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 문화유적따라 새롭게 만나는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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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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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물 속의 계림’이라 불리는 하롱베이.
베트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하롱베이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할 만큼 특별한 자연미를 자랑하고 있다.

‘사이공’이라 불렸던 도시  호치민시


ⓒ트래비

1. 호치민의 동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광장에 인민위원회 청사가 보인다. 
2. 어느 나라보다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베트남 호치민 시
3. 무공해 천연 재료로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
4.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노틀담 성당
5. 우리나라와 같이 발코니에 빨래가 널려 있는 호치민의 한 아파트 
6. 중앙 우체국은 밤에도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 
7. 맨 위쪽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이 보인다. 전쟁박물관에는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베트남의 대표명사처럼 여겨지던 사이공시가 호치민시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76년. 프랑스 식민시대의 대표적인 경제 중심 도시이자 베트남전의 마지막을 알렸던 도시, 사이공시는 베트남 통일 시기에 맞춰 베트남의 건국 영웅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바꿨다. 

호치민시는 베트남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많은 문화가 서로 만나 어우러져 있다. 일본 식민 지배 이후 전후 보상 차원으로 들여온 ‘혼다’라는 이름의 오토바이가 도시를 뒤덮고 도심은 프랑스가 식민 시대에 만든 순환형 일방통행 도로로 구성돼 있다. 이런 독특한 도로 형태 때문에 한번 지나쳐 버린 곳을 가려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와야 한다. 

버스를 타고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 사이를 지나 첫 번째 도착한 곳은 베트남의 현대사를 기록하고 있는 전쟁박물관. 베트남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베트남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 후 여러 강대국에 의해 분단국가가 됐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전쟁을 경험했듯 베트남 역시 베트남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전쟁박물관에서 남다른 감흥이 느껴진 것은 아마도 이런 공통된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박물관 마당 한쪽에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 헬기와 탱크 등 군수물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몇 개로 나뉘어진 전시실 내부에는 종군기자 등이 남긴 사진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거리에서 나누는 정겨움

전쟁박물관을 떠나 도심 중앙으로 가니 노틀담성당과 중앙우체국, 인민위원회 청사, 광장의 호치민 동상, 활기찬 빈탄시장 등이 어우러져 있다. 밤이 되면 노틀담성당과 중앙우체국이 있는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대낮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광장에서 더위를 식힌다. 

날씨도 더운 데다가 과거 냉장시설이 없었던 때문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서 보관해 놓고 먹기보다는 즉석에서 만들어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 또 차가운 음식보다는 바로 만들었음직한 뜨거운 음식들을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천천히 먹기보다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이유로 외식문화가 발달해 있고 쌀국수 같은 간단한 음식들이 발달해 있다. 외식을 한 후에는 광장 같은 곳에 모여 함께 어울린다.

그리고 도심의 중앙부에 있는 쇼핑의 거리 동코이 거리. 오토바이를 매장 내에 주차시켜 주는 서비스를 해주던 ‘롯데리아’, 40년 전통의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 조그마한 기념품에서부터 다양한 장식품들을 파는 상점들까지 이곳 동코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베트남 여성들

베트남 여성들은 예전부터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외침을 받았던 역사 속에서 남자들이 전쟁을 위해서 집을 비운 동안 가정생활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베트남 여성들의 그러한 역할은 현재도 여전하다고 한다.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부지런하고 참을성 많고 근면해서, 농촌의 들판을 지나가다 보면 ‘논’을 쓰고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논’은 베트남의 동그란 원뿔 모양의 모자로, 주로 여자들이 쓰는 모자다). 1989년 개방정책으로 많은 해외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진출한 후에도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인정받아 여성들의 취업은 활발한 반면 베트남 남성들의 일자리는 드문 형편이다. 그 결과 베트남 남성들의 실업률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트래비

1. 출입구부터 단계별로 중간중간 연못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민망황제릉 
2. 프랑스 식민시대를 연 투덕황제의 능 
3. 용무늬를 한 뱃머리가 독특한 향강의 유람선
4. 화려한 인테리어가 가득한 카이딘 황제릉은 계단을 올라서 들어갈 수 있다
5. 티엔무 파고다 중앙에 8각형을 한 7층 석탑이 서 있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흔적  후에

화려했던 밤의 불빛을 보여 주던 호치민시에서의 기억을 뒤로하고 새벽같이 공항으로 이동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에 유적’이 있는 중부지방의 옛 도시, 후에로 이동했다.

후에는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치민시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고 분단의 경계선이었던 17도선에 가까워서 월남전의 가장 격렬했던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며 또한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는 1802년,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나라를 세우고자 무역 중개지 역할을 하던 중부지방 후에에 도읍을 정했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용머리 유람선을 타고 향강을 올라가면 후에 왕조가 남긴 유적들을 하나씩 차례로 볼 수 있다. 강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지만 지금은 숫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수상가옥들과, 가족들이 힘을 합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정크선, 강에서 그물을 건져 올리는 어부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있는 그곳에서 첫 번째로 만난 유적지는 ‘티엔무 파고다’. 티엔무 파고다는 베트남 내에서 다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베트남 불교 구국운동의 거점으로 8각 모양의 7층 석탑이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원이 있던 언덕 위에 서면 향강이 멀리까지 내려다보인다.

황제는 능으로 권세를 말한다

티엔무 파고다를 거쳐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도착한 곳은 민망황제릉. 후에 왕조의 왕릉은 다른 나라 왕릉과는 달리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후에 왕들은 자신이 재위에서 물러난 후 선왕으로 있을 곳을 재임기간 동안 마련하고 그곳에서 마지막까지 생을 보낸 후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후에의 왕릉은 조그마한 별궁 같은 느낌이다. 그 왕릉의 규모 등을 통해 왕의 권력을 과시했다는데 후에 왕조의 법제를 정비해서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는 두 번째 왕, 민망황제릉의 느낌은 그야말로 잘 꾸며진 별장 같다. 벽에 검버섯이 있는 것처럼 얼룩져 우중충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잘 짜여진 건물의 배치와 적절한 건물 높이의 안배가 능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아기자기해 지루하지 않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투덕황제릉. 투덕왕은 후에 왕조의 전성기를 이뤘던 왕이자 자신의 손으로 프랑스 식민시대를 연 아이러니컬한 인물이다.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 하는 카이딘황제릉은 그가 프랑스 식민시절의 왕이었음을 시사하듯 동서양의 문화가 완전히 뒤섞여 판타지 만화 속에나 나올 듯한 디자인과 색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의 거점 도시, 다낭

무엇보다 후에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후에 왕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후에 성. 해자를 사이에 둔 길을 통과하여 정오의 문을 들어가면 자금성을 10분의 1로 축소해서 만들었다는 후에 성의 본 모습이 나오지만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손돼 복원이 한창이다. 많은 부분이 파손되긴 했지만 남아 있는 유적들의 규모도 작지 않고 부의 상징이라는 노란 색 벽과 빨간 색 지붕들, 용무늬 장식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전쟁의 잔해들로 인해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져 간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스산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후에에서 다낭으로 가는 길엔 아직까지 개발이 덜 된 중부지방 농촌의 여유롭고 한적한 느낌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바다가 이어진 듯한 해변가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빈타우에서는 자연과 아이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우리나라로 치면 구불구불했던 옛날 대관령 길처럼 해변을 보면서 지나갔던 하이난 패스엔 시원한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짙은 안개 덩어리와 안개가 걷히면서 다낭의 멋진 해변이 내려다보이던 전망대에서의 기억들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이난 패스를 거쳐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다낭에 도착한다. 오랫동안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해온 다낭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주요 거점 중 하나였고 한국군이 건설한 도로도 그대로 남아 있어 우리와 인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트래비

1. 하이난 패스를 타고 가던 중 만난 해변 풍경
2. 끝도 없이 펼쳐진 다낭의 모래사장
3. 호이안 시내는 과노강객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 공간이기도 하다
4. 오행산 정상에 올라가면 대리석을 가공하는 많은 공자들과 어우러진 다른 대리석 산들을 볼 수 있다
5. 베트남전 당시 동굴 꼭대기가 무너져 빛이 들어오는 오행산 동굴
 

한적한 옛 거리의 느낌 그대로 호이안

베트남 면적의 70%가 산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낮은 산밖에 없는 베트남 해안지대에서 오행산은 평지에 불쑥 튀어나온 대리석 산이다. 오행산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대리석 공장들이 곳곳에 자리잡은 오행산의 나머지 자락들을 볼 수 있다. 오행산은 우주의 기원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이 모여 있다 하여 여러 종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곳이다. 

오행산을 거쳐 도착한 곳은 유네스코가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호이안 유적지. 여러 나라의 문화가 배어 있는 844개의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동양의 신비를 맘껏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베트남의 여느 관광지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호이안은 13세기부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나쳐 가는 수많은 나라의 중개상들이 머물렀던 까닭에 여러 나라의 특색이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베트남의 집들은 대개 긴 사각형 구조다. 사회주의식 토지 배분에 따라 땅을 ‘4m×15m’ 크기로 나눠 주었다고 하지만 직사각형 집의 형태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때 꽤나 합리적이다. 기후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로 면한 앞쪽을 좁게 하고 안쪽으로 길게 집을 짓는다. 호이안의 골목 길을 따라 지나가다 들른 화교 출신 화가 왕 아저씨의 집에서 그 지역 특유의 주택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왕 아저씨의 집도 안쪽으로 긴 형태로, 건물 안쪽은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 중간은 작업실, 건물 앞쪽은 물건을 파는 상점으로 되어 있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동양의 옛 거리를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곳이 바로 이곳 호이안이다.

참파왕조를 기억하라 미손

베트남 중부의 미손은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번성하였지만 지금은 소수민족이 된 참족의 참파왕국 유적이 남아 있는 참족의 성지이다. 베트남인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천년의 세월 동안 중부지방을 지배했지만 왕국이 멸망한 후에는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참파왕국이 남긴 대표적 유적지인 미손은 다낭에서 버스로 1시간여 걸린다. 베트남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5개 유적 중 하나가 바로 이 미손 유적지. 

19세기 후반 프랑스인들이 참파왕조가 남긴 유적을 발견해 유물의 일부를 모아둔 곳이 바로 ‘참조각 박물관’이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던 참파왕조의 유적들은 지금도 복원 공사가 한창인 앙코르왓 유적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앙코르왓 유적과 다른 점은 앙코르왓이 프랑스가 초기부터 보존, 복구하면서 유럽에 소개됐던 데 비해 참파왕국의 유적은 발견 당시부터 해외로 대량 유출됐다는 점이다. 참파왕조의 유적은 오랜 기간 자연에 방치되고 발굴 후에도 손실과 파괴를 거듭했던 순탄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손의 유적들은 쇠락해 버린 잊혀진 천년왕국의 흔적을 보여 주는 듯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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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기둥사원에서 아들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2.참파왕국의 성지인 미손
3. 베트남 건국영웅 호치민의 시신이 방부 처리돼 보존되고 있는 호치민 묘는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붐빈다 
4. 오토바이가 가득한 하노이 도로 
5. 곡식을 수확하는 베트남 농민들

베트남 정신의 중심이 되다 하노이

미손에서 다시 다낭으로 옮겨 비행거리로 1시간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이동했다. 많은 고층건물들 사이로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는 활기 찬 도시 하노이는 1945년 베트남 독립이 선언되었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도시이다. 하노이가 오래 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유적이 많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베트남전 당시 가장 많은 폭탄이 투하되었던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하노이에는 베트남의 건국 영웅인 호치민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호치민 묘지는 호치민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아침시간에만 방문이 가능하다. 하늘에서 보면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건물로 들어가면 베트남 현대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호치민이 누워 있다. 호치민 묘지 앞에는 베트남 독립을 선언한 바딘광장이 있고 호치민의 집무실도 볼 수 있다. 집무실까지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람들이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는 한기둥 사원과 독특한 모양의 전쟁박물관도 둘러본다.

또한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라는 문묘는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시험 합격을 기원하고 있다. 그곳을 나와 찾아간 하노이 시민의 휴식처, 호안키엠 호수.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 버금갈 정도로 집 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조그마한 상점들이 모여 있는 쇼핑의 거리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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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거의 없어서 노를 저어 이동하는 현지 주민들
2. 따톱섬의 아름다운 모래사장
3. 거대한 돔구장 같이 큰 규모의 승솟동굴
4. 잔잔한 바다를 노를 저어가며 물건을 팔러 다니는 베트남 사람들

환상적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하롱베이

‘물 속의 계림’이라 불리는 하롱베이. 예전에는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가는 데 7시간 정도가 걸렸다지만 지금은 3시간 정도면 족하다. 용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뜻이라는 하롱베이는 우리나라의 서해같이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바닷물이 들고 나감으로 인해서 하나의 섬이 두 개의 섬으로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하롱베이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할 만큼 특별한 자연미를 자랑하고 있다.

대략 3,000개 정도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는 어찌 보면 우리나라 다도해와 비슷하고 또 어찌 보면 중국의 계림과도 유사하다. 3,000여 개의 섬이 방패처럼 파도를 막아서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섬들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하롱베이의 섬들은 안개가 짙을 때 보면 마치 바다에서 용이 자태를 드러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짙은 아침 안개를 뚫고 빈하롱 항구에서 1시간 반에 걸쳐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승솟이라고 불리는 섬이다. 그곳에는 석회동굴인 승솟동굴이 있다. 동굴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동굴의 모습은 돔 구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큰 규모다. 어떤 우주 조종사의 말처럼 외계의 혹성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롱베이 섬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띠톱 섬. 이 섬은 방문객도 많고 작은 모래사장도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전망대 위에서 보면, 많은 배들이 들고나는 모습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안개 속 섬들 사이로 겹쳐지면서 환상적인 장관이 연출된다.  

아오자이 

아오자이는 베트남의 전통의상으로, 한복과 마찬가지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특히나 하노이에서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아오자이는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북부 지방보다는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입는다. 아오자이의 색깔도 하얀 색 같은 단색부터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가 들어간 것까지 다양하다. 아오자이는 중국의 전통의상처럼 치마가 옆으로 트여 있지만 그 안에 바지를 받쳐 입는다. 옷매무시에서 몸매의 선이 중요한 아오자이는 멋있게 잘 맞을수록 몸매의 선이 다 드러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비교적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베트남 여인들조차도 쉽게 입지 못한다고. 


* 취재협조 : 한겨레 투어 www.hanitour.co.kr
                 베트남 항공 www.vietnam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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