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태훈 칼럼 - 서로서로 감정을 나누세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드컵이라 전세계가 떠들썩하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다시 붉은 악마가 되어 축구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붉은 티셔츠에 붉은 뿔과 두건을 두르고 모두가 하나 되어 태극전사의 승전보에 같이 즐거워한다. 이렇게 서로가 한마음으로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어 감정을 공유하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슬픔에 대해서는 감정 표현이 인색하다. 아예 서로가 말하는 것을 꺼려하며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한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상대방의 눈치만 보게 된다. 한 예로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에서는 음주와 도박이 일상적인데 이러한 장례 문화는 슬픈 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는 우리네 풍토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보다 하룻밤을 떠들썩하게 같이 지내면서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를 다독여 주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성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집안에 슬픈 일이 생겼을 경우, 어린 아이들에게는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슬픔에 접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잘못될까 봐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인들 스스로도 그 슬픔에 대해 대처를 잘 못해 아이들을 추슬러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슬픔의 과정에 동참하지 않게 되면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슬픔에 동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픈 감정은 접하기 싫은 감정이므로 서로서로 피하고 싶어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슬픔 감정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항상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 우리의 자아(ego) 기능 중에서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처음에는 슬픈 감정에 압도되어 발휘가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자아 기능이 발휘되어 점차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슬픔이라면 받아들어야 한다. 단지 이러한 슬픔에 압도됐을 때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지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 알리고 그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많이 받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생긴 상황이나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슬픈 감정은 정화되고 수정되며 위로를 받고 치유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방치해 둔다면 슬픔의 감정은 그대로 고착되어 우울증으로 진행되기 쉽다. 이런 경우 우울증은 서서히 나타나면서 만성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나 본인조차 알아채기가 힘이 든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는 성인과 달리 우울증 증상이 모호하고, 있다 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므로 간과되기 쉽다. 

따라서 슬픈 일이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를 바란다. 또한 집안에 어린 아이가 있다면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세심하게 설명해 주어 슬픔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 김태훈 선생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 경기도 광주 정신보건센터장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외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사랑샘터 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진료중이다. 
www.wellmind.co.kr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