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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6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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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90일간 맛본 여행의 춘하추동 

 

이제 아프리카 여행도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90일간의 아프리카 여행. 얼굴은 햇볕에 검게 타, 건강해 보이는 수준을 지나 현지인와 비슷하게 변했네요. 배짱도 좀 두둑해진 것 같구요. 까만 피부의 친구들 이메일도 제 노트북에 빼곡히 쌓였습니다. 이제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구요.

악명 높은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이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 사막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나미비아, 코끼리 떼가 인상 깊던 보츠와나, 정부의 무능력과 극도의 혼란을 볼 수 있었던 짐바브웨,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던 빅토리아 폭포와 킬리만자로, 가난하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말라위, 그림 같은 해변의 잔지바르와 세렝게티를 품고 있는 탄자니아, 라무 섬의 독특한 문화와 나이로비의 씁쓸한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케냐까지. 제 여행 일정에는 아직 이집트와 모로코가 남았지만 일단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는 이번 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기도를 드렸습니다. 처음 떠나는 긴 여행길에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달라구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밑에 숨은 고독까지 볼 수 있게 해달라구요. ‘여행의 춘하추동’을 모두 경험하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았었는데요.

그 기도 때문이었을까요. 아프리카를 헤매는 90일 동안 상상하지도 못한 일도 많고 탈도 끊이질 않았답니다. 따가운 햇살에 콧등이 벗겨지고 벼룩에 온몸이 물려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귀여운 애교였습니다. 킬리만자로에서 경험한 탈진과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에서의 몸살, 일주일간 저를 괴롭혔던 알러지. 그러나 상상하지 못했던 일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노상 강도’를 당한 일인데요.

아프리카 여행의 종착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였습니다. 나이로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와 함께 위험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도시라, ‘나이로버리(Niroberry)’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수도 없이 들어온 나이로버리의 명성인지라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물론 백주대낮이었죠. 수많은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도 시내 노른자위인 힐튼 호텔 앞에서 노상 강도를 당하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눈깜짝할 새였는지. 한동안 멍하니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황망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호텔에 들어와 마음을 추스리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는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도시, 특히 나이로비에 강도가 많은 이유는 이웃 나라인 소말리아에서 무기들이 밀수로 들어오기 때문이라는군요. 아프리카 주변국에서 불법 입국한 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절도를 저지르기도 하구요. 

노상 강도를 당한 후 숙소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일부러 맛있는 음식도 먹었구요.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면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더니 충격이 조금 가시더군요. 옆에 있던 든든한 친구 덕도 컸습니다. 문득 여행 중 나쁜 일을 당한 후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 때문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면 안 되니까요.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먼 북소리>의 문장이 생각나는군요. ‘여행이란 식중독과 노상 강도의 위험, 뜻하지 않은 분쟁, 소지품 분실 그리고 피로감으로 범벅되는 그 무엇이다.(중략) 일단 그곳에 가면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중대한 일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중대한 일을 마주칠 것 같아,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어찌할 바 몰라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죠? 아프리카와 이별할 날이 다가오면서 편지에 전하지 못한 아프리카 친구들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지금까지 제 편지를 받아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올리면서, 소주 한잔에 삼겹살을 뒤집으며 남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Sunshine and Rainbows wherever you are! 

편집자주: travie writer 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는 1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채지형씨는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약 1년반의 기간 동안 세계일주여행 중에 있습니다. 약 2달 전 런던 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는 마침 런던에 있던 터라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었지요. 아프리카 연재는 마쳤지만 지금 트래비 독자들을 위해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길… 또 다른 여행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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