. 막혀 있을 것 같은 길 끝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까만 색 부이부이 차림의 이슬람 여인들, 이슬람 모자인 코피아를 쓰고 파스텔톤의 키코이를 치마처럼 두른 이슬람 남자들은 라무가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섬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더라구요.

흰 벽으로 이어지는 좁디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갑자기 앞에 모래 자루를 매달고 있는 동키 무리를 만나, 잠깐 교통 체증이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사실 라무는 애초 여행 계획에는 없었던 곳입니다. 세렝게티 사파리를 함께 했던 영국 친구 크리스의 강력 추천 때문에 생면부지의 라무에 오게 됐답니다. 여행 루트는 이렇게 갑자기 수정되는 거 맞는 거죠? 덕분에 우연한 새로움을 만날 수 있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라무는 인기 만점인 셈이더군요. 겨우 1만명 정도가 사는 작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중소 이슬람 세계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그런지 유럽 친구들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지금은 케냐의 중요한 관광지로 꼽히지만 중세시대에는 아랍인들의 중요한 무역항이었다고 하네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여러 척의 다우들을 보니 고대의 바쁜 무역항이었을 때의 모습이 짐작이 가더군요.  

 

몬순을 헤치며 바다를 누비고 다녔을 그 시절을 생각하며 하루는 다우를 타러 갔답니다. 투명한 햇살 아래, 바람 냄새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다우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었습니다. 제가 탄 다우의 이름은 ‘아살리(ASALI)’, 스와힐리어로 ‘허니’라는 뜻이라네요. 다우의 내부는 망그루브(mangrove), 밖은 마호가니로 만들었다는군요.

다우는 바람에만 의지해 움직이는데요. 그래서 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바람의 균형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선장은 알리와 3명의 크루들과 함께 다람쥐처럼 좁은 배 안을 부지런히 움직이더군요. 

“바람의 소리를 봐야지. 줄을 이리 넘겨. 그래, 이쪽이야!”
바람이 세지며 다우가 휘청거리자 이태리에서 온 키아라가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노련한 눈매의 선장 알리는 걱정 말라며, 올해가 다우를 만지기 시작한 지 15년째라며 안심을 시키더군요.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우 속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바람의 균형을 보던 크루 중 한 명은 열심히 다우 속의 물을 바다로 퍼냈습니다. 인도양의 물길은 다우의 탄탄한 몸체를 살며시 때리고 튼튼해 보이던 돛을 향해 돌진하던 바람도 서서히 잦아들면서 바다는 다시 조용해지더군요. 
고요해진 바다, 선장 알리는 갑자기 가수로 돌변했습니다. 알리는 신나는 ‘잠보송’부터 감미로운 자장가 ‘라라 살라마(스와힐리어로 잘 자라는 뜻)’까지 불러 주더군요. 

오랜만에 뱃사람의 시원한 노래 소리와 상쾌한 바람 소리에 복잡한 머릿속을 시원하게 비울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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