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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왕주조 - 한국 대표 전통주는 내가 만든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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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술은 문화를 대변한다. 그리고 먹는 문화의 최전선에 있다. 음식이 발달한 나라 치고 좋은 술 없는 나라가 없다. 프랑스에는 와인이, 중국에는 소흥주나 백주가, 그리고 일본에는 사케가 있다.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술은 없다. 모든 나라가 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지만 안타까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타까움이란 수천년 유구한 술 전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l 글·사진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트래비

1. 1920년 백두산 전나무로 지은 양조장. 2003년 근대문화재 58호로 지정되었다
2. 좋은 쌀이 술 맛을 좌우한다.
3. 건물 옆 측백나무 가루가 벽면에 붙어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수주의자의 시각이 아니라 일본의 사케, 즉 청주는 한국에서 넘어간 것이다. 한민족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역사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구다라(백제)의 수수보리가 발효술을 전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의 사서에도 고구려인들이 술을 잘 담궜다는 구절도 여럿 나온다. 그런데 이 청주의 전통은 이제 거의 파괴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청주라는 말도 거의 모른다. 정종을 청주로 아는 안타까운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종(正宗)은 청주의 브랜드 이름이다. 정종의 일본식 음은 ‘세이슈’라고 하고, 훈은 ‘마사무네’라고 읽는다. 오래 전 술 장인이 자신이 존경하던 스님 ‘마사무네’의 이름을 술에다 붙인 것이 기원이다.

이 얘기를 이토록 길게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금의 정종이라 불리는 브랜드는 19세기에서 20세기를 풍미했던 ‘게이겟칸(月桂冠)’이라는 대형 일본의 청주 회사의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일제의 주세법에 의해 수천년을 이어온 조선의 가양주의 전통은 그 기반을 잃는다. 그 자리를 정종이 차지한 것이다. 제삿술로 꼭 필요한 술이었기에 정종은 그야말로 어용 국민주가 된다. 그래서 한민족에게는 없던 데워 먹는 술의 전통마저 생겨나게 된다. 한국의 음식 격언에 ‘술은 겨울처럼 먹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차게 먹으라는 뜻이다. 술을 전해 준 역사는 고사하고 아직도 일본의 일개 브랜드를 찬란한 청주의 대명사로 부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술의 현실이다. 

1929년 진천에 술도가가 하나 세워진다. 지금의 ‘세왕주조’다. 옛날 이름은 덕산주조이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양조장이다. 거창하게 독립운동 하듯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대견하다. 가양주의 전통을 양조장으로 바꾸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정조시대의 영의정 채제공의 정치적 동지였던 이유경은 정조가 죽자 채제공과 낙향한다. 채제공은 덕산에, 이유경은 진천에 터를 잡는다. 이유경의 후손들인 함평 이씨들과 채씨들은 지금까지 진천과 덕산에 살고 있다. 양 집안의 가양주의 전통이 1929년 세상으로 나오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술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집이다. 서울에서 이 집의 막걸리를 취급하고 있는 식당은 은 딱 두 군데뿐이다. 막걸리가 유명하지만 세왕주조는 20여 가지의 약주와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약주는 금주령이 수시로 내려졌던 조선사회의 사회경제적 기반에서 생겨난 술이다. 약으로 먹는 술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약재를 섞은 술은 통용이 됐기 때문이다. 술을 발효시키면 (막 거르면) 1차 발효가 진행되면서 하얗고 걸죽하게 된다. 이것을 막 거르면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라앉히고 위에 뜨는 맑은 것을 걸러낸 것이 청주이고 이것에 물과 약재를 섞어서 약주를 만든다. 술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쌀과 효모이다. 쌀과 물이 기본이라면 술 맛과 도수를 결정하는 것은 효모이다. 

술을 자연 발효시켜서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한계를 알코올 도수 20도 정도로 본다. 그런데 세왕주조는 22.8도까지 성공했다는 게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규행 사장의 말이다. 세왕주조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균을 잘 훈련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들어 보면 일리가 있다. 처음에는 균의 생장 조건을 나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량균들은 미리 죽는다. 그런 다음 이 혹독한 환경을 견딘 우수한 균들로 배양하면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어냄은 물론 발효 후 술의 지속 시간도 두세 배 이상은 된다는 것이다. 보통의 막걸리 유통기한보다 몇 배가 긴 것을 보면 그 말이 결코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물론 파스퇴르가 개발한 저온살균법에 힘입어서 이곳의 막걸리는 이제 진천을 벗어나 전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트래비

(좌) 전통주에 대한 열정으로 신 지식인으로 선정된 세왕주조의 이규행씨
(우) 세왕주조 발효실


효모로 술을 만드는 것이 이 집의 최고의 노하우지만 모든 먹거리가 그렇듯 기본 재료가 가장 중요한 법인데 세왕주조의 재료는 남다르다. 우선 기본이 되는 쌀은 진천의 쌀을, 그리고 물은 150m의 암반수를 사용한다. 거기에 술이 작 익기 위한 조건인 항아리도 70여 년이 넘은 것을 사용한다. 근처의 용몽리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항아리에 ‘1935 용몽리’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기본이 되는 쌀과 물과 용기가 제대로 준비된 셈이다. 술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인 쌀은 계약한 쌀집에서 국산 쌀을 들여다 만든다. 진천의 쌀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맛은 시중에서 파는 일반적인 것들보다 도수가 조금 세다. 그러나 목 넘김이 좋다. 막걸리의 밀도도 균일하고 잡내가 안에 걸리는 것이 없다. 차게 해서 먹으면 시원함이 참으로 상쾌하다. 사이다와 맥주를 결합해서 먹는 맛이라고 할까? 

이곳의 또 다른 술인 약주는 어떨까? 일본의 술은 쌀의 표면에 있는 텁텁한 맛을 없애기 위해 70% 이상 쌀을 깎아내기까지도 한다. 깔끔한 멥쌀을 잘 씻어서 증기로 찌고 고두밥을 짓는다. 이 고두밥에 종국을 넣어 밑술을 잡는다. 이틀간 숙성시킨 뒤 멥쌀을 넣어 덧술을 만들고 12가지 천연 한약재를 넣어 10일간 숙성시키면 술이 된다. 이것이 이 집의 대표 약주 천년주이다. 천년주는 목 넘김이 좋고 향이 오래 가고 서로 잘 어울린다. 좋은 술을 가르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지만 우선 목 넘김이 깔끔해야 한다. 그리고 향과 입 안에서 번지는 향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주인 경우 첨가된 갖가지 재료들이 겉돌지 말고 잘 결합돼야 한다. 독하지 않은 것 역시 점수를 줄 만하다. 이 집은 막걸리에서 각종 기능성 약주까지 20여 가지의 제품을 시판하고 있다. 정직한 재료와 만들기와 맛이 더해지고 가격도 싸서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그리고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양조장 자체이다. 2003년 근대문화재 58호로 지정된 것이다. 검은색으로 칠한 건물은 1920년 백두산에서 가져온 전나무, 삼나무로 만든 것이다. 건물 입구의 측백나무는 그냥 멋으로 세워 놓은 게 아니다. 여기서 나오는 가루가 나무벽에 붙어 방부제 역할을 한다. 이런 환경이 결합돼 문화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이규행, 송현주 부부의 마음 씀씀이도 문화재급이다. 신 지식인으로 선정된 이규행씨와 내조를 넘어서 동반자의 길을 가고 있는 송현주씨의 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양조장을 들어서는 순간 느껴진다. 

벽에 붙은 국균처럼, 외벽에 붙은 송진처럼, 잘 익어 가는 술처럼, 세왕주조는 일제를 거치고 60, 70년대의 획일화의 배고픔의 시대를 넘어서도 살아 남았다. 친구와 술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는 속담이 세왕주조처럼 어울리는 집은 많지 않다.

l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572-16
l 전화   043-536-3567, 3568     
l 홈페이지  
www.icn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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