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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츠모토 * 다카야마 * 가나자와 - 그곳에 서면 가만히 느껴 볼지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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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2,000m 고원에서 세상으로 삼투하다

일본의 중앙 ‘주부(중부)지방’은 ‘산의 나라’ 일본의 면모를 남김없이 과시하는 곳.
‘일본 알프스(Japan Alps)’라는 거대한 산맥이 불뚝거리며 산악미의 절정을 이룬다.
나가노현 마츠모토에서 기후현 다카야마, 이시카와현 가나자와로 이어지는 여행길은 일본 알프스의 매력을 관통한다.
더해서 산악지대의 고립성만이 간직할 수 있는 고풍스런 역사유적과 전통문화가 고스란하다.

360도 大파노라마의 벅찬 감동


ⓒ트래비

1.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에서 바라본 마츠모토시 야경
2. 2,000m 고원에서 겨울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객들
3. 설산과 야생화가 더 없는 조화를 이루는 봄 풍경
4. 신호타카 로프웨이는 '일본 알프스' 산악미의 진경을 보여준다.


“오르고 나면 별안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한동안은 세상의 천정이 열린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일본 나가노현 ‘우츠쿠시가하라 고원’.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면적 600ha의 광활한 규모로 펼쳐진, 일본에서 제일 넓고 가장 높은 고원 용암대지다. 이른바 ‘일본 알프스 전망대’로 불린다. 2,000m가 넘는 그 높이와 동서 약 5km, 남북 약 8km에 이르는 그 넓이에서는 물론, 일본 산악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산 좋아하고 자연 회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가히 이상향이라 할 만하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춘하추동 사계절 내내, 조석주야 불문하고 그 유명한 ‘360도 대 파노라마’의 웅대한 향연이 항상(날씨만 좋다면) 펼쳐진다. 동쪽과 북쪽으로는 일본 최고봉(3,776m)인 후지산을 비롯해 ‘야스카다케 연봉’ 등 고봉준령들이 장엄한 자태로 늘어서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일본의 ‘북 알프스’ ‘남 알프스’ ‘중앙 알프스’가 어깨동무로 맞이한다. 높이 2km쯤 되는 다리에, 면적 180만평쯤 되는 거대한 테이블 주위를 3,000m를 넘나드는 높직높직한 산마루와 봉우리들이 커튼처럼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대충 셈을 해도 3,000m가 넘는 봉우리와 산들이 22개에 이르고, 2,000m 이상은 무려 64개에 이른다. 백두산(2,750m)과 한라산(1,950m)의 높이를 감안하면 가히 하늘을 향한 끝없는 키 겨루기다. 일본의 ‘베스트 10’ 산들을 모두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한 걸음 떨어져 조용히 사색하는 관조의 미가 두드러진 곳이다. 

어디 조망의 매력뿐이겠는가. 봄이면 200종이 넘는 각종 희귀한 야생화들로 고원 초원은 온통 화사하고, 여름이면 앙증맞은 얼룩 젖소들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고원 목장이 상쾌하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의 화려함에 눈부시고, 겨울에는 말 없는 설산과 기기묘묘한 눈꽃에 눈 시리다. 새벽녘 해돋이는 온화하기 이를 데 없고 해질녘 해넘이는 차라리 장렬하다. 

닿을 수 없는 세상은 속절없고

산을 좋아했던 일본의 한 시인은 “세상의 천정이 열린 듯하다”며 이곳의 절경을 절찬했다. 그러나 호우 앞에서 세상의 천정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고원대지를 애애하게 뒤덮은 안개 뭉치는 완강하고 드셀 뿐이어서 시선은 채 10m도 날지 못하고 불투명의 허공 속에 고꾸라졌다. 기신기신 안개를 뚫고 전해 왔던 목장의 워낭 소리마저 없었다면 그 공간은 백색적막 자체였다. 그 앞은 하염없이 막막했다. 안개 저 너머에 있을 세상에 닿을 수 없었고, 닿을 수 없는 세상은 여전히 파악불능의 존재였기에. 

세상을 가려 버린 비구름과 안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고원 최고봉(2,034m) 목 좋은 곳에 기세 좋게 가부좌를 튼 ‘오우가토 호텔’ 여주인장(오카미)은 천정이 열린 세상의 모습을 입심 좋게 자랑했다. 하얀 스크린 위로 시간, 계절, 방향을 초월한 세상의 진경이 끊임없이 채색됐고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호위하듯 고원을 에두른 수많은 고봉준령들은 자진모리에서 진양조, 휘모리를 질서 없이 넘나드는 여주인장의 재담에 맞추려는 듯, 걸음을 재촉하다가도 느릿느릿 걷고, 돌연 위로 급격히 내빼다가 힘없이 주저앉기를 거듭하며 360도 대 파노라마의 변화무쌍한 곡선을 그려냈다. 구름 위에서 덩그러니 춤추는가 하면 붉은 태양을 내밀며 다소곳하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촬영’ 기능을 꼭 활용해야지 싶다. 

호접몽인 듯 몽환의 한바탕 잔치가 끝나자 세상은 다시 탁하고 아득했다. 백색 공간 속을 갈피없이 유영하는 저 멀리 까만 새 한 마리. 검은 흔적이 사라질 듯 말 듯 아슬아슬 명멸하다 그예 가뭇없이 사라졌다. 탁함 너머 세상으로 삼투한 듯이.

산중 노천탕의 몽롱함에 취하리니


ⓒ트래비

1. 우윳빛 온천수와 톡 쏘는 냄새가 특징인 시라오네 온천의 노천탕
2. 시라오네 온천 지역에 들어선 산중 온천 호텔들
3. 시라오네 온천에는 공공 노천탕이 마련돼 있다.


이 여행길은 높이에서 비롯된 산악미가 고갱이다. 일본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마츠모토공항), 초등학교(미나미마키 초등학교), 현청(나가노현청) 및 시청(치노시) 등이 이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높이를 실감할 수 있을 터.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이 갖는 차분한 관조의 미, 일본 알프스에 깃들여진 웅장함, 여기에 수많은 고원 호수와 계곡들이 호젓한 미소로 이곳의 산악미를 완성한다. ‘가미코지’가 선두다. 나무와 돌과 하늘과 구름은 그대로 호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또 하나의 대자연을 만들어낸다. 바람 살랑대 물결 일렁이면 복제의 세상은 실제의 세상을 초월하는 신비감으로 춤추며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정도라고. 5월~11월까지만 개방되는데 이 기간 동안 무려 200만명이 찾을 정도다.
웅장함과 호젓함을 관조하고 싶다면 ‘신호타카 로프웨이’에 오르라. 로프웨이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거듭하는 북알프스 산들의 절경도 절경이지만 로프웨이 정상에 있는 ‘센고코엔치’ 정원 등을 탐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악지대에 온천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거꾸로 ‘온천왕국’이라 불릴 만큼 온천수도 넘쳐난다. 유명 온천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시라호네 온천’은 그 색깔과 냄새가 독특해 대표적인 산악 온천지역으로 꼽히는 곳. ‘하얀 뼈 온천’이라는 뜻처럼 온천수가 진한 우윳빛을 띠고 있고 톡 쏘는 냄새가 특징이다. 원래 이름은 ‘시라부네 온천’. 20세기 초 일본의 한 저명작가가 이곳 온천수에 나뭇가지를 띄웠는데 곧 하얀 뼈처럼 변했다고 해서 ‘시라호네’로 더 유명해지게 됐다고. 위장병과 피부에 특히 효과가 높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소주에 온천수를 타서 먹기도 하고(온센 미즈와리), 온천수로 죽을 만들기도 한다.

‘온센 미즈와리’의 몽롱함은 날 선 신경을 달랜다. 산중 깊숙한 노천탕의 후끈한 열기는 세파에 싸늘해진 몸을 데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곳 산악미의 진경일 수도 있다.

+ 옷차림     해발고도 약 2,000m인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은 한여름이라고 하더라도 도심지역보다 온도가 낮아 긴 옷이 필요할 때도 많다.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대략 1도씩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

+ 오우가토 호텔     우츠쿠시가하라 고원 최고봉(2,034m)인 오우가토 봉우리에 있는 유일한 호텔로 일본 알프스의 산악미를 감상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객실 45실 규모다. 전망노천탕과 연회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아침 고원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도 제공한다. 마츠모토역에서 우츠쿠시가하라 고원행 버스(4, 9번선)를 타면 목장 입구 산장까지 도달한다. 목장에서부터는 호텔 투숙객들만 출입할 수 있으며 호텔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시간~1시간30분 소요.

+ 일본 알프스     일본 주부지방의 히다산맥, 기소산맥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이들 지역은 개별 지역명보다 일본 알프스 지역으로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위치에 따라서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로 구분되며, 영국의 한 엔지니어가 알프스와 닮았다 해서 최초로 일본 알프스라고 부른 뒤 일본 근대 등산의 개척자로 알려진 W.웨스턴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 신호타카 로프웨이     신호타카 온천(해발고도 1,117m)과 나베다이라 고원(1,305m)을 잇는 573m 길이의 제1 구간과 여기에서 다시 니시호타카(2,156m)까지 2,598m 구간을 연결하는 두 번째 로프웨이로 구성된 움직이는 산악 전망대다. 탑승 시간은 제1 로프웨이, 제2 로프웨이 각각 4분, 7분. 요금은 각각 성인 편도 200엔, 1,350엔. 제1 로프웨이와 제2 로프웨이가 만나는 ‘나베다이라 고원’ 내에 레스토랑, 베이커리, 커피숍 등이 있다. 마츠모토나 다카야마시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달리면 ‘히라유’에 닿으며, 여기에서 신호타카까지는 다시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고립이 낳은 흙담빛 순수 속으로 

고립의 뒷면은 순수다.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했던 산악지대의 고립성은
이제 강한 흡인력을 지닌 관광 매력의 원천이 됐다.
외부의 갖은 세파에서 벗어난 순수성 때문. 그 순수성은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옛 건물들과 역사유적, 전통문화에 오롯이 물들어 있다.

옛 성에는 400년 역사가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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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겐로쿠엔
3. 가나자와 무사마을 입구 
4. 수백년 역사를 지닌 히가시 치야가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기모노 차림의 여성에게서 옛 풍류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츠모토, 다카야마, 가나자와 세 도시의 공통점은 사무라이 지도자들의 성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 권력투쟁과 욕망의 결정체인 그곳에도 순수성이 살아 있다. 마츠모토 성이 대표적. 일본의 수많은 성들은 에도시대에서 메이지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무라이들의 몰락, 구시대 유물에 대한 경시풍조와 함께 대부분 파괴되거나 방치돼 왔다. 하지만 마츠모토성은 특별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보존 노력이 보태진 덕택에 400여 년 전 건립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히메지성, 히코네성, 이누야마성과 함께 일본에 4개뿐인 국보급 성인 이유다. 역사적, 건축학적 관점에서는 물론 주위의 경관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마츠모토성의 빼어난 자태는 400여 년의 풍파를 견뎌 온 인고의 산물이다. 

가나자와에도 가나자와성 공원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성보다는 성 건너편에 딸린 ‘겐로쿠엔’ 정원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 겐로쿠엔은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다. 가나자와성에 속한 외곽 정원으로 들어선 겐로쿠엔은 1676년쯤에 본격적인 조성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총면적 11만4,000여 평방미터의 대규모이지만 정원 내를 걷다 보면 일본식 아기자기한 정원미를 짐작할 수 있다. 가나자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조성돼 있으면서도 물이 풍부한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겐로쿠엔이라는 이름도 물(수천), 조망, 광대함 등 6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입장료 성인 3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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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츠모토성.
2. 만츠모토 된장 공장
3. 다카야마의 옛날거리

세계가 인정한 고색창연한 옛 마을

일반 서민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고풍스런 옛 마을과 옛 거리로 향할 일. ‘시라카와고’는 일본이 자랑하고 세계가 인정한 옛 서민들의 마을이다. ‘작은 쿄토’ 다카야마를 고색창연하게 물들이는 것은 흙담빛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합장식(갓쇼즈쿠리)’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에도시대의 옛 민가 113채가 밀집해 있다. 합장식 건축양식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합각(ㅅ자 각도)으로 엇대어 짖는 기법. 산간 지역의 엄청난 눈이 지붕 위에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수백 년 세월의 켜가 쌓인 그곳에 여전히 사람들이 산다. 지붕의 이엉을 다시 얹는 장관도 보여 준다. 흘러간 시간이 아닌 흐르는 시간이요, 박제된 과거가 아닌 생동하는 현실이다.

생동하는 시간은 다카야마의 ‘오래된 거리’와 가나자와의 ‘히가시 차야가이(찻집거리)’에도 유유하다. 200년 안팎의 세월이 풍기는 깊고 그윽함이 압권이다. 이름은 찻집거리지만 실제로는 술을 파는 고급 유흥가였던 히가시 차야가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186년 역사의 찻집이 있을 정도로 고즈넉함이 물씬하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기모노 차림의 여성에게서 과거의 분위기를 엿보기는 어렵지 않다. 하루해가 뉘엿하면 기모노 차림으로 종종걸음 쳤을 게이샤들, 그네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격자무늬 창틀에 아른거리고, 얼근한 취객들의 흥을 돋웠을 ‘샤미센’ 선율도 귓가에 맴도는 듯해 한참이나 골목골목을 누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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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특한 건축양식의 시라카와고 민가
2. 일본식 '가이세키'음식
3. 21세기 미술관의 '물지붕' 작품.

미래로 향하는 신선한 반전

옛 분위기 물씬한 옛것들의 자취와 전통문화는 어디에건 흥건하다. 옛 무사들의 집과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무사마을’처럼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담스런 옛 마을과 오래된 거리들이 부지기수다. 치우침 혹은 이미지 편향에 대한 의구심이 싹튼 것은 당연지사.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바로 그런 의구심을 바탕으로 들어선 현대 미술관이다. 

2004년에 개관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옛것의 반대편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추다. 전통문화에 현대예술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자는 의미로 건립됐다. 대학과 현청 등의 교외 이전으로 줄어든 상주 인구를 다시 끌어들이자는 목적도 한몫 했다. 일본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 설치미술, 조각 등 현대예술품들이 빼곡하다. 현대예술 애호가라면 하루라도 모자랄 지경. 유리벽으로 된 원형 미술관의 주변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장소로 자리잡았다. 

현대 예술작품의 초현실성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과거와 전통문화의 여정을 밟아 온 여행객들에게는 신선한 반전이요 전환점이다. 자연과 전통의 튼실한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균형의 지향성 때문. 이 여행길이 따분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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