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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백향주 - 세계로 날아오르는 타고난 ‘춤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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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19세에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10대에서 20대를 넘나드는 기간에는 도쿄, 베이징, 러시아, 티베트 등을 넘나들며 끝없이 수련하고 크고 작은 공연을 쉼 없이 선보였다. 코스모폴리탄의 길을 걸어온 그녀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지난 98년. 한국을 발판으로 전세계에 도전하는 백향주의 춤세계는 그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다.


“동아시아가 나를 키웠다”

일본에서 조선(북한) 국적으로 태어나 일본, 중국, 한반도를 넘나들며 성장기를 거쳤다. 김일성 주석 앞에서의 공연, 중국 마지막 황제의 동생, 부결 앞에서 초청공연 독무, 중국 국가대표로 중국 전국 순회공연 및 아시아 국제무용 페스티벌 독무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는 그녀를 설명하는 아주 작은 부분 중 하나다. 

“태어난 곳은 일본이고, 나를 키워 준 곳은 한반도, 중국, 일본 3개 나라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백향주가 구사하는 춤은 외국에는 ‘한국춤(Korean Dance)’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녀 스스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동아시아 춤. 실제로 그녀의 춤 속에는 한?중?일 3개국 외에도 몽골리안, 티베트, 타이, 실크로드 등지의 전통춤들이 결합돼 있다.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 무용대학에서 5년간 수학하며 각 지역의 현지인들로부터 체득했다. 

최승희, 경애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

또한 백향주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바로 최승희. 북한 무용가로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최승희의 정신이 백향주의 춤 안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사람들이 ‘최승희’를 넘어 ‘백향주’를 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손녀 제자로서(백향주는 최승희의 양아들인 안무가 김해춘의 사사를 받았다) 춤제가 이어져 오는 건 사실이고, 대한민국에서 무용가로서 정착하게 된 데에는 최승희라는 수식어가 큰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일본 등 외국에서는 백향주의 춤을 보러 오지, 최승희의 춤을 보러 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승희 춤을 계승한 무용가로서의 ‘책임’은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 올해 초 설립한 <백향주 동아시아 춤 컴퍼니>의 프로그램을 통해 제자들에게 최승희 춤을 비롯한 동아시아 무용을 전수하고 있는 것. “예술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함으로써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거죠”라는 그녀의 말이, 유달리 가슴에 남는다.

<더 코드>는 휴식이고 터닝포인트

“무용 중에서도 함께 추는 군무와 독무의 차이는 엄연하죠. 솔로 무용가는 외롭고, 정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힘든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백향주는 무용가로서 프로 무대를 꿈꿀 때부터 ‘그룹’이 주는 소속감과 안정감 대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거는 길을 택했다. 무려 10여 년이 가까운 기간 동안 솔로로 무대를 책임져 오면서, 알게 모르게 탈진했던 것도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코드>의 공연은, 그녀에게는 ‘휴식’과도 같은, 즐거운 회복제의 역할을 했다.
“비보이와의 결합이 다소 파격적이어서 어렵지 않았느냐는 반응이 많았는데, 어떤 면에서 오히려 편안한 공연이었어요. 비보이의 춤은 제 춤과는 다른 분야이지만, 그들만의 열정, 파워를 충분히 공감했구요. 이제까지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기도 했고, 무대 위에서 ‘교류’를 함으로써 비보이의 에너지와 활기를 받아 재충전도 됐습니다.” <점프>, <난타>와 함께 한류문화 대표 상품으로 선정된 <더 코드>는 대대적 손질을 거쳐 내년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출전될 예정.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 하반기쯤에는 한국무용과 모던댄스를 결합한 또 다른 무대를 선보여, 한국은 물론 세계무대로 진출할 계획이다.

백향주가 말하는 춤, 가족 그리고 여행

춤의 길을 걸어온 지 햇수로만 30여 년이니 슬럼프에 수차례 빠졌을 법하건만, 이마저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로써 이겨낼 만큼 그녀의 ‘춤사랑’은 지극하다. “남들과 같아서는 절대 앞서 나갈 수 없죠. 개인적으로 베이징에서 5년간 체류하며 혹독한 추위와 박한 생활 여건 속에서도 공부와 공연에 매진했던 힘든 경험이 제 춤 인생에서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온몸으로 자연을 표현하는, 나아가 자연과 일체가 되는 춤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가족이란 울타리 역시 그녀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지각변동’의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 정착한 이래 9EYES의 이용권 대표와 결혼, 인생의 동반자는 물론 <더 코드>를 함께 제작하기도 한 든든한 파트너를 얻었고 현재 19개월 된 예쁜 딸도 품에 안았다. “결혼 이전에는 예술이 제 인생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가족이 제 1순위죠. 출산, 모유 수유 등의 경험을 통해 여자로서의 자신감, 완성감을 느꼈고 이는 고스란히 제 작품세계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공연으로도 많은 곳을 다녔지만, 개인적으로 짬을 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닐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편. 터키, 인도 등 문화색이 짙은 곳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영감과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자연이 아름다운 여행지로는 남프랑스, 캐나다 로키,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등지를 꼽았다. “고인 물은 썩듯이, 예술에는 늘 신선하고 새로운 무언가가 필수적이에요. 그런 점에 있어서 예술가에게 여행은 곧 인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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