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최불암 - 챙겨 주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탤런트 최불암 - 챙겨 주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 트래비
  • 승인 2006.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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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과 배려는 관광뿐 아니라 관계의 기본

웰컴투코리아 재단을 찾은 날은 유난히 손님들로 붐볐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반겨주고 배웅하면서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무엇 하나라도 챙겨서 보내려는 최불암에게서는 푸근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어머니에 대한 추억, 한국 관광산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정열적인 모습에 찡한 감동이 절로 우러난다.

국민배우라는 말은 이제 조금은 식상하다. 하지만 최불암을 칭하는 ‘국민배우’라는 말에는 진심이 실린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건넨 한마디. “어머 텔레비전에서 보는 거랑 똑같으시네요”라고 말하자 금세 ‘파~’하고 웃어 준다.

대중에게 선생님, 아버지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된 최불암은 각종 매체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스승의 이미지에 적합한 연예인 1위’, ‘내 결혼식 주례를 봐줬으면 하는 유명인사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것은 실제 생활에서도 청소년 운동, 한국 어린이재단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선행을 몸소 실천하며 아버지와 스승의 본보기를 보이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나온 자연스러운 설문 결과이다.

“모르겠어요. 난 어렸을 때 내가 유복하게 자라지 않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애들한테 특히 잘하고 싶어요. 공부도 시켜 주고 싶고, 밥도 사 주고 싶고, 사람들이 선행이다 뭐다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지요”라고 소탈하게 말한다.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꿈은 놓지 않았다. 풍자를 제대로 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연출 전공으로 입학했다. 연출 전공임에도 배우들이 꺼리는 노역을 척척 맡아 하자 주변에서 연기를 권유했다. 그래서 1960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현재의 대배우가 된 것이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순순히 허락하지는 않았다. 특히 궁중 나팔 연주가였던 그의 외할아버지가 엄청난 반대를 했다. “아버지도 원래 영화 쪽에서 일하던 양반이었고 어머니는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시인이나 예술가들과 교류가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광대’의 피가 흘렀는지 나도 광대가 됐어요.”

 

최불암의 사모곡(思母曲)

그래도 어머니만은 "연출이면 광대 중에서도 대장이니 잘해 봐라"며 그의 꿈을 밀어 줬다.

“어머니는 여장부셨지요. 우리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당신은 소학교밖에 못 나왔어도 문학인들, 예술인들을 이해하셨던 분이었거든요.”

최불암의 어머니는 한번도 아들에게 어떻게 살라거나 뭐가 되라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아들의 뒤에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줬다. 그가 배우로 무대에 선 뒤에도 어머니가 최고의 비평가였다. 연기뿐 아니라 걸음걸이나 의상에도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수갑이나 권총을 사용하지 않는 인도적인 경찰상을 연기해 호평을 받게 된 것도 "붙잡혀 온 사람에게 욕설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따른 결과였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내내 뭉클한 표정의 그의 모습을 보며 <전원일기>에서 나이든 어머님의 잠자리를 살피던 효심 깊은 양촌리 김회장의 모습은 그의 기본적인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을 꾸미는 것처럼 관광자원도 정비한다

그는 눈도 작고 키도 그리 큰 편이 아니라서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도 큼지막한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도 누누이 말했다고 한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 탤런트 김민자다. 하지만 최불암은 번듯한 집안의 규수였고 당시 텔레비전의 인기배우였던 그녀가 집안도 변변찮고 가난한 연극배우인 최불암을 선택해 줄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할 수는 없고 좋아하는 마음은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최불암은 그녀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정성’과 ‘끈기’ 작전을 폈다.

“화면으로 딱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 후에 친구한테 소개를 받았는데 그때부터 그 사람이 일하는 방송국 매점에서 끝날 때쯤 기다렸어요. 비올 때는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정성을 들이고 진심을 표현하니 어느새 내 사람이 돼 있던 거죠.”

어떤 사람을 대하든 그는 ‘챙겨 주기’에 바쁘다. 최불암의 사무실을 들른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못한다. 소장하고 있는 책 하나라도 챙겨 주며 배웅도 잊지 않는다. 그런 그의 후덕한 인심과 인정은 여행과 관광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탤런트 ·영화배우 등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국가 홍보 CF를 찍은 후 대통령, 영부인과 동석한 청와대 만찬에서 문화관광부 관광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렇지만 국가 단체가 아닌 NGO 형태로 당시 CF 제작에 같이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만든 것이 바로 ‘웰컴 투 코리아’다. 친절, 웃음, 관광자원 정비라는 점들에 역점을 두고 화장실 가꾸기나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목표로 일종의 문화적 측면의 사회봉사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 누가 찾아오면 그 사람을 위해 청사초롱을 밝히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집안을 깨끗하고 쾌적하게 꾸미고 하잖아요. 관광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의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올 손님을 위해 고쳐주고 거리도 깨끗이 청소하고, 기본적이고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웰컴투 코리아의 회장답게 한국의 관광자원에 대한 그의 자랑은 끊이지 않는다. 5,000년 문화 대국이며 동아시아 속 중심국으로 한류의 관심 속에 있는 대한민국을 종합적 관광이 가능한 관광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이탈리아는 인심이 매우 후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우리네 문화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남부의 카프리 섬을 여행할 때 경치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기억에 남는 게 그때 사공이 배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일이다. 외지에서 관광객들이 왔다고 서비스를 했던 것인데 노래를 엄청 못하는 데도 너무 열심히 해서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또 그곳의 물빛이 하얀 손수건을 넣으면 초록물이 들겠구나 싶을 정도로 물색이 예뻤다. 정말 잊지 못할 여행지이다.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웰컴투 코리아 일을 함께하는 탤런트 심양홍과 여행하고 싶다. 굉장히 박식하고 풍류를 아는 사람이다. 심양홍은 술을 즐길 줄 아는 멋도 알아 함께 있으면 세상이 더욱 멋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여행이 가지는 의미는?

‘여행이란 들뜸의 연속’이다. 새로운 것들은 항상 나를 흥분시킨다. 새로운 문화나 사람을 만나는 건 항상 들뜨고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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