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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사 템플 스테이 - 꽃피는 산사에서 참 나를 만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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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체험 ‘템플스테이’에 대해 사람들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 ‘풍요로운 쉼’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한국전통문화의 보고인 사찰에서의 체험은 넉넉하고도 사색적인 휴식의 맛이 그윽하고도 좋지만, 한국 문화의 우수한 가치를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홍단 꽃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사찰

토요일 오후, 산사의 참 맛을 보러 서울을 떠난다. 서울에서 버스로 3시간. 충남 공주의 장군 산 아래 자리한 영평사가 이번 목적지다. 봄은 들에도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가는 길 내내 안성의 배꽃이, 금강변의 분홍 복사꽃이 저마다 춤사위를 펼치니 남 몰래 발장단을 맞춘다.

전국적으로 봉우리 이름이 장군인 곳은 많아도, 산 이름이 장군 산인 곳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도착한 영평사의 첫 모습은 그 장군 산의 품 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하다. 앞마당 푸른 잔디가 그 위로 날리는 하얀 꽃잎, 분홍 꽃잎에 더욱 짙은 빛을 발한다. 

산사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제 아름다움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계단 옆의 붉은 ‘명자꽃’. 옆집 언니 같은 독특한 이름의 명자꽃은 화투의 ‘홍단’, 바로 그 꽃이란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 만난 듯 살포시 웃으며 그 곁을 지난다. 비단 명자꽃이 아니더라도 영평사는 꽃의 절로 유명하다. 봄이면 진달래, 철쭉, 할미꽃, 창포, 파랭이, 명자꽃이, 여름이면 옥잠화, 수국, 나리꽃, 백련이 핀다. 또 백련이 저물어 갈 때쯤이면 하얀 구절초가 산사를 뒤덮으니 스님들의 꽃 마중도 쉴 틈이없다. 오죽하면 주지스님도 ‘꽃 중’이라고 불리울까.

말을 아끼고 자기를 들여다본다

대웅전 오른편에 위치한 적묵당이 여자 숙소다. 마루를 밟고 올라서 들어간 방은 높은 천장과 방 앞뒤 미닫이문이 인상적이다. 적묵당은 일반 신도들이 수행을 하는 선방(禪房)이라고. 마당을 지나 언덕 넘어 있는 남자 숙소, 삼명선원 역시 신도들의 수행처이다. 

이어 수련복을 갖춰 입고 고무신으로 갈아 신는다. 옷과 신발이 바뀌니 템플스테이가 실감난다. 참가자들은 예불을 드리는 대웅전(법당)에 모여 산사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배우며 일정을 시작했다. 그 첫 마디가 “사찰에서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수련복을 벗을 때까지 말보다는 자기 관조를 위한 여유의 시간을 갖으라는 것이다.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걸을 때는 손을 중앙에 모으는 차수가 기본인데,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게 한다. 눈은 3m 앞을 바라보면 된다.   

언젠가 팃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을 읽었던 게 생각난다. “의식적인 호흡, 의식적으로 걷기, 화를 끌어안기, 우리 지각의 본성을 깊이 들여다보기, 타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기…”

먹는 것 자체가 깊은 수련, 발우공양

사찰에서는 먹는 것 자체가 깊은 수련의 과정이다. 스님들은 엄격한 예법에 따라 ‘발우(鉢盂供養)공양’을 한다. ‘발우’는 스님이 쓰는 밥그릇으로 총 4개의 나무 그릇으로 한 세트를 이룬다. 가장 큰 것부터 차례로, 밥을 담는 어시발우, 국을 담는 국발우, 청수를 담는 청수발우, 그리고 반찬을 담는 찬발우로 구분된다. 제일 큰 어시발우 안에 이 그릇들을 차례로 포갠 후 보자기에 싸 수건을 덮어 놓는다.

처음 발우를 이용해 보는 사람들은 ‘밥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며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군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참가자들은 제일 좋아하는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긴장이 앞선다. 그러나 함께 배워 가는 사이 사람들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발우공양은 밥을 먹는 데도 철학이 있고,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지 침묵으로 깨닫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뿐인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먹고 부족하면 ‘십시일반’ 하는 발우공양은 남을 위한 배려와 청결정신도 담고 있다. 발우공양은 기본적으로 침묵하며 나와 내가 먹는 그것이 대면한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을 깨우는 산사의 아침

새벽 3시, 새벽 예불을 알리는 스님의 목탁 소리가 사찰 마당에 울려 퍼진다. 이른 새벽이지만 익숙한 듯 새와 달도 함께 깨어 있다. 드디어 엄숙한 예불이 시작된다. 종교가 달라 예불에 참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템플스테이 관계자는 “예불은 부처를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찰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며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 불교 신자가 아닌 참가자가 70%이며, 이 중 30% 정도가 기독교 등 타 종교를 갖고 있다”고 전한다. 이러한 템플스테이의 기본 정신을 이해한다면 예불에 참석하는 게 탐탁치 않을 까닭이 없다.

예불에 이어 반야경을 직접 써 보는 시간이 진행됐다. 한지에 엷게 새겨진 반야경을 붓펜으로 따라 쓰는 것으로 아이들도 곧잘 따라한다. 예전에는 반야경을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절을 하며 의미를 새겼다고 하는데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한 줄에 한 번씩 간소화된 예를 갖춘다. 반야경 쓰기를 마치고 법당을 나오니 눈썹 같은 노오란 달이 산머리에 걸려 있다.

6시부터 아침 발우공양 시간이다. 어제와 달리 참가자들은 한층 여유롭게 식사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다. 스님은 그제서야 발우공양의 엄격한 절차가 가진 참 의미를 설명해 준다. 발우공양은 3,000년 전 석가모니 때부터 시작된 앞선 식사법으로 양념 부스러기까지 아끼는 절제와 수고한 사람들의 은혜가 깃들어 있다. 

진흙탕 연꽃 향기에 스님은 웃었네

‘하나, 둘, 셋, 넷~’ 사찰 중앙 너른 잔디밭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선체조 시간. 유연한 스님의 동작에 너도 나도 열심히 따라해 보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은은한 백련차를 시음해 볼 수 있는 것도 영평사의 매력이다. 선체조를 마치고 주지스님 방에서는 차 시음이 진행됐다. 사람 주먹만한 연꽃을 얼음물에 넣고 한복 저고리를 벗기듯 한 입 두 입 꽃잎을 열어젖힌다. 적어도 지름 30~40cm는 될 법한 커다란 연꽃이 등장한다. 연꽃 한 송이로 30명이 3번 이상 마실 수 있으니 크기만큼 넉넉한 꽃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신성, 군자, 번영, 순수, 청정 등을 의미하는 아름답고 품격있는 꽃”이라며 “1주일 동안 활짝 펴야 하는데 차를 만들기 위해 2일 만에 톡 따서 연꽃에서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고 전한다. 스님이 연꽃을 좋아하게 된 것은 흙탕물 속에서도 청정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라고.

연꽃은 아름답게 피고 추하게 지는 여느 봄꽃과 달리 일주일가량을 핀 후 꽃을 탁 털어 보낸다. 스님은 비워 낼 줄 아는 게 아름답고도 강하다며 ‘버림의 미학’을 얘기한다.

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템플스테이에 와서 배우는 것은 자신의 소중함만이 아니다. 낯선 타인에 대한 감사함도 더불어 시작되는 자리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일정은 삼배(三拜). 두 사람이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면 남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삼배를 하며 존엄성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내 순서가 되면 나 역시 돌아가며 수십 명의 절을 받으니 비싼 절 값을 하는 셈. 꿈에도 생각 못할 참 특별한 경험이다.

참가자들은, “소중한 인연과 자연이 어우러지니 마음까지 평안해진다”, “난생 처음 연꽃과 같은 품격을 지닌 스님과 버섯 농장, 죽염 체험, 연꽃 차 시연 등 일생일대의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부처가 된 듯 삼배를 받으니 사람이 존귀하고 평등한 존재라고 깨달았다” 등등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 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털어놓는다. 사람의 존귀함, 인연의 소중함, 그리고 우리의 것을 지켜 내려는 이들의 숭고함이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는 오랫동안 마음의 등불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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