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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5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3.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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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선생님의 안데스 음악 여행

여행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은? 아마 대부분 여행자들은 ‘선생님’을 넘버원으로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방학 때문이죠. 스트레스도 많지만 마음만 먹으면 일반 회사원은 꿈도 못 꿀 한달짜리 장기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선생님 중에는 여행 마니아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기간에 만난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선생님이었답니다. 터키를 여행할 때 호스텔 주인이 제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대뜸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어볼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안데스에서 만난 선생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페냐에서 바람의 소리에 빠지다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볼리비아의 '라파즈(La Paz)'. 인터넷에서 누군가 추천한 숙소에 들어서니 리셉션에 한 동양인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운동복에 샌들을 신고 서 있더군요. 인사를 건넸더니, 부산에서 오신 우리나라 여행자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나라 분이라 어찌나 반갑던지요. 

다른 두 분과 함께 안데스 음악 여행을 오셨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볼리비아에서는 안데스 음악을 제대로 느껴 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라, 전통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페냐(Pena)’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태양의 문’이라는 이름의 페냐로 향했습니다. 현지인들로 이미 자리가 꽉 찬 태양의 문은 이름처럼 이글

이글 타오르고 있더군요. 기타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볼리비아의 전통악기 차랑고는 태양의 문을 흥겹게 만들고 있었고, 산뽀냐와 같은 바람의 악기들은 마치 안데스 산맥을 질주하듯 신나게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모두들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 손을 잡고 춤을 추더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마치 왈츠를 추듯 남자와 여자가 두 줄로 나눠 서더니 다들 하얀 손수건을 하나씩 꺼내더군요. 손수건이 없는 사람은 하얀색 티슈를 뽑아 손에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쿠에카(cueca)’라는 볼리비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춤이더군요.  

신기해하는 저를 보고 페냐에서 만난 친구 글로리아는 즉석에서 강습을 해줬습니다. 어찌나 흥겹던지요. 역시 음악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글로리아와 우리 일행은 코카 잎에 레몬 소주처럼 생긴 칵테일을 홀짝이면서 볼리비아의 건전한 밤 문화에 폭 젖었습니다.

멋쟁이 선생님들 만세!

새벽 1시. 태양의 문을 뒤로하고 하무이(Jamuy)라는 또 다른 페냐로 향했습니다. 젊은 음악가들이 어찌나 그리도 바람의 악기들을 잘 다루던지요. 안데스의 바람과 잉카의 후예들의 한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만 상상했던 그 소리는 더 이상 고독을 담고 있지 않더군요.

“안데스 음악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안데스의 자연과 사라져가는 문화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느껴지죠. 처음 접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너무 좋아요.”
간단하지만 명료한 안데스 음악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갑자기 직업이 궁금해졌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뭐 하시는지 여쭤봤더니 머쓱해하시면서 체육 선생님이라고 하시더군요. 체육 선생님의 안데스 음악 이야기라. 더욱 멋져 보이시더군요. 

다음날 저녁, 함께 음악 여행을 오신 두 분과 함께 이번에 장만하셨다는 차랑고와 산뽀냐를 가지고 즉석에서 안데스 음악을 연주해 주셨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왜 이들처럼 우리의 신나는 전통음악을 평소에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안데스 음악 여행을 하시는 체육 선생님을 뵈니 터키에서 만났던 역사 여행을 하시는 간호 선생님과 매년 남미의 한 나라씩을 한 달씩 돌아본다는 국어 선생님, 살사 바를 찾아다니는 지리 선생님이 차례로 떠오르더군요.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만들어 가는 멋쟁이 선생님이 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면서 마음이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여행을 많이 하는 선생님들은 우리 후배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이야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우리나라 선생님 만세’를 외치고 싶어지는군요.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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