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트 독일가다] ④ 베를린 - 통일의 도시 베를린에서 ‘대한민국’의 내일을 꿈꾸다
[트래비스트 독일가다] ④ 베를린 - 통일의 도시 베를린에서 ‘대한민국’의 내일을 꿈꾸다
  • 트래비
  • 승인 2006.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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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트래비 창간1주년특집 기획의 하나로 연재된 ‘트래비스트, 월드컵 개최지 독일을 가다’편도 네 번째 베를린을 끝으로 마칩니다. 베를린에서는 예선 4경기와 8강전, 결승전이 열립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베를린 경기장에서 경기를 가지려면 결승전에 올라야만 합니다. 월드컵이 시작됐습니다. 이 기사를 담은 트래비가 여러분 손에 가 있을 때쯤엔 한국의 첫 번째 경기 결과가 이미 나와 있겠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라고 해도 베를린 경기장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설 수 있기를 꿈꿔 봅니다. 트래비스트 김은정씨는 투어닷코리아, 유럽전문 인터넷 카페 No.1 여행매니아가 함께한 ‘5기 트래비스트 공모전’에서 대상으로 당첨돼 한국의 예선전 3경기가 열리는 3개 도시와 베를린으로 취재여행을 다녀와 생생한 도시 여행기를 4주간 게재해 왔습니다.

어느덧 여행 막바지. 항상 여행의 이맘때에 이르면 여행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각오와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내가 이 여행을 왜 오게 되었는지, 이 여행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인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시작할 때의 그 마음 그대로 충실한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검표는 불시에 무차별적으로!

아래위로 검은 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갑자기 내 눈앞에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는 아이디카드를 들이민다.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주섬주섬 주머니며 지갑에서 전철 승차권을 꺼내는 모습들이다. 승차권 검표 시간이다. 

내가 차표를 샀던가…? 주머니에서 빼내는 떨리는 손끝에 베를린 웰컴 카드가 달려 나온다. 카드에 적힌 날짜와 시간을 보니 오늘 오전 11시까지 사용 가능한 승차권이었다. 검표를 한 시간은 9시30분. 휴우~ 간이 콩알만해지는 순간이었다.
베를린 웰컴 카드는 72시간 동안 베를린 시내와 포츠담까지 사용이 가능한 대중교통 무제한 탑승 가능 카드라고나 할까? 가격이 18유로로 꽤 비싸긴 하지만 지역이 넓어서 걸어 다니기 힘든 베를린인 만큼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승차권이다. 이 웰컴 카드는 어제,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한국인 여행객이 자신은 이 카드가 이제 필요가 없다고 준 것이었다. 이 웰컴 카드가 없었다면…난 꼼짝없이 40유로의 벌금을 내야 했을 것이다. 여행자들이여! 무임승차는 정말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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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훔볼트 대학. 수많은 유명 철학자와 문학가들,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해 낸 독일 학문의 산실이다.
3.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 세계대전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적이다.

도시 곳곳에 전쟁의 상흔들이

베를린 여행의 시작은 주(Zoo) 역의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다. 주 역에 도착하니 플랫폼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를 기다리던 친구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 친구는 베를린으로 미술 유학을 온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베를린 새내기. 일주일을 혼자 여행 다니다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것도 몇 년을 동고동락하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은 참 새롭고 가슴 벅찼다. 이곳에 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베를린 여행은 오늘이 처음이라는 친구와 함께 카이저빌헬름 교회를 시작으로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질러 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교회로 다가갔다.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파괴된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전쟁의 비참함과 위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폭격을 맞은 교회는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새로운 기념비를 높게 세워 놓았다. 까맣게 그을린 모습에 전쟁의 참혹함이 남아 있는 울퉁불퉁한 외벽. 그 경계를 내 손바닥으로 느껴 본다. 독일엔 전쟁의 흔적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이 전쟁으로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증거를 도시 한복판에 남겨 후세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쿠담 거리에서 만난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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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담. 발음만 들어도 꽤 멋들어진 느낌이다. 정식 명칭은 ‘쿠어퓌르슈텐담 (Kurfurstendamm)’. 앞뒤 두 글자만 따서 쿠담이라고 부른단다. 그 느낌처럼 쿠담은 온갖 브랜드 숍과 백화점이 즐비한 쇼핑의 중심가이다. 쿠담 거리에는 커다란 나이키 매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드디어 월드컵 분위기를 찾아 낼 수 있었다. 매장 입구에 8개 국가의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앙에 강렬한 주황색의 우리나라 유니폼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매장 안쪽에는 우리의 태극전사, 박지성 선수의 사진과 한글이 새겨진 응원복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참을 그 주위에서 서성이며 사진을 찍어 댔다. 게다가 나이키 매장 근처의 기념품 판매점에서 찾아낸 커다란 태극기! 자랑스럽게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어 대는 우리를 보고 가게 주인도 나와서 즐거움에 동참한다. 

각종 평가전에도 수만 명이 모여 응원을 하고 거리마다 현수막과 월드컵 관련 광고가 넘쳐 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개최국인 독일의 분위기는 비교할 바도 안 되지만 이런 조그만 느낌이라도 찾아낸 나로선 반가워서 펄펄 뛸 지경이었다.
쿠담 거리는 도로 양 옆으로 루이뷔통에서 프라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품 매장과 백화점이 가득해서 쇼핑에 목마른 여행객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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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만나는 초록 빛 여유

아침부터 많이 걸었더니 점심 때도 되지 않았는데 허기가 진다. 제발 100번 버스를 타자고 울부짖는 친구를 데리고 티어가르텐으로 간다. 100번과 200번 버스는 거의 시티투어 버스와 마찬가지다. 관광지와 외국인이 볼거리가 많은 거리들을 찾아서 순회하는 버스이므로 적절히 이용하면 좋다. 

티어가르텐은 카이저빌헬름 교회를 중심으로 쿠담 거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동서의 길이가 약 3km에 달하는 거대한 시민공원. 티어가르텐의 입구부터 직선으로 ‘운터 덴 린덴’까지 이어져 있지만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섣불리 걷는 것보다는 동선을 정해 놓고 대중교통과 도보를 적절히 섞어서 이용하는 것이 좋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원이라는 베를린 동물원을 지나면 티어가르텐의 입구에 닿는데 이곳에서부터 공원의 중심인 전승기념탑(지게스조일레)까지 가는 길에 재밌는 구경을 할 수가 있다. 일명 누드가든. 다른 나라에서는 누드가든을 보기 힘들었지만 독일은 뮌헨에서도, 베를린에서도, 하노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여행하는 내내 독일은 햇빛 쨍쨍한 여름이었지만 내가 오기 전에, 그리고 가자마자 바로 비만 줄기차게 오고 있다니 과연 일조량이 부족한 나라이긴 한가 보다. 나는 운 좋게 날씨도 좋았고 그로 인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누드가든도 봤으니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바로 옆 잔디밭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내 친구는 충격에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공원 중앙의 전승기념탑에 이르면 사방으로 뻗은 대로에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기념탑을 휘감아 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로이센이 현 독일을 통일하게 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70m 높이인 전승기념탑의 꼭대기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빅토리아 여신상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위에 전망대가 있다니 올라가서 진짜 황금인지 아닌지 깨물어 보고 싶었지만 300m가 넘는다는 텔레비전 탑이 기다리고 있어서 발길을 돌렸다. 

입구부터 전승기념탑까지 온 거리만큼 더 가면 티어가르텐과 운터 덴 린덴의 경계인 브란덴부르크 문에 이른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문을 본떠서 설계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오랜 세월 동안 ‘벽’에 둘러싸여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다. 문 위에는 고대 전차에 탄 승리의 여신상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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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붉은 시청사의 모습 
(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참전용사 위령비. 독일 어린이들이 위로의 노래를 하고 묵념을 하며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썽ㅆ다. 뒤쪽에 있는 전승기념탑과 대조적인 뜻을 지닌 기념물

독일 학문의 산실, 운터 덴 린덴

녹음이 짙은 티어가르텐을 벗어나면 바로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이라는 거리에 들어서게 된다. 각 여행책자마다 이곳은 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는 소개가 나오는데 계속 걸어 봤지만 온통 공사중인 데다 굳이 볼 만한 명소는 없는 것 같아서 왜 꼭 들러야 하는 곳인지는 알 수 없어 투덜대며 홈볼트 대학까지 걸었다. 

대학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국립도서관은, 도서관인지 모르고 불쑥 들어가 본 곳이지만, 그곳에만 마치 가을이 와 있는 것처럼 고동색 나뭇잎이 마당에 한가득 쌓여 있는 로맨틱한 곳이었다. 이런 데서 공부하면 진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한국에서도 매일 하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며 홈볼트 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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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볼트 대학과 베를린 국립가극장이 있는 광장 입구엔 재밌는 조형물이 하나 서 있는데,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와 문학가들의 이름을 책등에 써서 쌓아놓은 모습인데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괴테부터 쉴러, 칸트, 막스… 들어 보지 못한 이름도 있고, 독일인들로선 어깨가 으쓱할 만하다. 광장에 앉아 대학 정문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봤다. 모두들 옆구리와 팔에 두꺼운 책을 끼고 서로 무슨 열성적인 토론을 하는지 연신 얘기를 나눈다. 학구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홈볼트 대학의 본관에 쓰여져 있다는 마르크스의 어구가 떠오른다.

“철학자들은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운터 덴 린덴을 꼭 들러야 하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이곳이야말로 독일 학문과 문학의 산실이며, 지금 내 눈앞에서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있는 저들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중인 독일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베를린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다

운터 덴 린덴을 지나 이제 후들거리기까지 하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슈프레 강을 건너자 하루 종일 여행하며 생겼던 짜증들과 생각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는 한 건물이 있었으니, 바로 베를린 대성당이다. 보는 순간 나와 내 친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의 성당인 데다가 이탈리아의 베드로 대성당이나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검게 그을린 외벽과 에메랄드 빛 지붕이 보는 이를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대성당 바로 앞에는 우리나라 시청 광장처럼 널따랗게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비로소 두 다리를 쭉 뻗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날 보고 대체 우리가 얼마를 걸었는지 아냐고 닥달하는 친구에게 “동(Ost) 역까지 걸을 건데 뭐~”라고 했더니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다. 푸하하~ 

대성당을 지나 알렉산더 광장으로 가면 성당에 오기 전부터 뒤쪽으로 아른아른 보이는 아찔한 높이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이 바로 텔레비전 탑.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굴지의 높이를 자랑한다. 이 탑의 높이는 무려 365m. 지상 203m 지점에 전망대가 있고 그 위에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 200m 높이의 빙빙 돌아가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라니, 밥이 잘 넘어갈지 모르겠다. 전망대 입장료는 5유로. 학생증이 있으면 반액 할인이 되니 올라갈 만한 곳이다. 날씨가 너무도 좋아, 높은 전망대에서는 저 멀리 스위스까지도 보일 것만 같았다. 

탑이 있는 알렉산더 광장을 끝으로 동 역에 도착한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베를린을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로지르는 대 장정을 무사히 끝낸 것이다. 서울로 치면 거의 신촌에서 명동, 동대문, 대학로를 거쳐 강남까지 걸었다고나 할까.

시내 구경을 하는 내내 투덜댔던 친구도 결국 베를린을 횡단했다는 사실에 자기가 생각해도 대단하다며 으쓱해 한다.

세계의 모든 눈이 ‘월드컵 베를린’으로

프로이센의 수도로서의 영광,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서 분단의 비극, 다시 통일 독일로서의 재기, 그리고 2006년 월드컵의 개최지로. 베를린은 ‘벽’이 파괴된 후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변모를 모색하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대도시다. ‘벽’이 파괴되긴 했지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아 역 주변과 기념품 판매점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의 가슴 속에까지 뿌리 깊이 남아 있지만 이제 베를린은 세계적인 대축제를 맞아 활기차게 변화하고 있었다. 

한 달 후에는 이곳, 베를린으로 세계의 모든 눈이 집중될 것이다. 가슴에 태극기를 단 태극전사들이 베를린 슈타디온에서 월드컵의 마지막을 뛸 그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지는 태양 속에서 베를린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프랑크푸르트에서부터 라이프치히, 하노버, 베를린까지 여행을 하며 난 한국을 여행하듯 편안함을 느꼈다. 독일인들은 입을 꼭 다문 딱딱한 인상에 무뚝뚝해 보여서 가까이 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술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시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길을 물어보면 자기가 가던 길을 되돌아 안내해 주던 독일인들 덕분에 혼자였어도 그리 외롭지 않았다.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축제 분위기가 나지 않는 모습에 얼마간 아쉽기도 했지만 라이프치히나 하노버 등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일의 숨은 도시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내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멋진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3년 전의 여행 때도 그랬듯이 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 일상 속에 문득문득 떠오를 독일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쭉 내 마음속의 다이아몬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독일이 월드컵을 무사히 치르고, 우리 태극전사들이 독일 땅에서 선전하길 기원하며 4주간의 독일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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