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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챌린저 중국기행Ⅱ - 도전과 젊음 그 아름다운 이름을 위하여!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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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떠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넓고 넓은 중국 대륙으로 떠난 하나투어 투어챌린저 대원들. 그들은 소수민족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고 중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다. 이번 여행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 이유는 아름다운 중국의 산수와 독특한 소수민족 문화가 함께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11박12일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더욱 용감하게 만든 기발하고도 재미난 미션들.이번 호에서는 투어챌린저들에게 주어진 미션과 그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투어챌린저란?

‘투어챌린저’는 하나투어가 관광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여행을 통한 도전의식과 미래 여행 인재로서 진취적인 자세를 심어 주고자 기획한 장학 행사. ‘중국 배낭여행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된 30명의 원정대는 지난 7월5일~16일까지 11박12일 동안 하나투어가 후원한 투어챌린저 중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이들은 중국의 55개 민족 중 26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운남성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지양 고성, 웅장한 만년설산인 옥룡설산, 백족의 문화와 남조의 숨결이 살아 있는 따리와 남조풍정도, 자연이 빚은 신비 쿤밍의 석림, 운남 민족촌 등 대표적 관광지역을 방문했다. 남방불교와 중국 속 동남아의 모습이 있는 서상반나 지역에서 타이족의 주거지인 깐란바, 온천지역 진홍을 방문하면서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의 삶도 체험해 봤다. 중국 최고의 산수를 자랑하는 구이린과 양삭에서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체험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상하이에서 중국의 발전된 미래상을 그려 보며 중국 원정을 마무리했다. 

트래비는 젊은이들의 여행 문화를 선도하는 여행 기업의 새로운 시도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이들의 중국 문화 체험담을 지난 호에 이어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서상반나

‘마음을 비우고 그들과 눈을 맞추는 여행’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김지혜+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차승훈

우리들은 남방불교와 동남아 지역의 모습을 보여 주는 서상반나 지역에서 타이족의 주거지인 깐란바, 온천지역 진홍을 방문하면서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의 삶을 체험했다. 

따이족 마을, 깐란바의 추억 

버스를 타고 서상반나 지역에서 타이족의 주거지인 깐란바로 향했다. ‘서상반나’는 12개의 평지라는 의미로 운남성의 최남단, 미얀마와 라오스 경계에 있다.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면서 만든 분지에는 울창한 열대 우림의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산맥들은 서로 얽혀 있고 원시삼림은 중국이 아닌 태국 내지 남국을 연상시킨다. 깐란바로 들어가는 도로는 아직 잘 다져지지 않은 터라 심하게 덜컹거리는 통에 속이 메슥거렸지만 이국적인 정취와 그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쓰따오리(안녕하세요).” 

그들의 인사말로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막대풍선을 건네 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타이족 아이는 선뜻 풍선을 받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엄마가 웃으면서 받아 오라고 하자 그제야 쭈뼛쭈뼛 풍선을 받아든다. 어느 지역이든 아이들의 눈은 참 맑고 순박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집결지로 향하다가 우연히 거리 농구를 하는 타이족 학생들을 보았다. 그들에게 우리 챌린저들과 같이 3:3 농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고 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뜨거운 햇빛 아래 우리와 그들은 허물없이 어울렸다. 여자 일행들은 챌린저와 그들 모두를 큰소리로 응원했으며 즐거웠다.    

미션! ‘깐란바 마을에서 한국을 알려라!’

‘중국 투어챌린저’는 매 여행지의 일정마다 수행해야 할 몇 개의 로드 미션이 있었다. 서상반나의 미션은 바로 ‘깐란바 마을에서 한국을 알려라!’였는데, 타이족 마을인 깐란바 거리에서 현지 주민들을 초청해 한국을 알리는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가 준비한 공연은 부채춤. 이 거리 공연 미션을 위해서 인사동에서 부채를 사고 동영상을 통해 부채춤을 배워 팀원들끼리 수십 번을 연습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다. 부채춤의 백미인 ‘파도 타기’ 부분이 잘 안 되어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다행히 실제 공연에서는 맹연습한 결과, 성공적으로 완성되어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곡선미를 보여 줄 수 있어서 무척 뿌듯했다. 공연을 마치고 부채를 주민들에게 선물로 나눠 주었는데, 부채를 받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면서 빠진 이를 드러내어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채춤 외에도 꼭두각시 춤, ‘늴리리야’ 춤을 통해 공연장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마지막으로 강강술래를 하며 주민들과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함께 신명나게 어우러졌다. 쭈뼛쭈뼛 우리를 어색해했던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우리와 3:3 농구를 하던 학생들도 와서 구경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손을 잡아끌며 함께하자고 하자 못 이기는 척하며 웃으며 나오셨다.

뜨거운 햇빛에, 높은 습도에 주민들과 뛰면서 어울리니 정말이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우릴 가로막는 어떠한 벽도 없이 다른 나라의 소수민족인 그들과 지구촌에 사는 이웃으로서 함께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기에 기쁨과 충만함을 맛보았다. 내가 한국인으로 한국을 알리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서상반나에서 세상을 배우다

우리가 공연을 하기 전까지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또한 곳곳에 있는 동물들은 관광객들의 사진 도구로 이용되어 코끼리는 발에 피가 흐르고, 낙타는 늙어서 힘을 못 쓰고, 뱀의 몸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작은 강아지 풍선에 기뻐하던 꼬마 친구들의 미소와, 베푸는 것이 나눔으로 변하던 상황과 더불어 하루 종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누린 우리의 여행은 이곳 서상반나에서 활짝 꽃폈다.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다. 

문화와 자연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 서상반나는 다양한 만남이 공존하는 곳이다. 문화를 느낄 수 있고, 자연과 벗할 수 있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공간이다. ‘情(정)’은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내면의 협소한 지경을 넓힐 수 있게 해주고 겸손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해준 서상반나. 푸르디 푸른 싱싱한 나무처럼, 그 나무처럼 채우기 위해 비울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지게 해준 하나투어 챌린저! 

구이린-양삭

‘평생 잊지 못할 구이린산수갑천하, 양삭산수갑계림’
동아대 관광경영학과 김성진+동국대 관광경영학과 이충현



여행은 항상 나를 흥분되고 설레게 한다. 초등학교 소풍 전날 내일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에서부터 수학여행의 설렘까지…. 이번 여행은 난생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설레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 첫 해외여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33명의 가족을 만들고 돌아온, 아주 특별하고 소중했던 경험이었다.

덜컹 덜컹 기차에 몸을 싣고

19시간짜리 기차 여행을 하기 위하여 쿤밍 역에 도착하였다. 쿤밍 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하여 새로 건설한 기차역이라서 상당히 크고 깨끗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중국 원정 중에 가장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 기차 여행이었다. 중국인도 평생 한 번 탈까말까 하다는 장거리 기차 여행…. 점점 심장이 콩닥콩닥거리며 설레어 왔다. 

기차 안에서 만난 현지인들. 그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에게 우리, 나아가 한국을 알리기로 했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이들은 영어를 써 주었고,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친구의 도움으로 현지인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중국인 친구와는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등 한류 현상과 나아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등 조금은 시사적인 면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앉아 있던 꼬마 아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안기고, 장난도 치며 우리를 따르게 되었다. 비록, 언어와 민족은 다를지라도 함께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과 내가 먼저 다가가는 용기만 있다면 그러한 것들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미션! ‘현지에서 한국 물품을 팔아라’




버스를 타고 다시 양삭 시내에 도착하니 밤 10시. 오늘의 미션은 원정대 출발 전 한국에서 미리 준비했던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1만원 미만의 상품’을 현지에서 파는 것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서 상품을 팔기는 막막하여 조별로 각자 다른 장소에서 상품을 팔기로 하였다. 우리 조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는 넓은 공터에 터를 잡고 개별적으로 준비한 물품들, 소주, 립스틱, 화장품, 지갑, 부채, 볼펜 등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기 시작하였다. 먼저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뭔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조의 구호, 주제가와 갖가지 한국 가요를 부르고 댄스를 추면서 고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뜻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우리가 신기한지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가 누구이며 왜 이런 거리 공연을 하는지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순간 우리는 스탭에게 ‘TOUR CHALLENGER 2006 HANATOUR KOREA(투어챌린저 2006 하나투어 코리아)’라고 적힌 현수막을 빌려서 흔들며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씩 상품을 보기 시작했다. 결국 1시간도 채 안 돼서 우리는 미션을 완수했다. 총매출액은 326위엔(약 4만원).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일 수 있지만 1시간 동안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바디 랭귀지’로만 대화하며 우수한 한국 상품도 팔고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만으로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치 있고 값진 돈이었다. 

미션을 마친 대원들이 하나둘씩 양삭의 길 중심에 모여들었다. 우리 모두 길 중앙에 뭉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자, 그곳의 현지인들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의 미션을 끝낼 수는 없었다. 누가 먼저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모두들 꼭짓점 춤을 대형을 갖춰서 추기 시작했다. 양삭의 찜통 같은 더위도 공연을 하는 우리들이나, 우리를 바라보며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외국인들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중국 여행의 진미, 구이린

자유여행 동안에는 우리 조는 변화하는 중국을 느껴 보고 싶었다. 물론 상하이 여행도 기대되지만 세계적인 도시인 상하이보다는 중국의 작은 도시인 구이린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지 음식점에서 식사도 해보고 백화점에 들러서 쇼핑도 하고 마을 체육시설을 찾아서 그곳 사람들이 하는 운동도 구경하고, 재래시장 등지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길거리의 외제차들을 보니 중국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현재도 세계적인 강국이지만 아직은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렇지, 곧 익숙해지고 나라가 계속 발전을 한다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변화하는 중국을 앞지르는 길은 인재양성뿐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짧지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구이린 여행은 막을 내렸다. 비록 일정은 짧았지만 이곳에서 나는 변화와 보존, 자연과 인공이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공존을 이루어 내는 아름다운 현장을 만끽하였다. 구이린은 중국 여행에서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중국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구이린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해 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나의 중국 여행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구이린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상하이

‘함께이기에 더욱 행복했던 순간들’
세종대 호텔관광학과 최지혜+순천향대 관광경영학과 장준영

상하이. 동방의 꽃이라고 불리는 곳. 중국에서 덩샤오핑 이후로 개혁에 박차를 가해서 베이징과 더불어 끊임없는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도시. 청나라 때 1, 2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비롯한 도시가 할양되었고 그때 상하이 또한 강제로 개항되어 비교적 빨리 개화가 시작되었다. 상하이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깊은 도시 중 하나이다. 바로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진 것으로 유명한 홍커우 공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바로 이곳 상하이에 있기 때문이다.

투어챌린저, 상하이에 서다

아침 햇살을 따라 잘 닦여진 도로를 타고 고층빌딩숲을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우와~ 우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해안에 근접하여 발전하고 있는 상하이는 우리가 여태껏 여행했던 서부 지방의 낙후된 도시들과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똑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창 빠져 있을 무렵, 우리를 태운 버스는 와이탄에 도착했다. 강을 따라 수많은 배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와이탄에 서서 상하이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푸동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 동방명주를 위시해서 고층빌딩들로 이루어진 푸동 지구의 그 규모와 웅장함은 마치, 현재 유일무이의 초강대국 미국을 위협하며 날로 성장하는 중국의 앞날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중국의 심장부, 상하이의 와이탄을 무대로 우리 투어챌린저에게 마지막 미션이 전해졌다. 

 ‘동방명주, 진마오 빌딩 보기’

우리의 첫 번째 미션은 ‘배 타고 푸동 지구로 들어가 동방명주, 진마오 빌딩 보기’. 우선 푸동 지구에 도착해 건축예술작품의 한 장면이 연출된 듯한 진마오 빌딩 앞에 섰다. 88층, 약 420m로 이뤄져 있다고 하는데 순간, 석회암 동굴에서 불쑥 솟아난 듯한 느낌이랄까? 우리는 54층의 하얏트 프론트에 가야 한다. 가서 ‘찰칵찰칵’, 사실 호텔관광학도로서 뭔가 느낌이 새로웠다. 그냥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그럽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다시 힘을 내어 동방명주를 향해 돌진했다. 동방명주는 울긋불긋 그들의 부푼 꿈이 터질 듯 솟아 있었다. 1층에서 우연히 ‘대~한~민~국!’을 발견했다. 상하이의 동방명주 1층에 걸린 붉은 악마들, 서울 시청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우리는 순간 뿌듯한 마음에 탄성을 질렀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거대 도시 상하이. 지금 내가 그 위에 섰다.

미션! ‘난징루 동상 사진 찍고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사진 찍기’ 

우리는 동방명주를 뒤로하고 다음 미션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난징루로 향했다.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카드를 넣고 빼는 방식이고 출발할 때 손잡이를 꽉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 유념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철이 출발할 때 갑자기 속도가 확 빨라지기 때문에 중심을 잃기가 십상이다. 

난징루는 한국의 명동 같은 쇼핑의 거리로 유행의 흐름을 선도하는 분위기였다. 난징루 입구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난징루 거리를 따라 움직이는 귀여운 전차를 타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신선놀음 하듯, 거리 구경을 하며 인민공원에 도착했다.

미션! ‘상하이 도시계획관 방문, 임시정부 방문, 신천지서 외국인 5명 명함 받기’

바로 앞에 우리가 받은 미션 종이에서 이미 본 상하이 도시계획관이 보였다. 네모 반듯한 건물 위에 다이아몬드형의 파라솔 같은 것이 네 귀퉁이를 둘러싸고 건물은 햇빛 아래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예전에 혼자 상하이에 왔을 때는 가난한 경비에 엄두도 못 내던 상하이 계획관을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모두 40원에 티켓을 끊고, 힘차게 통과!

직원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받으며 입장하자마자 상하이 랜드마크 푸동 지구의 모형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각 층을 구경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보다가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러 홍보다운 홍보조차 하고 있지 않은데 하물며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격인 상하이가 이 정도로 홍보에 열심이라니. 

우리는 상하이 도시개발센터를 나와 지하철을 이용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향했다. 신천지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임시정부청사에 다다를 수 있는데 정말 생각보다 너무 허름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임시정부청사에 들어가서 3분 남짓 하는 영상물을 보고 독립을 위해서 노력해 주신 투사들의 발자취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임시정부청사를 관람했다. 감사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동시에 가슴에 품고 임시정부청사를 나와 신천지로 향했다. 

임시정부청사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신천지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미션은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로부터 5장의 명함을 받는 것이었다. 그때 등장한 우리의 히어로, 태호 오빠. 무작정 앉아 있는 외국인 테이블로 가서, “우리가 이러이러한 상황에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라며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발휘하였고, 우리 조원들은 한국을 알리는(?) 꼭짓점 댄스를 추었다. 주위 사람들이 신기한 듯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거리낌도, 부끄러움도 없다. 그것은 이국 땅에서 춤을 추는 것이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 10여 일간의 여정을 통해 우정이란 강한 끈으로 연결된 ‘우리’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12일

내 생애 가장 짧았던 12일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아니다. 이건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새로운 우리들의 인연을 위한 새로운 시작.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얻는 것은 그저 여행에 대한 감상, 느낌, 여행지에 대한 정보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틀린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함께 했던 33인의 동반자.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힘들었어도 마냥 신나고 즐거웠다.

시간은 비록 계속 흐르겠지만 그날, 그곳, 그 순간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은 영원히 가슴 한구석에 정지된 화면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감동과 추억처럼 우리가 소중히 맺은 인연 오래오래 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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