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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달동네의 추억, 그리고 노을이 아름다운 곳

  • Editor. 장태동
  • 입력 2022.01.04 10:10
  • 수정 2022.01.0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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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 옛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달동네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떨리는 문풍지 사이로 들오는 삭풍에 윗목의 걸레가 얼었다. 아랫목은 장판이 시커멓게 탈 정도로 뜨거웠지만 코가 시려 잠을 설쳤다.

공동우물과 빨래터는 겨울에도 마을 아줌마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물을 길어 나르고 찬물에 손이 벌게지도록 빨래를 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동상 걸린 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질 때까지 그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집집마다 엄마들이 나와 자식들 이름을 부르며 ‘밥 먹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겨울 달동네 골목에 울려퍼졌다. 그런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곳이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다. 가난했지만 따듯했던 시절의 추억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박물관에서 나와 해지는 풍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북성포구도 좋고 정서진도 좋겠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동인천역 4번 출구에서 600~700m 정도 되는 거리에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있다. 동인천역북광장 앞 교차로에서 솔빛로로 접어든다. 고갯마루까지 언덕길을 계속 올라간다. 박물관은 고갯마루 왼쪽에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고갯길이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산이었다. 만수산 또는 송림산이라 불렀다. 1906년 수도국이 생기고, 1908년 송림산 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했다. 그러면서 수도국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장에 물건 팔러 나가는 엄마를 배웅하는 건 막내를 업은 어린 큰딸이었다. 엄마와 딸은 손을 흔들며 웃으며 헤어진다. 동 트기 전 엄마와 딸을 비추는 건 꿈벅거리는 가로등 불빛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과 중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이 송림산 일대 송현동과 송림동으로 옮겨 살았고,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정착했다. 60, 70년대는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도 살게 됐다. 수도국산 산비탈 달동네 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당시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곳이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다.

옛 달동네 집들과 골목, 이발소, 연탄가게, 구멍가게, 공동화장실, 가난했지만 따듯했던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박물관이다. 허투루 볼 게 하나도 없는 게, 그런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박물관을 돌아보던 중 종이로 만든 인형들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옛날 달동네 뒷골목을 재현한 것
옛날 달동네 뒷골목을 재현한 것

이른 아침 장에 내다 팔 것들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집을 나서는 엄마를 배웅하는, 아직 어린 큰 딸의 등에는 막내 동생이 업혀있다. 엄마는 막내를 업은 큰 딸을 보고 웃고 어린 큰 딸은 엄마를 보고 웃으며 서로 손을 흔든다. 동도 트기 전 엄마와 딸을 비추는 건 꿈뻑거리는 전신주 가로등이었다.

달동네 방. 이정도 방에 벽시계까지 걸려있는 걸 보면 그래도 꽤 사는 집이었을 것이다.
달동네 방. 이정도 방에 벽시계까지 걸려있는 걸 보면 그래도 꽤 사는 집이었을 것이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주소: 인천 동구 솔빛로 51
운영시간: 09:00 - 18:00, 매주 월요일 휴뮤
입장료: 어른 1,000원 / 청소년, 군경 700원 / 13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노을빛 물드는 공장 굴뚝 연기
북성포구의 일몰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1km도 안 되는 거리에 북성포구가 있다. 북성포구 초입, 대한제분 싸이로의 거대한 건물과 그 앞 바다 갯골의 검은 뻘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 풍경을 좌우에 두고 더 깊이 포구 쪽으로 걷는다. 검은 뻘과 연신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 굴뚝, 어느 나라의 숲을 푸르게 물들였던 거대한 나무들이었을까? 거대한 원목이 산더미처럼 쌓인 야적장 풍경이 낯설다. 낯설어서 새롭다. 시간이 지나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뻘은 사라지고 물이 차오른다. 고깃배가 부두로 들어오면 파시가 열린다.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낯선 풍경은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낡은 풍경이 오히려 새롭다. 갯내음 섞인 눅진한 공기가 들숨을 따라 몸으로 들어와 퍼진다.

북성포구 일몰의 끝자락. 해는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마지막 빛이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북성포구 일몰의 끝자락. 해는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마지막 빛이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포구의 하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노을이 피어나도 공장의 굴뚝 연기는 멈추지 않는다. 노동의 하루가 노을 앞에서 아름답다. 누군가는 포구 술집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포구 앞에 서서 북성포구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는다.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도 하나 둘씩 떠날 무렵 노을이 지고 어둠이 바다에 내려앉는다. 북성포구의 하루가 그렇게 저문다.

●눈보라 치는 정서진에서 보낸 하루
정서진의 일몰


서울 광화문에서 서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닿는 땅의 끝이 정서진이다. 정서진을 찾은 날 눈이 왔다. 포슬포슬 내리는 눈이 아니었다. 거센 바람을 따라 사선을 그으며 몰아친다. 어떤 때는 수평으로 몰아치기도 하고, 바람이 솟구칠 때면 하늘로 날리기도 했다. 겨울 번개와 천둥은 낯설었다.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이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정서진
눈보라 휘몰아치는 정서진

정서진 공원을 돌아보기로 했는데, 포기해야만 했다. 경인항통합운영센터 23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서해갑문과 여객선터미널, 풍력발전기, 영종대교, 그리고 바다. 그 풍경을 흐릿하게 만드는 건 눈발이었다. 정서진의 하늘에 주둔한 먹구름은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위 카페로 올라갔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눈은 그치지 않았다. 가져간 시집을 읽는 사이 카페 식탁 전구의 주황빛이 밝아진다. 휘몰아치는 굵은 눈발과 커피와 시, 정서진의 시간이 고즈넉하다.

눈은 그치고 해가 떴다. 노을이 비친다.
눈은 그치고 해가 떴다. 노을이 비친다.

어느새 눈발이 잦아들고 먹구름이 물러갔다. 하늘이 열리고 해가 보였다. 영종대교 위에 뜬 해는 먹구름 속에서 이미 기울고 있었나보다. 카페 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에 노을이 퍼지기 시작했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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