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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의 평양냉면집 순례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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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덜 떨며 먹는 냉면 이야기
 


 

음식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하얀 쌀밥에 고깃국은 모든 서민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식단이었다. 그러나 웰빙이니 건강이니 하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면서 하얀 쌀밥은 탄수화물 덩어리로, 고깃국은 콜레스트롤을 높이는 음식으로 외면받게 되었다.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흰 밀로 만든 하얀색 빵이나 고기 역시 그들에게도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광우병으로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안전과 건강이 더 중요한 음식의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냉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생뚱맞은 화제로 시작하는 것은 평양냉면이야말로 요즈음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건강식이 아닐까 해서이다. 인공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 몸에 좋은 메밀로 만들어진 것이나, 그러면서도 칼로리도 적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웰빙음식에 가깝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못했던 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겨 드셨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은 육수가 아닌 시원한 동치미국에 담백한 면을 말아 넣고 편육과 배, 실백만을 꾸미로 사용한 냉면을 드셨다고 한다.

 

하여튼 메밀과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든 압축형 국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고, 평양이 최고의 맛과 명성을 지니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종종 서울에 냉면집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서울의 평양냉면은 6.25이후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경동교회 앞에 있는 평양면옥(02-2267-7784)은 그 대표 격이다. 창업주가 평양의 대동문 앞에서 시아버지와 ‘대동면옥’을 운영하다가 6.25 이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북 5도 군민회가 열리는 곳일 정도로 평양냉면의 정통의 맛을 가장 잘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이야기이다. 한우양지를 삶은 육수를 기름을 걷어낸 후에 내린다.

 

육수의 적당히 시원한 정도나 맛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자근자근한 느낌이 싫증나지 않는다. 이런 정통의 맛에 가까운 곳으로는 을지면옥(02-2266-7052)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이 평양 냉면집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평양의 흑백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평양고보 동문들의 정기모임장소로도 유명하다. 겉껍질만을 벗긴 메밀을 직접 빻아 사용해서인지 메밀향이 강하고 부드러운 것이 일품이다. 의정부의 평양면옥, 필동면옥과는 사돈지간인 그야말로 평양냉면의 명문가이다. 그에 비하면 같은 을지로에 있는 우래옥(02-2265-0151)은 그야말로 ‘세계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중적이고 세련된 곳이다. 맛도 정통에 비하면 좀 더 센 편이다.

 

물론 정통에 충실한 선에서의 이야기이다. 1946년 오픈한 이래 평양냉면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온 것이 이 집의 최대의 비법이란다.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먹기에 편안한 곳이다. 맛의 세련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먹어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강서면옥(02-752-1945)은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순수 우리 메밀에 전분 20%를 섞어 만든 면은 부드럽고 매끄럽다. 평양냉면의 밍밍한 맛에 어리둥절해하는 젊은이들도 이곳에 데려가면 대부분 만족한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냉면 맛도 세련된 곳이다.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서 약간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고종황제도 동치미국물에 만 국수를 즐겨 드셨듯이 동치미국물로 유명한 냉면집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다동에 있는 남포면옥(02-777-2269)이다. 동치미국물과 육수를 섞어서 육수를 만들지만 동치미국물만으로 냉면을 내놓기도 하는 집이다. 메밀의 하얀 속분을 이용해 색깔이 다른 냉면에 비해 하얗다. 새콤하고 매끄러운 맛이 특징이다. 남대문 부원상가에 위치한 평양냉면집 부원집(02-753-7728)도 남대문 상인들과 평안도 실향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시장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싸고 투박한 모양새가 정겹다. 고명으로 얹어 나오는 불규칙한 모양의 편육은 시골 장터의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육수는 다른 평양냉면집에 비하면 단맛이 난다. 경동시장의 소문난냉면의 육수에서 나는 단 맛과 비슷하다. 염리동에 있는 을밀대(02-717-1922)는 면으로 유명하다. 메밀의 향긋함이 직접 뽑아 만든 것임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얼음 상태로 나오는 육수의 시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양지로 고아낸 육수도 적당하다. 겨울에 이 얼음육수를 덜덜 떨면서 먹는 냉면 맛을 필자는 가장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더위가 싹 가신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냉면 맛은 한가지이다. 맛있다는 것이다. 


글 사진 =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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