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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 -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을 꿈꾸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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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사랑의 예감으로 가슴 뛰는 도시

 “오래된 부부는 서로 뭘 할지 뻔히 알기에 권태를 느끼고 미워한댔지.
내 생각은 반대야.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거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야.”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의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가 나눈 얘기다. 하루 동안 비엔나라는 도시에서 그들은 사랑과 실연, 죽음, 결혼 등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히 나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녀 간의 가슴 설레이는 사랑은 18~30개월 동안이라고 한다. 사랑도 일종의 두뇌의 화학 작용인데 호르몬 분비 작용을 통해 상대방에게 열정적일 수도, 또는 점점 시들해질 수도 있다는 것. 어떤 종류의 호르몬이 생성되는가에 따라 상대방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거나 손을 잡고 싶고, 감정적 교감이 이루어지다가 무덤덤한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남녀가 만난 후 2년 정도 지나면 더 이상 호르몬의 분비 작용은 이루어지지 않고 따라서 감정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제시와 셀린느는 함께한 하루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헤어짐의 아침이 다가오고 자신들의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그들은 6개월 후 만날 약속을 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엔나에 도착한 순간 영화 속 장면부터 시작해서 사랑에 대한 상념들이 꼬리를 문다. 화려한 표정,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과거의 영광으로 무장한 비엔나. 그러나 내게는 언제나 설레임 가득한 사랑만을 만들어낼 것 같은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나도, 셀린느를 아니면 또 다른 제시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나의 두근거림과는 무관하게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무척 평온하고 일상적이다.

 Scene #2 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그뿐

사실 비엔나에 오기 전 걱정부터 앞섰다. 음악의 도시라는데 전문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이 도시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링로드를 가로질러 복스 가르텐(Volks Garten)이라 불리는 비엔나의 주공원 안에서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80가지 종류의 장미꽃을 본 순간 주눅 들던 마음이 비엔나 시민들의 표정처럼 평온해진다. 그래, 비엔나에 왔으니 그저 비엔나를 충실히 즐기면 그뿐이지. 화려하면서도 평온한, 상반된 이미지가 잘 어우러진 도시 비엔나. 이방인들은 그 모습을 성실히 즐기면 된다. 

복스 가르텐을 가로지르면 바로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면과 좌우로 독립된 건물들이 하나의 성처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건물들은 왕가가 세습될 때마다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건물 하나하나가 깊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건물들에는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이것은 국경일에 국기를 다는 우리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에 행하는 일종의 표식과 같다고 한다.

건물을 뒤로한 채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상점들 사이로 난 케른트너 거리에 들어서면 지금 서 있는 곳이 비엔나라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름 모를 거리악사들이 들려 주는 클래식 선율, 따사로운 햇살과 맑게 펼쳐진 하늘, 아름다운 색으로 장식된 야외카페의 파라솔과 테이블, 비엔나의 아이콘이 된 성 슈테판 성당, 그리고 그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그저 가만히 서 있어도 좋다. 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도 좋다. 제시와 셀린느도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그래서 서로에게 터놓고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리라.

여행자가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강요도 받지 않고, 느낄 것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가슴이 느끼는 대로 비엔나를 느끼는 것. 이것이 비엔나에 다가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비엔나는 사실 다양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유명한 작곡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도시로, 역사가들에게는 유럽의 최고왕가라고 칭해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가 담겨 있는 도시로, 건축가들에게는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이 있는 도시로,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빈숲과 다뉴브강가로 아름답게 이루어진 자연 도시의 모습으로, 비엔나는 그때그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다. 이처럼 비엔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손을 내민다. 각자가 비엔나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간직하지만 그 느낌은 그래서 모두 다 옳을 수밖에 없다.

 Scene #3 자유와 지성의 숲에 서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딱딱한 느낌만 떠오르는가. 그러나 비엔나에선 다르다. 자유롭다. 지식도 자유로운 포즈를 취한다. 비엔나의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시간과 공간의 역사와 현재를 향유하는 곳이다. 건물 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건물 밖에서도 시간과 공간의 여유만 생기면 비엔나 사람들은 뭐든지 읽고 있다.

롤러블레이드를 타다가 풀밭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가로수 아래 벤취는 무언가 읽을 거리를 손에 든 사람들의 차지다. 풀밭 위 나무 그늘 아래, 광장에 세워진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든다. 포즈도 다양하다. 발을 올리고 눕거나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앉아 있기도 한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우리 도시 어디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하물며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들을 보기 어려운 것을.

 Scene #4. 다뉴브강과 빈숲, 사랑의 왈츠를 추세요

 비엔나가 더욱 풍요롭게 보이는 까닭은 바로 빈숲과 다뉴브 강이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살짝 20여 분만 벗어나면 다뉴브 강을 만나게 된다. 다뉴브강 하면 왈츠와 요한 스트라우스가 먼저 떠오르듯이 오래 전부터 많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다.

다뉴브강 사이에 위치한 다뉴브섬 또한 다뉴브를 더욱 운치있고 여유롭게 만드는 요소다. 이곳에서 비엔나 사람들은 한적한 오후를 즐긴다. 가족들은 정겨운 시간을 나누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끝없이 푸르른 하늘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그렇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유유자적 강에서 보트를 타면서 슈니첼(오스트리아식 커틀렛)과 와인 한잔을 즐기는 ‘보트 피크닉’을 즐기기도 한다. 그 위에서 시와, 음악과 사랑과 인생을 나눈다.

빈숲에 다다랐다. 울창한 숲 속, 돌로 만들어진 길 위를 차를 몰고 달리는 것 또한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운치이다. 이 숲에선 그냥 숲에 있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베토벤이 이곳에서 전원교향곡의 악상을 얻었다는 것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며 오래된 것 위에 싱그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 비엔나. 숲속 나무 그늘 아래 여자들의 수다가 정겹고 편안하다. 오랜 옛날부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여유로운 그 모습을 보니 이 도시에서 많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배출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인생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알고 철저히 즐길 줄 아는 그 모습이 바로 예술이자 제시와 셀린느가 얘기했던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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