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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영남 - 당당한 그녀가 아름답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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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버자이너 모놀로그’,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보지의 독백’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금기시된 이 단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무대 위에 홀로 선 그녀는 마치 토크쇼 진행자처럼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때로 70대 할머니가 되어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오해’를 토로한다. 그런가 하면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에 울부짖다가 그 자신이 여성의 성기 그 자체가 되어 ‘여성의 몸과 성(性)’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과 편견들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유쾌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만 않은 우리 시대 ‘여성 성(性)’에 대한 솔직하고도 의미 가득한 독백, 바로 배우 장영남이 들려주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다.

매일 첫 공연 같은 마음으로

미국 극작가인 이브 엔슬러(Eve Ensler)의 원작이 바탕인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01년 국내 무대에 초연된 이래, 벌써 수년째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김지숙을 비롯해 이경미, 서주희, 예지원에 이어 현재 장영남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그녀만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선보이고 있다. 관객 반응이 좋아 애초 12일로 예정되어 있던 날짜를 훌쩍 넘겨 11월26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간다. 

“관객들이 사랑해 준 덕분에 연장 공연까지 올리게 되어 기분은 좋죠. 장기 공연에 따른 부담감이요? 무엇보다 체력 관리에 힘쓰고 있답니다. 오래 공연하다 보면 때때로 긴장감을 놓치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매일 첫 공연이라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어요.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도 어제, 오늘 모두 다르기 때문에 늘 다른 무대에 서는 것 같은 마음이죠.” 3개월간, 그것도 혼자 무대를 이끌어 가야 하는 모노드라마가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조근조근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답하는 그녀에게서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강인한 면모가 흘깃 엿보인다. 

앳된 외모이지만 그녀 이름 아래 붙은 필라모그라피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2001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과 2002년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연기력이 <버자이너 모놀로그> 속에서 한층 더 물오른 듯하다. “예전에 모노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거든요. 모노드라마는 나이가 든 후에 해야 한다는 그런 식의 편견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오히려 젊을 때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또 다른 경험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얼마간 모험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자신을 좀더 강인하게 단련시킨 것 같아요. 다른 이들과의 호흡이 중요한 것이 연극 무대인데, 모노드라마는 그 큰 호흡을 혼자 다 감내해야 하거든요. 무대에 오르는 자신감과 자신을 깊게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트래비

작품 속 그녀, 작품 밖 그녀

“아무리 연기라지만 금기시된 단어를 매번 입에 올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가장 궁금하고도, 또 가장 난감해할 듯한 질문을 막바로 던져 보았다. “쉽지는 않았죠.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친근하고 편안한 걸요. 사실 그게 절대 부끄러운 단어가 아니거든요. 머리, 팔, 다리와 같이 우리 몸의 신체 일부를 부르는 건데 점점 금기시되고 비속어화 되는 게 안타까워요.” 극 속에서 그녀는 단어 자체를 터부시하는 사회 인식 자체가 ‘여성 성(性)’에 대한 폭력임을 여러 상황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작품을 하면서 자신 또한 많이 변화했다는 그녀, “아직까지 터부시 되고 있는 여성 몸에 대한 비하와 왜곡된 인식들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죠. 내가 여자라는 것과 인간의 모태가 되는 여성의 ‘자궁’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또 다른 깨우침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무대 밖에 서 있는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고도 반짝인다.

여행이란 ‘마음을 비우는 것’

연장 공연까지 모두 마친 후, 그녀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물론, 늘 그러하듯이 ‘계획’에만 그칠 것을 우려하면서 말이다. “여행이요, 너무 좋아하죠. 이번 작품이 끝난 뒤에는 꼭 어디로든 여행을 가려고 벼르고 있어요. 지방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가봐야죠”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그녀. 그러나 못 가게 되어도 할 수 없다는 듯 낙천적인 웃음이 조금 불안해 보이기는 한다. 벌써 7~8년도 더 된 일이지만 꽤 긴 시간을 혼자 방황하며 돌아다녔던 것이 아마 그녀에겐 마지막 여행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했다. 

“혼자 경포대를 거닐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원래 겁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그땐 혼자 다녀도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그때 그 여행이 제 인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 후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요. 그래도 여행이란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여행이란 ‘마음을 비우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워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요.”

아직 제주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그녀는 네팔이나 인도의 오지 여행지들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반짝반짝 눈을 빛낸다. 혹시나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대뜸 ‘언니’를 꼽는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김성주 아나우서 이야기가 나옴과 동시에 갑작스레 수다스러워진 그녀. “김성주 아나운서가 제 이상형이거든요.”  하루 바삐 포근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살짝 내비친다. 김성주 아나운서같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을 찾고 있나 보다. 

내년에는 꼭 좋은 사람과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기를. 그리고 그녀의 소망처럼 긴 호흡을 가진 깊이 있는 배우로 우리들 기억 속에 오래오래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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