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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 술 이야기 - 세상은 넓고 좋은 술은 술술 넘어간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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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트래비

니가타는 풍요로운 곳이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고 눈이 많고,
물이 풍부하고 바다가 있고 강이 넓고 풍요로운 논밭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자연을 닮아 순하고 여유롭다.

니가타의 옛 이름은 에치고(越後)다. 도쿄에서 동해 쪽으로 가다 보면 에치라는 거대한 산맥이 나온다. 이 산맥을 바람은 넘지 못한다. 바람이 넘지 못하니 구름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동해를 달려온 구름은 눈이 되어 내린다. 11월이 되면 내리기 시작하는 눈은 4m 넘게 쌓인다. 일본 최대의 적설량 지대이다. 소설 <설국>의 무대가 이곳인 것은 당연하다. 

평원에 쌓인 눈은 날이 따뜻해지면 햇빛을 머금고 땅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대지는 풍요롭고 물은 풍부하고 깨끗하다. 풍요로운 대지는 풍부한 산물들을 낳는다.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쌀 '고시히까리'는 이런 환경의 산물이다. 땅만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깨끗한 공기는 깨끗한 미생물을 살게 해준다. 그래서 이곳의 발효식품들은 담백하고 깨끗하다. 그중에 '단레이(淡麗)'로 지칭되는 니가타 술을 만들어 내는 효모가 있고 누룩이 있다. 니가타 사람들은 음식점 앞에서 줄을 서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맛이 좋기 때문이다. 그 맛있는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것으로 그들은 니가타 청주를 꼽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술 맛이 담백하고 깨끗하다. 음식의 맛을 넘어서면 좋은 술이 아니라는 그들의 생각이 낳은 결과이다. 니가타의 술은 일본 청주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그중에는 전설의 술 '고시노간파이', 젊은이들 사이에 청주 붐을 몰고 온 '구보타', 에어프랑스 일등석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마노추루' 등 전설적인 명주들이 수두룩하다. 

일본 술을 가장 일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장소로는 전통여관을 빼놓을 수 없다. '류곤(龍言 025-772-3470)'. 동행한 일본인들은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 오기도 힘든 곳이라고 말한다. 목조 건물의 기둥에서, 복도에서 침향 같은 고고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가이세키 요리와 더불어 청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차분한 느낌이 감도는 '하까이쟌다이긴죠', 니가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단맛이 나는 '시메하리츠루에', 여성적인 느낌의 '구보타센쥬', 잡내가 나지 않으면서 강한 '고시노간파이'까지 정갈한 음식과 담백한 술은 그야말로 술술 들어간다. 취기가 스며든 조그만 육신의 쾌락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류곤의 노천온천은 멋있다. 달이 소나무 뒤로 은은한 빛을 보내고 있다. 몸을 타고 올라오는 온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뼈 속까지 따뜻하다. 먹는 물이든 온천 물이든 니가타는 물 좋은 곳이다.


 ⓒ트래비

(왼) 다마카와 내부
(오) 다마카와 주조에서 생산된 청주들

눈 속에서 익어 가는 술 유키쿠라

단아한 아침 식사는 철학적이다. 청어, 낫토, 유바, 제첩국, 버섯 같은 소박한 반찬에 쌀밥이 전부이다. 고시히까리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시오자와' 쌀로 만든 밥은 아름다웠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밥은 어떤 보석보다도 곱다. 그리고 사람의 속을 다스리고 채워준다.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에게 쌀이 단순한 음식 재료가 아닌 것은 그런 이유이다.
 
3월의 니가타는 여전히 설국이다. 그중에서도 눈 많기로 유명한 우오누마. 이곳에 '다마카와주조(玉川酒造)'가 있다. 올해로 창업 333년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장원(술 만드는 곳을 일컫는 일본식 단어)이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술은 '유키쿠라'라는 말 그대로 눈 속에 저장한 술이다. 겨울에 내린 눈을 보존해서 일년 내내 눈으로 저장고의 온도를 유지하는 일본 유일의 장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눈을 내세운 마케팅을 필두로 이곳을 둘러보면 와인 제조사의 마케팅을 따르고 있는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일본청주를 오랫동안 숙성, 저장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술은 10년 정도 저장하면 어는 순간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잔잔한 맛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46도나 되는 '사무라이'라는 독한 청주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파클링 다이긴조 유키쿠라'라는 스파클링 청주를 만드는 등 대중화시킨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만들고 있다. 술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쌀은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사용한다. 일본 술을 만드는 쌀은 '사카마이'라는 술 전용 쌀을 사용하는데 일반 쌀보다 크기가 더 크고 가격은 휠씬 비싸다. 

그중에 야마다니시키와 고햐쿠만세키(五百万石)가 고급 청주를 만드는 쌀 중 가장 유명한 쌀이다. 야마다니시키로 만든 술은 품위 있고 우아하다면 고햐쿠만세키로 만들 술은 깊은 향이 입 안으로 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고햐쿠만세키는 니가타가 산지이다. 니가타의 명주들도 대개 이 두 가지 쌀로 만들어진다. 유키쿠라 다이긴조의 맛은 소름이 끼친다는 표현이 들 정도로 새로운 맛이다. 사장의 술에 대한 철학은 니가타 사람답게 단순하고 명쾌하다. '음식과 어울리는 조화로운 술이 맛있다'라는 것이다. 니가타의 유명한 음식으로는 훈제 연어가 있다. 그리고 쫄깃하고 시원한 헤기 소바도 있다. 청주 마니아들은 예부터 소바와 먹는 청주를 최고의 미식으로 여겨 왔다. 


 ⓒ트래비

1. 류곤의 아침밥
2. 청주 마니아들은 소바와 함께 먹는 청주를 최고로 친다. 네기 소바
3. <설국>이 집필된 장소

사도, 사케 아일랜드

섬 나라인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섬을 육지처럼 부른다. 4개의 큰 섬을 제외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 바로 사도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이곳의 호쿠세츠 장원을 방문한 뒤 사케의 섬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술로 유명한 섬이다. 쾌속선으로 니가타 항에서 1시간을 가면 닿는 곳이다. 바람이 많고 공장이 없는 고장으로 제주도 같은 느낌이 드는 섬이다. 이곳에 에어프랑스 기내식을 공급하는 오바타 주조(尾畑酒造)가 있다. 입구에 있는 알코올 공화국이라는 문구와 삼나무로 만든 스기다모가 인상적이다. 스기다모는 1월1일에 달아서 12월31일에 교체한다. 술이 익는 가을이면 초록의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한다. 오바타 주조는 독특한 곳이다. 우선 장원의 사장이 여자다. 술 만드는 장원에 여자 사장은 드물다. 

일본도 여자가 끼면 술을 만드는 데 부정을 탄다는 미신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영화 관련 사업에 종사하던 오바타상은 여장부다. 씩씩하고 진취적이다. 홍보 전문가로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덕에 입구의 알코올 공화국 같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새로움을 지향하는 문화가 배어 있다. 몇 년 동안 전국 술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은 것도 사장이 지향하는 '전통에 기반을 둔 새로움'에서 기인한다. 술 만드는 총 책임자인 토우지(杜氏)는 대개 50대 정도가 맡아야 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 받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곳의 토우지 쿠도 켄야는 30대 초반이다. 여자 사장에 어린 토우지라는 핸디캡은 그러나 오바타 주조를 진취적이고 유명하게 만들었다. 대표 브랜드는 '마노추루 다이긴죠'이다. 일본 술은 와인처럼 여러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에 다이긴죠는 최상위급에 속하는 술이다. 

쌀은 탈곡을 하면 현미가 된다. 그리고 이 쌀을 얼마만큼 깍아 내느냐 하는 도정 과정을 거쳐 백미가 된다. 우리가 보통 먹는 쌀은 5% 정도를 깎아 내고 먹는다. 그런데 다이긴죠는 50%를 깎아 낸다. 마노추루 다이긴죠는 60%를 깎아서 만든 쌀로 만든다. 많이 깎을수록 쌀 고유의 맛만이 남기 때문에 술은 순수한 맛을 지니게 된다. 야마다니시키가 좋은 쌀인 이유는 70% 이상을 깎아 내도 쌀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생쌀을 씹어 보면 처음에는 텁텁하다가 나중에 단 맛이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쌀 고유의 단맛을 살리는 것이 마노추루의 기본 정신이다. 그래서 술은 쌀 문화권의 정수이다. 좋은 술은 향이 있고 맛이 있고 투명하다. 음식과 어울려야 좋은 술이란 니가타 정신은 요리와 어울리는 술을 만들어 낸다. 깊은 맛의 술은 붉은 생선이나 고기 요리와 어울리고 신맛이 나는 술은 드레싱이나 상큼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식으로 음식과 술의 조화는 그들의 음식 문화에 깊게 배어 있다. 


 ⓒ트래비

1. 사도로 가는 쾌속선.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와 독수리들이 사람을 부서워하지 않고 끝없이 따라온다.
2,3. 오바타 주조

사도의 6개의 장원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호쿠세츠(北雪)다. 강한 바람, 깨끗한 눈 속에 탄생한 호크세츠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셰프 '노부'에 의해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청주 브랜드가 되었다. 노부의 체인에서는 오직 호크세츠의 술만을 취급한다. 노부의 성공은 일본 음식의 성공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일본 청주를 같이 마시기 때문이다. 이곳의 세계적인 대표 브랜드는 YK35이다. 미국의 유명인들은 노부에서 스시와 이 술을 먹는 것을 최고의 멋으로 여긴다. 빌 클린턴, 톰 크루즈, 로버트 드니로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세계적인 유명인들의 이름들 붙인 할리우드 시리즈란 청주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청주가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증거는 어딜 가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호쿠세츠를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술은 초음파 숙성주이다. 대항해 시대에 파도에 흔들린 술들이 맛있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술이다. 초음파 숙성실에 들어가 보면 술을 일정하게 흔들어 주고 음악을 틀어 주고 있다. 숙성실의 차가운 온도처럼 냉정하고 치밀하게 청주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술 먹을 때는 이런 것은 몰라도 된다. 술 맛만 좋으면 되기 때문이다. YK35는 담백하고 단맛이 난다. 그리고 뒷맛이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뇌에 새로운 맛이 각인된다. YK35 역시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술은 아니다. 그래서 사장인 하즈 푸미오에게 물으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을 소개한다. '호쿠세츠 금성'이다. 등급은 가장 낮은 등급인 혼조주이다. 부드럽고 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자신도 평소에는 이 술을 주로 먹는단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은 높은 등급을 좋아하지만 일본의 술꾼들은 혼조주 중에서 좋은 술을 찾아 먹는다고 한다. 어느 명주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술이었다.
세상은 넓고 좋은 술은 많았다.

epilogue 사케노진

니가타에는 97개의 장원이 있다. 일본 대중 술의 발생지가 효고현의 니시미라면 고급 술의 완성지는 니가타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 니가타 술을 한번에 다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일년에 한 번 있는데 '사케노진'이라는 니가타 술박람회이다. 입구에서 500엔을 주면 하얀 색에 안에는 파란 색 테가 있는 잔을 하나 준다. 무슨 잔이 그리 비싸냐고 하겠지만 이 술잔만 있으면 박람회장에 있는 수천 종의 술을 다 맛볼 수 있다. 행사 후반에 가면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앰뷸런스가 오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어쨌든 술꾼들에게는 이상향이다. 이곳에 가면 니가타의 술이, 일본의 청주가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일본에서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분홍색의 청주에서, 만화주인공 캐릭터를 활용한 청주까지 다양한 마케팅을 활용한 청주들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특히 올해에 가장 주목 받은 사건은 '고시단레이'라는 술의 발표였다. 니가타의 옛 이름인 고시와 니가타 술을 표현하는 담백하고 깨끗하다는 뜻의 단레이를 합성해서 만든 단어이다. 50여 종의 술을 맛보면서 조금씩 취해 갔다. 니혼슈(日本酒)는 쌀과 물과 효모만으로 만든다. 그러나 수만 가지의 술이 존재한다. 다양함은 아름답다. 니가타는 풍요롭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 일본 술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

정종은 청주의 다른 이름이다

청주는 니혼슈라고도 하고 세이슈(淸酒)라고도 한다. 정종(正宗)은 마사무네의 한국식 이름인데 일제시대에 부산에 있던 청주회사의 브랜드였다. 일본에는 마사무네란 브랜드가 많다. 정종은 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일 뿐이다.

청주는 일본 고유의 술이다

청주는 일본의 만요슈에 의하면 백제인 수수보리란 사람이 3세기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의 일본 청주는 일본 문화의 결과이다. 한국 청주의 전통은 따로 존재한다. 일제시대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쌀로 빛는 술이 사라지면서 문화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청주는 데워 먹는 술이다

혼조쥬 이하는 순 쌀로만 만들지 않고 다른 성분을 섞는다. 그래서 순수한 맛을 위해 데워 먹었다. 그러나 지금의 고급 술들은 고유의 향과 맛이 그 특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차게 해서 먹는다. 데워 먹는 술이 전부 나쁜 건 아니고 데워 먹는 전용 술들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의 일본 청주는 대개는 차게 해서 먹는다.

청주는 단순한 술이다

청주는 도정의 정도나 첨가물의 정도에 따라서 등급이 나뉘어진다. 위에서부터 등급을 나뉘어 보면 다음과 같다.
쥰마이다이긴죠주(純米大吟釀酒), 다이긴죠주(大吟釀酒), 쥰마이긴죠주(純米吟釀酒), 긴죠주(吟釀酒), 토쿠베츠쥰마이주(特別純米酒), 쥰마이주(純米酒), 토쿠베츠혼죠주(特別本釀造酒), 혼죠주(本釀造酒). 약 3만개가 넘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니가타 정보: www.pref.niigata.jp
니가타현 서울사무소: 02-773-3161
사도 섬 숙소: 국제사도관광호텔 0259-57-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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