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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과 함께 횡성문학기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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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오전 8시50분. 역을 떠난 열차는 이내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과 나란히 내달린다. 차창 오른편으로 너르게 펼쳐진 한강이 눈 한가득 빨려들어온다. 비록 하늘빛이 조금 흐리긴 하지만 객차 내에 흐르는 기분 좋은 선율과 함께 설레임 가득한 조잘거림들이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한다. 어느덧 기차는 청량리를 지나 강원도 횡성으로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번 문학기행 테마는 작가 박경리 선생의 역작인 소설 <토지>의 무대를 찾아서. 선배 소설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에 최근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발표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윤대녕 작가가 함께 동행했다.

 

강원도 횡성에는 올해 초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토지>의 촬영 세트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도, 소설책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세트장은 서희와 길상이 조준구에게 쫒겨 하동을 떠나 간도 지역으로 왔을 당시를 재현해 놓고 있다. 테마랜드 입구를 지나 세트장 속으로 들어선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일제 치하의 격변의 시기로 되돌아간다. 금세라도 골목 어귀에서 ‘서희’와 ‘길상’이 뛰쳐나올 것만 같다. 문고리 하나, 밥그릇 하나도 당시와 같이 꼼꼼하게 재현해 놓은 모습이 잠시 잠깐이지만 소설 속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천천히 거리를 지나다 보면 용정 서희집을 비롯해 용이네와 임이네 집이 차례로 눈에 띈다. 커다랗게 ‘용정 서희집’이란 푯말이 붙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한 장씩 기념사진을 찍는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채와 사랑채, 부엌으로 꾸며진 작은 집 한 채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촬영 세트라 그런지 다소 작은 듯한 데다 내부가 조금 썰렁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소설 속 감흥에 빠져 볼 수 있다.


다음은 월선네 주막집. 주막집답게 마당 가운데 평상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간소하게 차려진 술상이 하나 떠억 올려져 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자니 용이와 월선의 애틋한 사랑이 여기저기저 진하게 배어나오는 것 같다. 괜시리 콧등이 시려 오는 것이 나만이 아닌 듯, 함께 동행한 윤대녕 작가도 잠시 상념에 빠진 모습이다. 세트장에서는 이 밖에도 진주와 하얼빈, 동경의 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부지만 1만2,000여 평에 달하는 횡성 테마랜드 내에는 촬영 세트 말고도 보고 즐길 만한 거리들이 많이 있다. 세트장 곳곳에 옛날에 쓰이던 부엌 도구들이나 문구류들을 전시해 놓은 것은 물론 분수가 쏟아져 내리는 호수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촬영 세트장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한 켠에 마련된 민속놀이장에서 그네와 널뛰기에 열중해 보자. 그 후에 주막을 재현해 놓은 먹거리 장터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여도 좋을 것이다.

www.hsthemeland.com/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토지>의 대미를 장식한 공간 ㅣ 토지문학공원

 

토지문학공원은 박경리 선생의 옛 사택을 비롯해 <토지>와 관련한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은 의미 깊은 장소이다. 겉보기엔 그저 단순한 조경일 뿐인 것들도 하나하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문화유산해설을 맡아 오고 있는 정재후씨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수한 말솜씨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박경리 선생은 이곳에서 17년간 살면서 1984년 8월경 <토지>의 대미를 마무리지었답니다. 이곳은 예전 택지조성계획에 의해서 헐리게 된 것을 원주시와 문인들이 간청을 해 토지개발공사에서 이 일대 3,196평을 설계 변경해 1999년 공원으로 완공되었죠. 물론 현재는 이곳에 사시진 않고요, 부근으로 이사해 살고 계시답니다. 잘 보면 조경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데요, 사택을 둘러싼 돌담은 최참판댁 분위기를, 앞의 연못은 섬진강을, 마당은 백사장을 상징하지요. 소설 속 무대를 옮겨다 놓았다는 의미가 있답니다. 이를 염두에 두시고 둘러보시면 한층 감회가 깊을 겁니다.”


한참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토지문화관 2층 전시관과 사택을 둘러보았다. 아직 박경리 선생이 살아계시는 데다, 물건들을 이사하면서 모두 옮겨간 탓에 사택 안에는 별다른 물건들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소설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탈고한 장소가 이곳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온다.

 

www.tojucul.or.kr/ 입장료 무료

 

ⓒ 트래비


열차 안 윤대녕 작가와 함께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열차 안. 돌아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한 듯, 이벤트칸에서는 윤대녕 작가와 팬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이어졌다. 윤대녕 작가는 <은어낚시통신>,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미란> 등 유려한 문체와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는 90년대 젊은 작가군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만난 한국계 일본 작가와의 대화 내용인데요, 이 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죠.” 윤 작가가 최근 발표한 <호랑이는 어디로 갔나>를 낭송하기 시작하자 일순간 고요해지면서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에 열중한다. 들리는 소리라곤 윤 작가의 목소리와 가끔씩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소리. 낭송이 끝나자 일순 고요한 가운데 낭송의 여운만이 길게 남는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와 함께 여행하고 또 한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독자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방증하듯, 질문들이 끝없이 쏟아진다. “소설가가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이 같은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윤 작가가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부와 나이 많은 삼촌들이랑 같이 커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낯가림도 많고, 책에 의지해 사춘기를 보냈죠. 어쩌다 보니 문학동호회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럴다 할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어느날 어느 찻집에 꽂힌 책에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란 구절을 읽었어요. 그때 깨달음이 왔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을 거예요.”

 

ⓒ 트래비


그는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에 대해서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꼽았다. “소설을 쓸 때에는 당시 마음의 상태가 가장 중요하죠. 이 소설집은 문학적으로 가장 풍만할 때, 또 그에 대한 일념으로 똘똘 뭉쳐 있을 때 썼던 작품이에요. 이 시기에 쓴 소설들이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갑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험과 독서는 필연적인 관계”라며 많은 책을 읽을 것을 권유했다. 세상을 많이 보고 접할수록 자신의 내부에서 해석력을 키워 나가기 위한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제주에 있을 때 기차 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어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약간은 낯선 경험이었지만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이번 여행길을 정리했다. ‘우리는 우연히 같은 기차에 올라탄 낯선 여행자들.’ 누군가의 말처럼 그날 우린 모두가 낯선 여행자들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오랜 벗처럼 같은 추억을 두고두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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