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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③ 부하라 - 사막의 영혼을 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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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부하라로 향하는 길에서는 고독한 유랑자의 체취가 느껴진다. 사마르칸드에서 차로 4시간30분여를 달리는 동안 시선은 계속해서 지평선에 닿아 있다. 초원과 사막이 펼쳐진 가슴 상쾌한 광경은 좀처럼 맛보기 힘든 풍경이다. 

<코란>의 종착지


뜨겁다 못해 살갗을 태우는 듯한 태양의 열기 속을 헤매던 이들에게 오직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물과 휴식처뿐. 사막의 거대한 등대가 그 모습을 타나내면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가슴 속에 안도의 빛이 스며든다.
도시 자체가 곧 2,5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란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 중 ‘코란은 메카에서 계시되고 카이로에서 낭송되며, 이스탄불에서 씌어지고, 부하라에서 제본된다’라는 말은 이곳 부하라의 종교적 색채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천산 산맥을 넘어오는 실크로드의 북로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오는 실크로드 남로가 만나는 지점인 부하라는 키질쿰과 카라쿰 사막을 지나 페르시아와 카스피해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해,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은 이곳에 그들만의 문화와 종교, 교역품들을 남겼다.


ⓒ 트래비

1. 부하라 구시가지를 걷노라면 오랜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는 듯하다
2, 3. 노디르 다반베기 앙상블의 호수와 나스렛딘 호자의 풍자 동상의 모습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는 그렇게 발전을 거듭하다가 13세기, 칭기스칸의 침략으로 폐허가 됐으나 14세기 티무르에 의해 이슬람의 계획도시로 부활했다. 이슬람 율법을 가르치는 종교 교육 도시로 한때 360개의 모스크(사원)와 113개의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 있는 부하라. 구시가는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보면 된다. 사암으로 이뤄진 도시는 사막의 색깔을 닮아 있어 사마르칸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부하라 시내 관광은 ‘노디르 디반베기 앙상블’에서 시작하면 된다. 두 개의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와 대상들의 숙소인 ‘호나코’, 한가운데 위치한 호수 ‘라비 하우즈’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부하라 시내 관광의 중심지이자 기점이다. 노디르란 이름의 지방 관리가 지어 놓은 이 건축물들은 완벽한 대칭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건축양식을 따랐고, 이슬람 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연못)을 가운데 배치해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시작해 부하라의 핵심 관광지들을 모두 걸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호수 주변의 찻집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여유와 정취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칭기스칸이 머리를 숙인 위대한 탑


부하라 구시가지 어디서든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칼란 미나레트’다. 칼란은 ‘크다’를 미나레트는 ‘첨탑’을 뜻한다. 높이 47m에 이르는 이 탑은 칼란 사원의 부속 건물로 정상에는 사방으로 16개의 창이 있어 16명의 ‘무이진(예배를 알리고 인도하는 사람)’들이 예배시간을 알리던 곳이다. 사막을 오가던 대상들은 오랜 이동 끝에 높게 솟은 칼란 미나레트가 눈에 들어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막바지 걸음에 힘을 더했을 것이다. 

이 탑에는 칭기스칸에 얽힌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탑을 목표로 부하라를 침공한 칭기스칸은 부하라를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드디어 부하라를 점령하고 이 탑 앞에 선 칭기스칸이 탑을 올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쳐들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모자가 떨어졌고 모자를 줍기 위해 그는 자연스레 허리를 숙였다고 한다. 모자를 주운 후, 잠시 생각에 빠진 칭기스칸은 “나의 허리를 굽히게 한 위대한 탑이니 파괴하지 말고 남겨 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사막을 가로지르던 대상들에게는 반가움과 안도의 탑이었던 칼란 미나레트는 이처럼 부하라를 파괴로 이끈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한때는 사형수를 푸대에 담아 떨어뜨리기도 하는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 트래비

1. 양고기로 만든 꼬치. 사슬릭은 우즈베키스탄 전통음식 중의 하나
2,3 실크로드를 여행하던 대상들의 숙소. 카라반 사라이의 모습. 지금은 건문들 터만 남아있다.

중앙아시아 最古의 이슬람 건축물

중앙아시아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이슬람 건축물로 9세기 말에 부하라를 점령, 수도를 정한 사만 왕조의 이스마일 사마니가 자신의 부친을 위해 지은 사마니드 영묘. 이후 그와 그의 자손도 묻혀 사만 왕조의 왕족 영묘 역할을 하고 있다. 돔형 지붕의 단순한 외관이지만 벽면을 다양한 문양의 벽돌을 이용, 여러 가지 모양으로 쌓아 올린 것이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아름답다. 햇살의 강약과 강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숨을 참고 영묘를 두 바퀴 돈 후 소원을 빌면 반드시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3명이 도전했으나 1명만이 성공했다. 애절한 소원을 빌었음은 물론이다.   
                      
* 기내에서 마신 ‘병 맥주’

처음 타 보는 우즈베키스탄항공. 늦은 밤 출발하는 밤 비행기를 탄지라 맥주 한잔을 먹기로 했다. 그러자 나온 맥주는 ‘아지아(AZIA)’라고 적혀 있는 ‘부하라’ 맥주가 나왔다. 아~ 기내에서 병 맥주를 주기도 하는구나.

+++++부하라의 명소+++++

아르크 성

18세기 부하라 칸국 시대부터 부하라의 왕이 살던, 사암으로 지어진 사막의 성이다. 성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볼러하우스 모스크는 1718년에 지어진 것으로 왕의 기도처로 이용되던 곳이다. 정면에 위치한 20개의 나무조각 기둥이 인상적이다. 모스크 바로 앞에는 낮은 미나레트와 우물이 있는데, 모스크의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볼러하우스는 타직 말로 ‘우물의 위쪽에 있는’이란 뜻이다. 

타키 시장


타키는 지붕이란 뜻의 타직 말인데, 둥근 지붕의 모양이 인상적인 곳으로 16세기에 전문 시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는데 보석, 모자, 환전소, 시장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지금은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둥근 지붕이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 기후에 상관없이 장을 보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던 일종의 복합상가였던 셈이다.
욥의 샘


성서에 등장하는 욥의 샘이 바로 이곳 부하라에 있다. 욥이 지팡이를 세웠더니 이곳에서 물이 솟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건물 속에 보존돼 있다. 칭기스칸 때 파괴됐던 건물을 역시 티무르가 복구해 지금의 모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눈에 관한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대상들의 쉼터, 카라반사라이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커다란 건물의 입구만이 쓸쓸히 남아 있다. 사막을 가로지르던 대상들이 쉬어 가던 옛 여관의 터가 이렇게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거의 다 파괴됐지만 목욕탕 터, 숙소 터 등이 남아 있어 이곳을 가로지르던 대상들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건너편에는 물 창고로 사용되던 지붕이 둥그런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글 사진 : 류한상 기자 han@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우즈베키스탄 항공 02-754-1041 / 중앙아시아전문 칸투어 031902-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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