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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 - 삼국지의 중원을 찾아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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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중국 우한 하면 은은한 노란 빛이 떠오른다. 중국이라면 보통 빨간 색이나 황금빛을 연상하게 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우한은 노란 빛이다. 분명 유채꽃 때문이리라.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내내 호수와 어우러진 유채꽃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무당산으로 가는 수십 리 길에도 유채꽃의 향연은 멈추지 않았다.
중원에는 꿈처럼 아름다운 봄날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중국의 배꼽 또는 심장이라 불리는 내륙의 중심, 우한(무한, 武漢)에 들어섰다. 우한은 후베이(호북)성의 성도로 그 중심에는 장강(長江)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장강은 흔히 양쯔강 또는 양자강으로 알려졌는데 중국에서는 창지앙이라고 부른다. 연유인즉, 장강이 6,300km의 거대한 물줄기임에 따라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상하이에 발길을 하던 외국인들 사이에서 그 지역 이름인 양쯔강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이 장강과 함께 서쪽으로 충칭(중경), 동쪽으로 상하이를 잇는 수로 교통은 물론 베이징·광저우와는 철도로 연결하며 예로부터 우한은 내륙 교통의 요지로 ‘9개의 성으로 통하는 대로’로 알려져 왔다.

우한은 한커우, 한양, 우창 등 인접한 세 도시가 합쳐져 이뤄졌다. 각기 다른 특색으로 가는 곳마다 새로움을 더하는데, 이중 우창은 1700년 전 오나라 손권이 마지막 수도로 삼았던 곳이고, 한수이 강을 가로지르는 한양 지역은 상공업이 크게 발달한 지역이다. 그러나 가장 여행객의 흥미를 끄는 곳은 역시 역사와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한커우 지역이다. 한커우 지역은 1858년 텐진조약으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조계지가 자리해 화려한 건축양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젊음의 거리 외에도 페리 터미널, 호텔 등이 집중해 있어 이곳을 기점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편리하다.

특히 차 없는 거리인 한커우 시내 중심은 명동, 종로처럼 백화점, 쇼핑가들이 즐비해 내로라하는 패션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한 옷가게 점원은 한국어가 새겨진 청바지를 입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공항에서도 한국 드라마 <루루공주>가 방영 중이었는데, 대륙의 중심에도 한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 트래비

1.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 향연
2. 수장강에서의 삶과 혁명도시의 이미지를 표현한 청동동상 
3,4. 한국의 명동, 종로와 같은 한커우의 번화가
5. 텐진조약 때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조계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유럽풍 건축물



기록 문화의 진수 <삼국지>의 본거지


중국에는 역사 유적지와 천하절경으로 꼽히는 곳이 많지만 <삼국지>만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는 책으로, 만화로, 때로는 교과서에서도 만난 익숙한 작품이다. 우한을 비롯한 장강삼협은 이들의 싸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여행객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책 속 지식을 확인이라도 하듯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 중에 만난 한 관광객도 “이번 여행에서 유비, 장비를 만나고 돌아간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한 기행은 장강 자체의 긴 흐름과 함께 중국의 기록 문화의 진수인 <삼국지>를 더듬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인 셈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화려한 삶과 여유, 그들의 전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호북성박물관’을 먼저 찾았다. 

夜 문화 꽃피운 화로의 도시 

여름의 우한은 여름날씨가 4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더워 충칭(重慶), 난징(南京)과 함께 ‘중국의 3대 화로’라 불리기도 한다. 각 집마다 결혼 비용은 없어도 에어컨 살 돈은 챙겨 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 집마다 에어컨 한 대쯤은 다 있다. 예전에 에어컨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남녀 구분 없이 문 앞에 찬물을 뿌리고 대나무를 깔고 자기도 했다고.
더워도 보통 더운 것이 아닌 우한은 독특한 생활 질서가 있다. 이틀 연속 40℃가 넘으면 국민들이 일을 안 해도 된다. 보통 2시간인 점심시간도 이런 날은 3시간30분 정도다. 보통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데 아무리 더워도 정부의 발표 온도는 39.5~39.9℃를 넘지 않는다고. 

대신 이들의 밤문화는 크게 발달해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도 새벽 4~5시까지 이어지고 익숙한 사람들은 늦은 밤에도 나와 얘기꽃을 피운다. 보통 오리목 요리나 만두, 토계탕(한국의 삼계탕과 비슷하다) 등을 즐기는데 5~10위안(접시당)으로 저렴하다. 늦은 밤을 보낸 우한 사람들에게 아침 외식은 생활화되어 있다. 오히려 아침식사를 해먹는 것이 이상하다고. 동네 곳곳에 3~5위안의 아침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으니 한번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로 우한 사람들의 평균 수입은 1,000(한화 13~16만원) 정도라고. 


초나라의 여유 ‘호북성박물관’

우창의 동호 주변에 있는 호북성박물관은 초나라 시대를 연상시키는 깨끗하고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심에 자리한 본관은 공사 중이어서 양쪽의 두 박물관만을 차례로 관람했다.

호북성박물관은 1953년에 처음 세워진 후 1978년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전국시대 분묘가 발견되면서 1999년 새로운 전시관을 선보였다. 이는 전국시대 초기 증나라의 군주 을(乙)의 묘로 이 묘에서는 제기, 용기, 병기, 금과 옥으로 만든 그릇, 악기 등 1만5,000여 점의 부장품과 10t이 넘는 청동기가 함께 출토됐다. 

이 중 정교함과 아름다움으로 세인의 주목을 끈 것이 바로 편종이다. 이 편종은 64개의 크고 작은 동종을 삼층으로 대에 걸어 놓은 것으로 층 사이는 청동으로 만든 6명의 무사가 지탱하고 있다. 이들이 떠받들고 있는 무게만도 무려 2,500kg이 넘는다고 한다. 출토된 편종은 고대 음악의 실마리를 줬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베토벤의 ‘환희’, 한국의 ‘한오백년’, ‘아리랑’ 연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깊은 슬픔과 가장 희망찬 기쁨을 2000년이 넘게 간직하고 있는 편종에서 깊은 울림이 전해져 왔다.


ⓒ 트래비

1. 호북성박물관의 명물인 64개의 종이 매달린 편종
2. 얼음을 부어 차갑게 중탕하는 2000년 전 술 냉장고
3. 전설을 표현한 황학루 내부 전시물
4. 호북성박물관에 단체관람을 온 어린 학생들

옛 시인들도 감탄한 ‘황학루’

우한 시내에 있는 사산에 자리잡은 황학루는 우한 여행의 하이라이트. 예부터 호남성의 악양루, 남창의 등왕각과 함께 중국의 3대 명루각으로 불리우는 황학루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이백, 최호, 왕유, 백거이 등을 비롯해 숱한 시인 묵객들이 그곳에서 시와 노래를 지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만 300수 이상으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채울 정도이며, 황학루 경내 곳곳에도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중 당나라 시인 최호가 지은 ‘황학루’가 가장 유명한데, 훗날 이태백이 황학루를 찾아와 시를 지으려다 최호의 시를 본 후 더 이상 뛰어난 시를 지을 수는 없을 거라며 붓을 던졌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 사람이 백운을 타고 떠나니
이곳에는 텅빈 황학루만 남았네
황학은 가버린 후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은 천년을 유유히 흐르네
청천에 한양수는 역력하고
향내 나는 풀은 앵무주에 무성하구나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느 쪽인가,
강 위의 자욱한 안개물결은 더욱 시름겹게 하네


황학루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서기 223년. 조조와 손권의 대전에서 군사용으로 지어져 1,700여 년 동안 7번의 소실과 7번의 중건을 반복했다. 1985년 중건된 현재의 황학루는 중앙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정상을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최신식 누각이다. 관광객들은 대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 계단으로 내려오지만, 건강하다면 모두 걸어서 관광할 것을 추천한다. 한층한층 오르고 내리면서 보여지는 풍경과 각 층마다 다양한 전시관 등 볼거리는 놓치기에 아깝다.

황학루 전경은 이백이 ‘壯觀’이란 글자를 쓰면서 앞의 ‘장’자에 점 하나를 더 찍어 ‘장관 중의 장관’이라고 표현했을 정도. 황학루의 진수는 누각 자체보다도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장강대교와 동호 등의 경치를 꼽을 수 있다. 높이 80m, 길이 1,670m의 복층 구조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장강대교는 2,000여 개의 등이 켜지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황학루의 전설 

세월만큼 이곳에는 적지 않은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그중 하나. 오래 전 황학루 근처 한 주막집에 어느날 옷차림이 매우 남루한 노인이 찾아와 공짜로 술을 마시겠다고 하자 이를 가엾게 여긴 주인은 노인의 소원을 들어 줬고 이후 노인은 매일같이 찾아와 신세를 졌다. 한 달이 지난 어느날 노인은 술 값 대신 황학 한 마리를 그려 주겠다고 주인에게 제안했다. 노인은 땅에 떨어진 귤껍질을 주어 벽에 학 한 마리를 그려 놓고 ‘박수를 치면 학이 날아와 춤을 출 것’이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정말 노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이 박수를 치니 학이 날아와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며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주막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에 주인은 황학과 도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누각을 짓고 이름을 황학루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황학루 앞 정원에는 목을 길게 뺀 청동 학 한 마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트래비

1. 중국의 3대 명루각 중 하나인 황학루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와 노래를 지은 장소 
2. 항저우의 서호와 비견되는 중국 제 2의 담수호 동호 
3. 수산나무가 수려한 동호를 거닐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만 같다


1,000개의 호수를 품은 물의 도시


우창의 동편 외관에 자리한 동호로 가는 길. 하늘엔 물안개인지 비안개인지 모를 안개가 자욱하게 퍼진 모습이 한껏 운치 있다. 1,000개의 호수를 품고 있다 해서 ‘천호(千湖)의 도시’로 불리는 우한의 가장 대표적인 호수가 바로 동호다. 이 광대한 호수는 그 아름다움과 명성에서 항저우의 서호와 견줄 만한데, 동호는 서호의 6배나 커 전체 규모만 88km2에 이른다. 사실 중국 제2의 담수호라니 겉으로 보기엔 바다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곳의 수려한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는데 울창한 수산나무 사이로 누각과 정자 등이 세워져 있어 여유를 더한다. 전국시대 시인이자 충신이었던 굴원 기념관도 여기에 있는데, 모국 초나라가 쇠퇴해짐을 안타까워하며 우국충절의 시를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창 봉기, 신해혁명의 자부심

우한은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12년 우창 봉기의 성공으로 중화민국의 성립과 청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신해혁명의 발상지라는 것. 우한 사람들은 90여 년 전 우창 봉기를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한이 혁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더불어 모택동이 주도한 문화혁명 때 인민공사를 만들어 농민 지도자를 양성한 곳도 바로 우한이다. 현재도 우한은 많은 대학들이 자리해 ‘교육 도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무협 영화에 나오는 무당파를 찾아서

우한에서 버스로 4시간 가량 달리면 나오는 무당산은 중국의 명산으로 72개의 봉우리, 36개의 기암, 24개의 골짜기 등이 있다. 최고 봉우리는 1,612m의 천주봉으로 그 주변 봉우리들이 천주봉을 감싸고 있는 듯 신비하다. 무당산에서는 험준하고 신비로운 자연 경관 외에 명, 청나라 시대 역대 황제들에 의해 1,000년에 걸쳐 지어진 산 속 궁전에서 중국의 웅장하고 섬세한 건축기술을 감상할 수 있다.  


ⓒ 트래비

1. 무당산 최고의 도교성지 태화궁 전경
2. 금전으로 오르는 길 하늘 높이 이어진 가파른 계단
3. 영화 <와호장룡>에 등장한 무당무술


무당산(武當山)은 중국의 무협지와 영화 <와호장룡> 등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무술도 무술이지만 무당산에는 도교의 본산인 수많은 도교 사원이 자리해 있다. 당나라 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이들 사원은 산 속 여기저기 지어졌지만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며 수천 개였던 건물이 현재는 100여 개만 남아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건물로는 태화궁, 중국 도교 협회가 자리한 자소궁, 반쯤 부서져 공사가 한창인 남암(南岩)궁 등이 있는데, 이들 건축물군은 1994년 12월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리를 받고 있다. 

무당산 입구부터 버스로 40여 분, 구불구불한 절벽 길을 굽이굽이 오르는 동안 선을 그리듯 부드러운 산세와 친숙한 나무 숲이 무당산 여행의 설렘을 더한다.

남암궁 돌계단을 걸으며

남암궁 호텔 지대에 도착했다. 돌계단을 오르니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남암궁이 얼굴을 내민다. 계단 공사가 한창인 길을 따라 내려가니 황제가 하사했다는, 규모가 상당한 비각 두 개가 보인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는 바위 틈을 통과하니 감춰졌던 남암궁 입구가 나타났다. 

남암궁은 전설 속 신선인 진무대제(眞武大帝)가 마지막으로 도를 닦고 승천한 곳으로 진무대제를 기리는 명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궁은 왕실이기보다는 불교 사원에서 ‘00사’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도교 사원을 보통 ‘00궁’이라고 표현한다고. 

남암궁은 명나라 때 불태워진 후 다시 재건축된 것인데, 남암궁 마당에는 명나라 때부터 그 맛을 인정받아 ‘감록’이라 불리며 성수로 쓰였다는 우물이 있다. 좁은 절벽 길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남암궁의 허리쯤 왔을까. 절벽을 향해 특 튀어나와 있는 ‘용두향’이 있다. 용두향에 향을 피우기 위해 사람들은 목숨까지 걸었었다니 종교의 힘이 새삼 놀랍다.

無로써 武를 깨우친 ‘자소궁’ 

도교 협회가 있는 자소궁으로 향했다. 무당산 중턱에 자리한 자소궁은 입구에서부터 흰색, 청색의 도포를 입고 상투를 틀어 올린 도인들이 수련을 하고 있다. 무당산에는 공식 도사만 100여 명으로 청색 도포를 입은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고. 

이들의 무예가 바로 무당무술, 즉 태극권이다. 무당무술은 소림무술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대표적인 무술이다. 태극권은 움직이는 ‘참선’이라는 별칭처럼 부드럽고 느린 동작이 특징인데, 정확한 자세와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한다고 한다. 그 상징도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극 문양으로 친근하다.

이내 비장한 음악과 함께 관광객을 위한 무술 시범이 펼쳐진다. 장내는 묘한 기운이 흐르고 부드러운 음악과 무술이 조화를 이뤄 음악이 무술인지, 무술이 음악인지 모를 부드러운 세계로 빠져든다. 태극권의 본고장에서 최고의 무술을 보는 것만으로 무당산 여행은 감격스럽다. 그러나 무술 시범이 매일 열리는 것은 아니라니 아쉽지만, 이럴 때는 수련 중인 도인들에게 승낙을 얻어 그 자리에서 시범을 요청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 불타는 도교 성지 ‘태화궁’

무당산 최고의 도교 성지는 천주봉에 자리한 태화궁. 도교의 상징인 건축물로 ‘금전(金殿)’이라고도 불린다. ‘금으로 만든 궁전’을 뜻하는 금전은 목재 대신 동주조물로 집을 짓고 황금으로 도금을 했고, 내부에는 도교의 으뜸 신인 진무대제가 좌정해 있다.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영험을 기원하는 것은 물론 행운을 기원하며 금전 지붕에 돈을 던지느라 여념이 없다. 베이징에서 옮겨와 500일 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장명등도 알고 찾는 사람 눈에만 보이니 잊지 말자. 참, 금전까지는 가파른 돌계단이 엄청나니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도교 사원을 오르는 일도, 1~2시간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일도 만만치 않은 체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지, 여기저기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태화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데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 차라리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잘 닦인 길도 그렇게 험하지 않거니와 1시간30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태화궁을 관광할 때는 속도 조절이 필수.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도 금전까지 가파른 계단이 하늘높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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