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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희은 - 너는 떠나고 싶지 않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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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는 모든 년놈들을 질투한다’던 양희은에게 물었다. “왜 여행을 떠나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거냐고.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너는 떠나고 싶지 않냐?”

얼마 전 한글 어휘 하나를 가지고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보다 나은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양희은을 보게 됐다. ‘본데없다’라는 단어 하나를 맞추기 위해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 그 속에 여유롭게 웃음 짓는 그의 모습에서 ‘Old & New'세대 간의 동상이몽이 될지 모르는 ‘양희은’이라는 아이콘을 생각해본다. 

신세대들에게는 주부들의 벗이자 카운셀러가 되어주는 아줌마 대표 DJ,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국민 언니겠지만 ‘386’ 세대를 비롯해 30대 이상에게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민중가요를 통해 ‘시대의 목소리’로 대변되어 왔다.

양희은과의 인터뷰가 있던 날. 여느 인터뷰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예의 신문과 방송 등에서 접한 그는 ‘천둥소리’처럼 우렁차며 ‘호랑이’처럼 엄하고 시종일관 바지런하고 활기찬 ‘에너자이저’였다. 온갖 ‘강함’의 미사여구가 따라다니는 그 이미지의 파편들은 그를 만나기 한참 전부터 ‘긴장감’으로 가슴을 조여 왔다. 

사진 촬영에 앞서 미리 준비해 둔 조악한 배경과 미숙한 센스로 ‘다락방에서 소녀로 돌아간 양희은’의 컨셉트를 제안하자 “내가 소녀가 아닌데 왜 소녀 같이 찍어요. 나는 정말 나답게, 양희은답게 찍어 주세요”라고 멋지게 선방을 날린다.

“여행 최고의 파트너? 내 그림자!” 

그가 연재했던 한 칼럼에서 “나는 짐 싸는 모든 년놈들을 질투한다”라고 적나라하게 말했을 정도로 누가보기에도 그는 여행마니아다. 또 박미선 송은이와 함께 여행프로그램인 <행복한 수다, 좋은 친구>를 진행하며 세계의 구석구석을 남다르게 즐기며 보는 이들의 방랑벽을 부추겼던 그가 아니던가. 양희은의 생애 첫 여행은 전업을 생각할 정도로 고민하고 방황하던 1980년. 해외에 나가기도 쉽지 않았던 당시 가수에서 의상회사의 기획실장으로의 변신을 꿈꾸며 일본을 갔던 것이 첫 여행이라고 회상한다. 

“그것도 일이니까 자유롭진 않았죠. 내가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여행은 81년 배낭여행을 할 때. 돈도 별로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던 여행이었어요. 누구와 의논할 필요도 없고 약속도 안 정하고 혼자 다녔던 그때가 그립죠. 최고의 파트너는? 내 그림자!” 

매일 <여성시대>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와중에 <행복한 수다, 좋은 친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거의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여행지로 가서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기를 8개월이나 반복하는 일은 이제 오십을 훌쩍 넘긴 그에게는 굉장한 강행군이었다. 게다가 예정된 대본마저 없이 세 여자의 애드리브와 돌발 상황에 의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기에 즐길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와, 촬영을 하면 나중에는 다 뻗어요. 박미선 송은이는 차만 타면 기절해서 자는데 원래 탈 것에서 잠을 못자는 나는 또 사고 안나나 걱정돼서 계속 깨어 있고. 8개월이 지나니 맥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중에 다녀온 여행지 한 곳 한 곳은 모두 잊지 못할 여행지로 기억된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카렌족의 문화를 흠뻑 느꼈던 태국의 치앙마이와 아름다운 페와 호수가 있는 네팔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였다. 

“좋았던 이유? ‘그. 냥.’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떤 집에서든 남자들은 낮잠 잔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다 밖에 나가 일하고 애들 건사하고 하물며 가게라도 지켜. 반면에 남자들은 새끼손톱을 길~게 해서 귀나 파거나 차 마시고 담배피고….”

“왜 떠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걸까?”

1971년 9월부터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매일아침 주부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갱년기. 개인의 삶에 사연을 읽어 주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하는 회의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진 적도 있다. 5년 정도가 흘렀을까. 그들의 사연을 읽고 또 들으면서 차마 ‘그조차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튜닝이라고 하죠. 음도 같은 음끼리는 공명을 해요. 차마 내 이야기를 못 털어놓는 사람들이 이 사연을 듣는 동시에 자신을 객관화하고 동시에 그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며 나눔의 거대한 어깨동무가 이뤄지는 거죠.”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양심, 인내, 원칙 덕분에 여성시대와 더불어 거대한 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청취자들과의 의리, 의무감에라도 아무리 고단할지언정 지금 하고 있는 라디오 진행을 함부로 그만둘 수 없다. 

“나는 갱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도 안했어요. 우울 속에 그냥 ‘풍~덩’ 빠졌지. 끝없이 나의 일을 계속 하면서. 만약 지금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헬스 같은 거보다는 그 돈이면 운동화 좋은 거 하나를 사서 동네 뒷산을 걸었으면 해요. 내 경우에는 나이 들수록 딴 나라보다 내 나라에 관심이 커졌지. ‘왜 나는 마라도까지 안 가봤지’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나라 구석구석, 도서지방 곳곳을 여행하는 것도 무척 좋아요.”  

‘여행’, ‘여행’,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반문한다.
“왜 사람들은 여행이 꼭 트렁크를 끌고 인천국제공항을 가야 여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시내버스의 종점에서 종점까지 떠나보기, 내가 대학시절 하숙했던 하숙집, 자취방, 다녔던 초등학교의 운동장, 세 들어 살았던 신혼 집, 어린시절 우리 집의 행복이 건강하게 기억되는 그곳을 찾아가는 그것도 여행이에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어려 있는 옛 집터와 소녀였던 그가 기대서 노래했던 느티나무를 돌아봤던 여행을 회상하며 앞으로는 어머니, 그리고 세 자매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사는 게 여행이죠. 다른 곳의 다른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싸는지 그게 그렇게 궁금해. 안들 또 뭘 하겠어. 여행을 떠날 때도 짐 싸는 그 순간까지가 되게 재밌어요. 하지만 떠나는 순간, ‘나 왜가지?’ 이런 생각도 들고 후회하기도 해요. ‘왜 떠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걸까? 왜 일상을 유지하며 떠날 순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물리적인 거리가 실제의 내 처지와 정신 상태를 객관화시키고 자기를 바라보는 데는 도움이 돼는 것 같아요.”

“더 잘 늙어가고 더 아름답게 노래하기 위해…”

“노래는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하고 가슴에 울림이 있어야 해요. 노래는 ‘참여’가 아니라 ‘사랑’이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김민기씨가 작사 작곡한 <아침이슬>은 참여와 선동과는 정말이지 무관하게 가슴의 울림이 깊이 전해져 선택한 노래였다. 특히 노래의 맨 마지막 부분인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부르기 위해 처음부터 공들여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시위현장에서 불려지는 그 노래를 들을 때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 노래가 과연 내가 불렀던 노래일까. 노래라는 것이 부르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 아니구나. 그 노래를 되불러주는 이의 것이구나를 실감했죠.” 

그는 데뷔 35주년을 맞아 생애 최초로 갖는다는 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신중하게 대답했다. 제작발표회는 100여명의 취재진과 동료 가수인 남진, 정훈희씨, 오한숙희씨 등의 여성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35년 동안 포크음악 하나를 꾸준히 고집해 온 유일한 가수 양희은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가수의 노력만으로는 이렇게 긴 세월을 노래할 수 없어요. 35년이 어느 날 갑자기 해일처럼 몰려온 게 아니에요.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35년이 됐구나 생각하니 담담하죠. 여러분 품안에서 노래를 키워서 제게 돌려주셨기에 제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었어요. 35년이라는 세월을 자랑하기 보다는 더 잘 늙어가고 더 아름답게 노래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삼고 싶어요.” 

12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세상의 아주 작은 변화, 사소할 수도 있는 일상에 대한 깊은 사색과 감동은 담은 그의 노래가 청아한 목소리에 실려 대중의 가슴에 울려 퍼진다. <못다한 노래>를 시작으로 앵콜 곡 <상록수>까지. 또박또박 힘주어 읊조리는 노랫말은 관객의 가슴에 저릿한 감동을 준다. 

‘우리 나갈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상록수>의 마지막 소절이 더욱 더 숭고하고 더 큰 감명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82년,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고 두 번에 걸친 수술과 힘겨운 항암 치료 속에서도 <하얀 목련> 등의 노래를 통해 끊임없이 '희망'의 노래를 불렀던 그의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주년도 이 자리에서 공연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밀어 주셔야 해요.” 

35년 긴 세월을 우직하게 포크 음악 한우물만 파며 달려왔던 국민가수 양희은이 그야말로 소녀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수줍은 어리광을 부린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노래는 그의 운명이지만 늘 하기 힘든 숙제라며 즐겨야하는데 별별 짓을 다해도 즐겨지지 않는다며 “미치겠다”던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그가 이전 사진 촬영 시 요청했던 ‘진짜 양희은 다운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겉으로는 호통 치듯 쩌렁쩌렁 큰 소리로 말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자기 집에 발을 들인 손님을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카메라 공포, 시선 공포, 무대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무대에 올라서는 벅찬 감동에 기뻐하던 모습. 미취학 아동 때부터 한결 같이 좋아했던 <노틀담의 곱추>에서의 안소니 퀸과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를 선보이는 양동근에 열광한다는 그녀에게서 풋풋하고 싱그러운 소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단순한 단어 하나, 우리가 자주 쓰는 문장 하나의 평범한 가사도 그가 만들고 그가 부르면 자꾸자꾸 곱씹게 되고 자꾸자꾸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은 보이는 그대로 단순하고 명쾌한 데서 오는 일상의 감동 그대로였다. 우리시대 가장 매력적인 외강내유의 카리스마. 늘 나이 먹는 재미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그의 좋은 기운에 노래를 듣는 팬들, 사연을 공감하는 라디오 청취자들, 유쾌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모두가 작은 시내 같은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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