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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라노 - 홋카이도의 중심에서 ‘꿈의 파우더 눈’을 만끽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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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 줄 노천온천과 온수 풀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 스크린을 흰 눈으로 뒤덮었던 영화 <철도원>의 배경이 된 이쿠토라 간이역과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마을’로 선정된 비에이도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어서 흰 눈발을 가르며 달리는 운치 있는 기차 여행은 덤이다. 


ⓒ트래비

1. 슬로프에서 설경에 취해 잇는 스키어 커플.
2. 눈꽃이 만개한 숲속 슬로프를 누비는 스노보더.

환상의 파우더 눈에 푹 빠지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리~’ 오전 8시30분. 후라노 스키장의 명물인 101인용 로프웨이(곤돌라)가 운행을 시작한다는 전자음이 들려오자 탑승구 앞에 길게 늘어선 200여 명의 스키어와 보더들의 눈빛이 일제히 반짝거렸다. 간밤에 창밖으로 퍼붓는 눈을 보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버진 스노(Virgin Snow)’를 가장 먼저 즐기겠다는 짜릿한 기대를 한 건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상기된 얼굴로 첫 로프웨이에 오른 이들은 각자 스노보드와 스키 장비를 가슴팍에 안고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선 채 고개를 창밖으로 향했다. 쏜살같이 멀어지는 그림 같은 설경에 5분 남짓 취해 있었을까. 일본에서 가장 빠르다는 로프웨이는 어느새 해발 940m 베이스에 닿았다. 

“와! 여기가 바로 후라노구나!” 로프웨이에서 내려 슬로프를 향해 서니 홋카이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웅장한 도카치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과 분지에 자리잡은 후라노 시내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홋카이도의 중심, 후라노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감탄도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갈림길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현란한 점프와 턴을 이용하는 모굴(Mogul)을 즐기는 상급자들에게 최고의 커브 사면을 제공한다는 파노라마 코스로 안내하는 정상행 리프트 탑승은 일단 보류. 솔직히 상급자도 아니지만 스노보드를 2년 만에, 그것도 낯선 외국에서 탄다는 건 안 그래도 불안한 일이었다. 남은 선택은 숲 속을 미끄러지는 긴 코스인 중급자용 스피스 코스와 초급자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자이라 코스였다. 결국 산 정상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난 스피스 코스를 향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보드에 두 발을 묶은 바인딩을 힘껏 조였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무릎을 살짝 굽히고 양 팔로 중심을 잡으면서 반짝이는 설경이 펼쳐진 슬로프 아래로 시선을 향하자 어느새 보드가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시 왼쪽, 오른쪽…. 시선을 옮기는 대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나아가는 보드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천연의 눈, 파우더 스노(powder snow)를 한쪽 날로 ‘슥~슥~’ 제치며 내려오는 맛이 ‘환상’이다. 일본 내에서도 단연 뛰어난 설질(雪質)을 자랑한다는 후라노 스키장의 홍보 문구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스키장에 비해 사람이 적고 슬로프 폭도 넓어서 숲 속으로 이어진 긴 활강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단, 같은 코스라도 중간에 난이도가 ‘초급-→중급’ 또는 ‘중급→초급’으로 달라지는 탓에 미리 코스 라인을 확인해야 한다. 각 리프트에도 레벨별로 초급자는 녹색, 중급자는 붉은색, 상급자는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후라노 스키장을 처음 찾은 송호대학 스키·스노보드학과 김준범 교수는 “코스가 다양해서 재미있는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신설(新雪)을 즐기면서 누구나 한두 시간만 배우면 스키,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스키장의 경우 지정된 장소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슬로프에서는 금연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지의 한 관계자는 “눈에 함부로 담배 꽁초를 버리는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라며 “조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Soh's Bar (소즈바) 

간판에 대놓고 'for miserable smokers'라고 적어놓은 애연가 들을 위한 바. 일본 스키장은 자연 보호를 위해 슬로프 전체가 금연 지역이라 정해진 곳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대신 소즈바를 은신처로 삼아 마음껏 끽연을 즐기자.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등 시원한 입론 맥주 혹은 와인과 함께 곁들인 치즈 퐁듀와 오므라이스가 별미. 그 맛을 잊지 못해서 후라노에 또 오고 싶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 기무라 기미노부 후라노 스키스쿨 교장 인터뷰
“후라노에서는 누구나 더 능숙하게 탈 수 있습니다”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17년 동안 활약한 알파인 스키 영웅 ‘키무라 키미노부(37)’는 “후라노의 눈은 가볍고 습기가 적어 설질 면에서 최고”라며 “슬로프 역시 좋은 코스가 많다”고 자랑했다. 그는 은퇴 이후 2004년부터 후라노 스키장 스키스쿨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선수 시절 올림픽 4연속 대회 출장을 통해 “세계의 스키장을 알고, 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친구가 생겼다”는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스키장을 다 다녀 봤지만, 이렇게 가벼운 눈을 느꼈던 적은 없다”라며 “실제로 타 보면 스키의 그립이나 부드러움이 적당하게 느껴져서 자신이 더 능숙해진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살 때 스키를 배우기 시작해 15살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유니버시아드에서 일본 사상 첫 우승을 거머쥔 이후 일본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이들에게 스키의 매력을 가르쳐 많은 사람에게 연령을 넘은 생애 스포츠로서 스키의 즐거움을 전하는 게 다음 목표”라며 “한국인 스키어들을 위해서도 2월~3월 중에 원 포인트 레슨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숲 속의 쇼핑 로드, 닌구르 테라스


ⓒ트래비

1. 크리스마스 마을에 온 듯 로맨틱한 닌구르 테라스의 야경
2,4. 닌구르 테라스 에서는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수공예 소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3. 통나무 가게 앞에 세워진 후라노 눈사람

산타 마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크리스마스의 요정이 살고 있을 법한 눈 내린 숲 속에 15채의 통나무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닌구르 테라스’. 닌구루(ニングル)는 일본 작가 구라모토 소의 책에 등장하는 신장 15cm 정도의 숲의 지혜자 요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드는 공방들과 개성 넘치는 가게, 운치 있는 찻집이 이어진 숲 속의 쇼핑 로드다. 라벤더로 유명한 후라노의 사계절을 담은 그림 엽서와 직접 만드는 코르크 액자, 수공예 귀고리와 팔찌, 핸드폰 줄 등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국민 드라마인 <기타노쿠니카라>의 주인공 준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른 곳으로 불이 켜지는 밤이면 로맨틱한 분위기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 찾아가기     후라노 스키장이 있는 신후라노프린스 호텔에서 도보로 5분 거리, JR 후라노 역에서 차로 10분
▒ 운영시간     낮 12시부터 밤 9시(7월~8월은 오전 9시부터)
▒ 휴무      가게마다 다름/  문의     0167-22-1111

미까즈끼 (三日月) 식당 

후라노 사람들에게 80년 넘게 사랑을 받아 온 전통 라면집. 가장 유명한 메뉴는 쇼유라멘(간장라면)이지만, 미소라멘(된장라면) 역시 국물이 끝내준다는 거~. 특히 전날 과음을 했다면 얼큰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 줘서 즐거운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나 어쩐다나. 단, 오후 3시ㄴ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산간지역의 특성상 평일 오후 4시 39분이면 문을 닫는다. 일요일은 저녁 7시 30분까지 영업. 가격은 모든 메뉴가 1인분에 600엔. 

▒ 찾아가기 JR 후라노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 문의 0167-22-2139


 후라노에서 비에이까지, ‘설국(雪國)’을 가로지르다


ⓒ트래비

1. 한장의 그림엽서 같은 마일드 세븐 언덕
2. 비에이 관광에 유용한 대절택시 
3. 일본 담배 광고로 유명해진 나무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설국(雪國)>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그 유명한 문구를 새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JR 후라노 역에서 비에이로 향하는 기차는 눈이 시리도록 흰 ‘설국’을 가로질러 달렸다. 창밖으로 흰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더니 어느새 흰 눈을 소복이 뒤집어쓴 자작나무와 삼나무 숲을 통과한다. 두툼한 눈 코트를 입은 크리스마스 나무들이 철도 양쪽으로 펼쳐진 비바우시 역을 지날 때는 아무 캐롤 송이나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옛날 전차 같은 달랑 한 칸짜리 기차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며 30여 분간 달리면 <철도원>의 기차 플랫폼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에이역에 도착한다. 

라벤더가 만개한 언덕에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는 사진으로 유명한 비에이는 여름에 더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중 일본 TV 광고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진 명소가 많다는 패치워크언덕 코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언덕 여기저기 흩어진 나무들을 찾아 1시간짜리 택시 투어에 올랐다. “날씨가 안 좋아서 사진 찍기가 어떨지 모르겠다”는 택시 운전기사 할아버지의 걱정은 적중했다. 잿빛 하늘에서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이 사방을 덮어 버린 하얀 언덕에 서 있는 나무들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오후 3시가 되자 벌써 해가 어둑어둑 저물기 시작한다. 아쉬운 마음은 눈을 닮은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달랬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후라노 역에는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스키장에서 빠져 나와 비에이에서 보낸 반나절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 켄과 메리의 나무     일본 닛산 자동차 ‘사랑의 스카이라인’의 ‘켄과 메리’ 광고에 나온 뒤 ‘켄과 메리 나무’로 불리는 포플러 나무. 같은 이름의 펜션에는 당시의 광고에 나왔던 차를 실제로 볼 수 있다. 찾아가기  JR 비에이 역에서 약 2.5km, 차로 5분

▒ 세븐스타 나무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떡갈나무로 1976년에 일본 담배 세븐스타의 광고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찾아가기  JR 비에이 역에서 약 7km, 차로 13분

▒ 오야코노키     택시 운전기사가 서툰 한국어로 “어무니, 아부지”를 외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세 그루의 떡갈나무. 마치 부모 사이에 아이가 서 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부모 자식 나무’란 뜻의 오야코노키(親子の木)라고 불린다.
찾아가기  비에이 역에서 약 5.9km, 차로 12분

▒ 비에이 관광     여름의 경우 비에이는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코스가 유명하다. 그러나 겨울은 렌터카나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없다. 렌터카의 경우 직접 운전하면서 여유있게 비에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주요 명소를 둘러보려면 비용이 좀 들어도 택시를 추천한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면 운전기사의 친절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 택시 요금     패치워크노오카 코스 1시간 5,400엔, 파노라마 코스 1시간 5,400엔

▒ 렌터카 문의     에키렌터카 0166-92-1854/ 아토무렌터카 0166-92-3315

영화 <철도원>의 바로 그 역, 이쿠토라

신후라노프린스호텔 로비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가수 태진아씨가 틀림 없었다.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자 “스키 타러 오셨나요”라고 되묻는다. 그는 아들인 가수 이루의 <흰 눈> 뮤직비디오 촬영 차 후라노에 머물고 있었던 것. 뮤직 비디오 촬영은 플랫폼을 가득 덮은 흰 눈이 진한 여운을 남긴 영화 <철도원>의 호로마이 역, 실제로는 후라노의 이쿠토라 역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폐쇄될 위기에 놓인 시골 기차역은 평생 철도원으로 살아온 주인공 오토가 가진 전부였다. 눈이 쌓인 선로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어렵게 아기를 가진 기쁨을 함께 나눴고, 그 아이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지켜봤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떠나 보내며 마지막으로 배웅한 곳도 바로 눈발이 흩날리는 기차역이었기 때문이다.



“흰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 고운 입술로 날 사랑한다고~ 안녕이란 말을 하고~ 그대가 내 곁을 떠나갔죠~” <흰 눈>의 노래 가사에 호로마이역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영화와 달리 이쿠토라 역은 지금도 이용이 가능한 탓에 가수 이루는 헤어진 연인과 기차에서 행복했던 한때 장면을 찍는 내내 기차를 탄 일본 시골 승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결국 많은 NG 끝에 네 정거장이나 간 후에야 ‘OK’ 사인이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태진아는 혹한 속에서 촬영에 임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핫팩을 건네는 등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촬영은 인근 가나야마 호를 비롯해 후라노 시립도서관, 거리 자동판매기 등 후라노 시내에서도 이뤄졌다. 후라노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가수 이루의 <흰 눈> 뮤직비디오는 12월 말부터 만날 수 있다.   

온 가족이 즐거운 '패밀리 스노우랜드' 

스키나 보드를 못 타더라도 후라노 스키장에선 즐거움이 가득하다. 슬로프와 별도로 마련된 숲속 패밀리 스노우랜드에서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썰매 등 다양한 어트랙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이어를 타고 전용 코스를 활주할 수 있는 '스노튜빙', 눈 위의 봅슬레이 '스노보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스노 모빌'이 인기다. 또한 급한 슬로프 없이 느긋하게 숲속 과 설원을 걷는 '걷는 스키' 코스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각 시설 요금은 리프트 요금과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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