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③ 네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네팔 ③ 네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 트래비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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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400m의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카트만두 시내 어디에서나 익숙한 광경은 매캐한 매연과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콩나물 시루처럼 승객이 꽉 찬 크기가 제각각인 버스와 거리 곳곳에서 난장을 벌이는 노점 상인들, 서로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소와 이 복잡한 도시의 풍경에 무덤덤해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히말라야, 치트완, 네팔 사람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에 감복했다면 이 정신 산만하고 복잡하기만한 카트만두에 들어선 순간 숨이 턱턱 막히며 ‘탈출’부터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카트만두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 보자. 이 도시에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네팔의 진짜 문화, 철학, 생과 사의 공존, 활기찬 사람, 다양한 재미,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흥미로운 발자취가 가득하다.




ⓒ트래비

1. 파슈파티나트 사원의 화장터. 적나라한 화장의 의식을 지켜보며 육신과 생의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2. 네팔의 큰 명절인 자트라를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가득 메운 인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9개 행성의 움직임에 따라 연월일시를 정했다는 네팔력에 따라 파슈파티나트를 방문했던 11월19일은 정말이지 운 좋게도 1년에 한 번 있다는 자뜨라(Jatra). 이날이면 각 사원과 신전에는 죽은 자를 기리고 산 자의 행복을 비는 네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의 입구와 통로는 한두 걸음 떼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명절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는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사원에 몰려든 여자들의 원색적인 사리(Sari) 구경만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인파에 휩쓸려 보게 된 이색적인 광경. 강 건너편의 장작 위에 검게 ‘재’가 되어 가고 있는 그 ‘무언가’. 힌두교의 최고 신인 시바를 섬기는 파슈파티나트는 동시에 네팔 사람들의 화장터이기도 하다. 화장의 적나라한 광경을 볼 수 있는 모든 장소는 네팔 사람들과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메워졌다. 

마침 새로운 시신 한 구가 엄숙히 화장대 가까이로 입장하고 있었다. 가만히 집중해서 ‘화장’의 의식을 지켜본다. 망자(亡者)의 아내일 것 같은 이의 처연한 흐느낌 소리가 강 건너편까지 서글픈 파동을 일으키며 가슴에 부딪혀 온다. 금빛 천에 싸여 자신의 몸을 활활 태울 장작의 주위를 빙빙 세 바퀴 돌려지는 망자의 육신. 반듯하게 눕힌 그를 칭칭 휘감고 있던 산자들이 바치는 꽃과 금빛 천이 성스러운 버그머티(Bagmati) 강으로 던져진다. 몸만을 가린 망자의 육신은 금방이라도 눈을 부비고 일어날 것처럼 생생하다. 애도의 표현으로 남겨진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몸에 붉은 티카(Tika)를 정성스럽게 바르고 뿌린다. 그런가 하면 망자의 두 발 끝에 자신의 이마를 맞닿게 한다. 영결 의식이 끝나면 장작과 지푸라기를 쌓아 뜨거운 불덩어리를 시신 속에 넣는다. 죽음 앞에 숭고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아직도 들려오는 처량한 곡소리, 살과 나무와 지푸라기가 뒤섞여 타는 회색 연기에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이의 죽음인데도 목이 멘다. 그렇게 2~4시간 정도 태워진 망자의 육신은 재가 되어 버그머티 강으로 흘려 보내진다. 

인도에 갠지스 강이 있다면 네팔에는 갠지스 강의 지류인 이 성스러운 강 버그머티가 있다. 한 쪽에서는 시신의 잿더미가 뿌려지고 또 한쪽에서는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생(生)과 사(死)가 하나 되어 흐르는 강이라는 말을 여실히 표현해 주는 장면일 테다. 사원에서 돌아오는 길, 한 기념품 상점 앞에 자리를 잡고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을 정성스럽게 만져 주는 아낙네의 모습에 ‘죽음’과 ‘탄생’의 절묘한 엉킴과 혼돈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트래비

1. 파슈파티나트 사원에서 나오며 만난 아기. 가장 생생한 죽음의 모습을 보고 나온 여행자들은 이 갓난 아기를 바라보며 각기 어떤 생각을 했을까. 
2. 사원을 가득 메운 인파

 




ⓒ트래비

1. 보다나트에서 한 승려가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다.
2.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도 시바신이 변신한 거라 믿는 마을 주민들은 이 나무에도 극진히 기도를 올리고 의식을 치른다.


카트만두 중심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에는 살아 있는 여신이 살고 있는 쿠마리 사원이 있다(네팔 말로 쿠마리는 ‘살아 있는 여신’이라는 뜻). 

옛날 옛적 카트만두 왕국에는 탈레주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신이 인간의 모습을 빌어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녀를 극진히 모시던 왕이 그녀를 범하려 하자 이에 분노한 여신은 끝내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던 국왕에게 여신은 자신의 분신을 두어 극진히 섬기라 명령했고 이때부터 카트만두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뽑아 여신으로 섬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쿠마리는 대개 기초적인 분별력이 생기는 5~6세 여아 중에서 선발한다. 기본적으로 네왈리의 카스트에서 선발하며 성도 ‘석가모니’를 의미하는 ‘샤카’의 씨족에서만 선택한다. 경전에는 쿠마리가 되는 소녀의 몸은 보리수와 같고 허벅지는 사슴과 같고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한다는 등 엄격한 외모에 대한 조건도 존재한다. 또 쿠마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두컴컴한 골방에 각종 가축의 잘린 머리와 함께 하루 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 이 하루 동안 두려움에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여신으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것. 쿠마리가 되면 매년 9월 인드라 자트라(Indra Jatra)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이 때 국왕이 가장 먼저 쿠마리에게 무릎을 꿇고 복을 기원하며 ‘섬김’을 맹세한다. 

쿠마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몸에서 피가 나와서는 안 된다. 상처로 피를 한 방울만 흘려도 부정 탔다고 여겨져 쿠마리의 자격도 박탈당한다. 당연히 첫 생리가 시작되면 쿠마리로서의 생활은 끝이 나고 기존의 쿠마리는 평범한 소녀로 돌아가야 하지만 쿠마리였던 소녀는 가족과 남편을 죽게 만든다는 미신 때문에 일평생을 홀로 불행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쿠마리가 거처하는 사원에 들어가 여신을 만나러 왔음을 알리고 마당 한 가운데에 준비된 통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라며 요란을 떨던 관리인이 셔터가 터지지 않을 안전한 환경임을 몇 번이고 확인한다. 그제야 짙은 화장을 하긴 했지만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창문에 5초간 얼굴을 비추더니 ‘훽’하고는 들어가 버린다.
철통 같은 감시도 그렇지만 어린 소녀가 안쓰러워 돌아서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에 사원 앞에서 20루피에 판매되는 쿠마리의 사진을 구입했다. “어떠세요, 쿠마리 신을 보고 나니 쿠마리가 되고 싶지는 않으세요?”

가이드의 엉뚱한 질문에 다른 나라의 존중해야 하는 ‘문화’의 일면이기는 하지만 쓴 웃음만 나온다. 최근 네팔 사회에서도 이 쿠마리를 내세우고 받드는 풍습이 ‘인권 침해’라는 논쟁이 일고 있다고 한다.


ⓒ트래비

1. 쿠마리 사원의 3층 중앙에서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고 곧 들어가버리는 쿠마리.
2. 네팔의 전통 인형 뒤로 보이는 색색의 사리를 차려입은 여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3. 쿠마리 사원에서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 사진을 찍을 경우는 그 자리에서 심한 모욕과 함께 카메라를 압수당한다.
 사원 앞에서는 20루피 정도에 쿠마리의 사진을 팔고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사원이 많은 나라

삶이 곧 종교의 연장인 네팔에 세계 최다의 사원이 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부처가 태어난 국가이니만큼 고대 불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파탄(Patan) 왕궁과 박타푸르(Bhaktapur) 왕궁을 비롯해 네팔을 대표하는 사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다나트(Boudhanath), 스와얌부나트(S wayambhunath) 등 불교의 상징물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다양한 왕궁과 사원은 단순히 ‘불교’뿐만이 아닌 ‘힌두문화’와의 공존을 보여 준다. 동시에 고대 도시만으로서가 아닌 네팔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행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진다.





1,2.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1단부터 8단까지 뜀박질하기. 우리와 너무도 같은 네팔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에 깜짝 놀랐다. 

3,4,5,6,7 (시계방향으로) 포카라, 박타푸르 왕궁, 치트완, 좀솜에서 만난 네팔의 아이들 



1. 파슈파티나트에서 얼굴에 기괴한 화장을 하고 독특한 장신구를 멘 힌두교의 전도사인 사두를 만났다.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몰래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에게 No Money, No photo!라고 외치던 그의 박력있는 모습.

2. 코끼리에게 달려들며 함께 목욕을 하던 장난꾸러기 녀석들. 알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부끄러운지 모래로 급수습(?)한 뒤 사진 찰칵!

3. 가수 이효리를 닮은 엄마와 예쁘고 수줍은 소녀 로지나. 아직 투명한 눈망울의 아가 로니나 남매. 세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보는 사람조차 행복하게 만든다.

Epilogue  98%에 대한 목마름

네팔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 선배 여행자들과 산악인이 주구장창 늘어 놓던 ‘네팔 예찬’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무리 발품을 팔고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해도 내가 본 것은 네팔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혹은 알지만 모두 맘껏 느껴 보지 못한 나머지 98%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네팔을 찾고 또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네팔을 여행하는 그날을 그리며 웅장한 히말라야와 순박한 네팔 사람들 그리고 그 다채로운 문화에 대한 ‘상사병’을 달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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