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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4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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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바람 소리가 흐르는 '파타고니아'

'The end of the world'

결국 지구의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남미 대륙의 최남단 아르헨티나의 우슈아이아입니다. 세상 끝에 있다는 절박감 때문인지, 비와 함께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 때문인지 금방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내내 저를 붙들고 있더군요.

우슈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200km나 떨어져 있는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남극대륙이 나오지요. 조금만 더 가면요. 이곳에 온 여행자들의 마음은 모두 남극대륙을 향해 불고 있답니다. 저 역시, 남극 욕심은 다음으로 미뤘으면서도 길거리를 기웃거리며 남극 여행 상품들을 찾아보고 다녔지요.  

우슈아이아를 포함해 칠레 아르헨티나의 남쪽, 그중에서도 콜로라도 강 이남은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큰 발’이라는 뜻인데요, 1520년 마젤란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거대한 원주민의 발자국을 보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산과 바다, 펭귄과 바다사자가 있는 자연의 보고지만, 이곳의 길들이 이렇게 황량한지 몰랐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평원에는 슬퍼 보이는 바람 소리만 살고 있더군요.

황량한 바람 냄새가 배어 있는 절경 ‘토레스 델 파이네’

파타고니아에서 제가 간 곳은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푸에르토 나탈레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엘 칼라파테와 우슈아이아였습니다. 첫발을 디딘 곳은 푼타아레나스. 환상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는지 푼타아레나스보다는 그곳에서 3시간 떨어진 푸에르토 나탈레스가 더 친근감이 가더군요.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Torres del paine)이 가까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은 강인해 보이는 돌기둥과 터키석 빛이 도는 호수들, 그리고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한 바람이 있는 곳입니다. 돌기둥들은 마치 조각칼로 공들여 만든 작품들처럼 시원스럽게 솟아 있더군요. 눈이 덮인 봉우리는 감히 인간이 근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구요. 길에서는 파타고니아에서 사는 구아나코(guanaco), 난두(nandu) 떼를 만나기도 했지요. 엽서 같은 풍경만큼이나 바람 소리가 마음을 울리던 곳이었습니다.

빙하 한 조각 톡 깨 넣은 위스키 한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과 함께 파타고니아에서 저를 사로잡은 것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였습니다. 폭이 무려 5km에 이르는 페리노 모레노 빙하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빙하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온몸이 얼음처럼 얼어붙는 줄 알았답니다.   

전망대에 올라서 시퍼런 빙하를 보니, 마치 쥬라기 공원 한가운데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영화 <나니아>의 폴리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생경하고 하얀 세상 속에 빠져 들더군요. 

이곳에 와서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 위스키에 빙하 타 먹기! 흘러내려온 빙하 한 조각을 톡 깨서 언더 락을 만들었습니다. 켜켜이 긴 세월을 담고 있는 빙하 조각과 함께 위스키를 마시니, 숨쉬고 있다는 것이 어찌 그리 감사하던지요.  

푸른 숲과 하얗고 파란 빙하가 그려 내는 절경도 절경이지만, 집채만한 빙하가 갈라지면서 생기는 '우루루 쾅쾅' 하는 굉음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되더군요. 마치 성당에라도 온 듯 말이지요. 더욱 겸손하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게, 배려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요. 
경이롭기만 한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낮아진 저의 마음이 세상 끝까지 가야 할 텐데요. 서울에 돌아가면 책상 앞에 커다란 빙하 사진을 하나 걸어 놓아야겠습니다.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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