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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영원으로 통하는 길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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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잃다

아시아 내륙을 가르는 실크로드 횡단은, 유목민의 기질을 가진 한 남자에게만 매력적인 여행은 아니다. 수평선 위로 춤추듯 부유하는 사막과 지구 계면을 연상시키는 화염산, 수천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침잠된 천산 천지를 관조하는 일은, ‘나’를 잊고, ‘자연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2005년 6월14일, 서울 출발-우루무치 도착

실크로드…잠을 못 이루다

상하이나 베이징으로의 여행이었다면 마음이 좀더 가벼웠을지 모른다. 유적지를 감상하거나 힙한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플래그 숍을 구경하며 중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잠재적 가치 따위를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부터 내 앞에 펼쳐질 곳은 아시아의 역사, 종교, 문화의 교착지인 거대한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로 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루무치’라는 도시를 거쳐야 했다. 몽골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의 우루무치는 천산천맥(天山山脈)으로 둘러싸인 고원으로 해발 900m에 위치한 신강성 위구르족(몽골리아 터어키스탄 부족) 자치구의 수도이다. 우루무치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시를 가로질러 하룻밤을 묵게 될 미려화 호텔에 짐을 풀고, 지친 몸을 뉘였다.  

6월15일, 우루무치 관광

현대화 물결에 길을 잃다
  

우루무치는 실크로드를 잇는 도시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곳이다. 비록 우리나라의 80년대를 연상케 하지만 어엿한 시가지가 형성돼 있고, 관광객들을 위해 다양한 관광 상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남산 목장.’ 우리나라로 치자면 제주도의 풍광과 비슷하지만 그 규모를 따지자면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남산 목장에서는 미끈하게 뻗은 근육을 자랑하는 몽고산 토종 말을 탈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신강성 박물관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될 관광지. 고대에 빚어진 도자기를 비롯한 유적들과 수천 년 동안 보존되어 온 미이라를 감상하면서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읽어 본다.

고작 두 곳을 경유했을 뿐인데도 어느 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우루무치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다는 발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 다시 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음 행선지인 돈황으로 떠났다.


6월16일, 명사산-월아천-막고굴

인생…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

오늘부터는 실크로드의 실체와 본격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
그 출발은 명사산(鳴沙山)에서 시작됐다. 명사산은 바람에 모래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돈황에서 7km쯤 떨어진 수십 미터 높이의 모래산이다. 끝이 없이 펼쳐진 금모래산과 금모래벌판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실 정도다. 이 산은 인간의 힘으로 걸어서 등반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낙타와 모래 썰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낙타의 느린 걸음을 따라 천천히 명사산 자락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신기루처럼 한 점 푸른 빛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달의 어금니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월아천(月牙泉)’이다. 가이드는 바람이 월아천 자락에서 명사산 산등성이를 향해 거슬러 불기 때문에 산 아래 월아천에는 모래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귀뜸해 주었다. 모래 사막을 지나 작은 뜰을 지나 몇 그루의 고목이 서 있고, 초승달처럼 어여쁜 호수가 찰랑거리고 있다.

가이드의 말처럼 호수 주변에는 모래 바람이 일지 않았다. 분명, 저 멀리 작은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자락은 모래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데 말이다. 모래 산을 정복하느라 일행은 온몸에 모래 먼지를 뒤집어썼고, 우리는 잠시 호텔로 돌아가 몸을 씻은 후 다음 행선지인 돈황의 막고굴로 향했다.

돈황은 당허강 하류 사막지대에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로 중국과 중앙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동서교역의 거점지였다. 물론 지금은 그 옛날 번창했다던 돈황 도시는 사라졌지만 한 가지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막고굴.’

막고굴은 서기 366년 한 승려가 산에 빛이 있음을 느끼고 그곳을 성지로 정한 뒤, 굴을 파기 시작해 형성된 것이다. 삼위산과 명사산이 좁은 골짜기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작은 오아시스들이 푸른 띠처럼 놓여 있고, 그 절벽 사이로 1,600m 길이로 막고굴이 형성돼 있다. 막고굴 안에는 그야말로 방대한 문화 유산이 보존돼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벽화다. 총 1,045폭의 벽화 중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당나라 때 유행한 서방정토변(西方淨土變)인데, 이는 극락을 나타낸 아름다운 회화다. 막고굴 벽화 앞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할 말을 잃게 마련이다. 거대한 모래성 안에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벽화는 세계의 그 어떤 문화 유산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랍다.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맑고 순화된 영혼의 집이자 미래를 향한 지고지순한 꿈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막고굴은 올해까지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내년부터는 문화재로 보호될 예정이란다. 그렇다고 막고굴을 영영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방대한 막고굴을 그대로 복원해낸 가짜(?) 박물관이 이미 개관했기 때문이다.  

 
6월17일, 트루판-화염산-고창고성

극락을 염원하는 마음
 

어제 새벽은 기차에서 눈을 붙였다. 유원역에서 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투르판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맞이하는 해돋이 풍경은 바닷가에서의 그것보다 장관이었다. 검은 지평선 위로 검은 불덩이가 솟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땅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6시간을 달려 도착한 트루판은 위그르어로 ‘파인 땅’을 뜻하며 해수면보다 280m가 낮은 분지로 섭씨 47.5도, 지표온도 섭씨 70도의 열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화염산(火焰山)이었다. 화염산은 투루판 분지 중북부에 위치한 해발 50m의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마치 불타는 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면 산 전체가 불에 이글이글 타고 있는 듯하다. 화염산의 그늘이 채 따라오지 않은 북쪽 강 절벽 기슭에는 큰 벌집을 연상시키는 구멍들이 보인다. 바로 천불동(千佛洞)이다. 6세기 고창왕국 때부터 9세기에 걸쳐 위그루족 왕가의 사원으로 건설된 석굴 촌락인 천불동에는 약 83개의 석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57개만 남아 있다. 극락으로 가고 싶은 염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석굴 안에도 역시 수많은 벽화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반면 트루판 남동쪽에 남아 있는 고창고성은 모두 풍화되고, 붉은 흙더미만 폐허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내리 쬐는 햇볕 아래서 관광객을 위한 노새 마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 마차를 타고 고창고성을 둘러볼라치면 어느 새 위그루족 아이들이 작은 손을 흔들며 물건을 팔아 달라고 뒤쫓아 온다. 그들은 고창왕조의 후예들로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 주고 광막한 폐허를 벗어났다.


6월18일, 카레스-포도밭-우루무치

환영과 환각 그리고 현실의 땅

이번 실크로드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마지막 날 돌아보게 된 카레스(지하 수로)다. 고대 중국인들이 지열 때문에 산 정상까지 물을 공급하기 힘들자 땅을 파고 그것을 연결해 지하 수로를 만든 것이다. 카레스는 땅굴처럼 크고 넓었다. 그곳에는 무릎 높이 정도의 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고, 물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찼다. 가로 세로로 치밀하게 연결돼 있는 지하 수로는 트루판에만도 300군데도 넘는다고 한다. 이 물을 끌어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

카레스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자 광장에는 재래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주요 상품은 지역 특산물인 다양한 색깔의 건포도. 건포도의 종류는 족히 10여 종이 넘었으며, 모양새와 맛도 조금씩 달랐다. 투루판의 포도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포도를 키우기 위해서 포도밭에 거미줄처럼 수로를 깔고 물을 댔을 정도로 벼농사보다도 더 중하게 여긴 농사였다. 투루판의 포도밭 단지는 어마어마하게 넓어 그 안에 들어서면 미아가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느지막이 모처럼 마지막 여정을 느끼며 야시장에 들러 식사를 한 후 서울 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전히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실크로드. 그 옛날 동, 서양의 유일한 문명의 통로였으며 환영과 환각이 둘러싸인 신비의 땅. 나는 그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신기루를 보았으며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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