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① 조금 긴 여행의 시작
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① 조금 긴 여행의 시작
  • 트래비
  • 승인 2007.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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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조금 긴 여행의 시작



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내 터질 듯한 짐들을 싣고 하얼빈으로 향한다. 짐을 줄인다고 줄였건만 나의 배낭과 트렁크는 20kg인 수하물 제한 무게를 초과해 30kg을 훌쩍 넘어서고 말았다. 카운터의 맘씨 좋은 누님(?)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추가요금을 물어야 했을 것이다.  마음의 짐까지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려고 했건만 배낭은 떠나기 전날까지 자꾸 배가 불러 왔다. 

모든 여행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 여행자들의 경우 배낭의 크기로 여행 경력을 판가름하기도 한다. 이동이 잦고 기간이 길수록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여행자들의 덕목이랄 수 있는데, 마치 몽골의 유목민이 게르가 아닌 단독주택을 짊어 진 듯 내 짐은 육중했다. 배낭여행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난 왕초보에 가까울 것이었다. 물건들을 챙겨 넣으면서 이것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일까 자문하면서 짐을 꾸렸지만 옷가지를 비롯해 헤어드라이기, 노트북 등 ‘정착민용’ 일상용품들은 끝없이 불어났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예전부터 바라 왔던 편도 여행이 실현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두 차례의 배낭여행과 직장에서의 출장으로 해외로 나갈 기회가 비교적 많았지만 내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돌아와야 할 장소와 날짜, 그리고 시간마저 명백히 적혀진 티켓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날아오른 방패연을 땅에서 붙들고 있는 실타래처럼 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구속과도 같이 느껴졌다. 

우리가 왕복티켓을 구입하는 것은 편도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지만, 그 티켓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불현듯 목소리를 내며 내 여정을 폄하하곤 했다. ‘너의 여행은 출가가 아닌 가출에 불과하다’고 , 배낭 안쪽이나 복대 속에 숨겨놓은 왕복티켓은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현실처럼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은 여행자의 자유로움이나 느긋함이 아닌 도망자의 불안으로 가득 차 버린다. 

수년 전 제대 후 약 3개월 동안 인도를 중심으로 네팔과 태국을 돌아볼 때였다. 그 시간을 통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내 삶을 다잡겠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어느 낯선 도시, 좁고 더럽고 습기 가득한 일인용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숙소에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어김없이 내가 돌아갈 날짜가 떠올랐다. 나의 삶 속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면 난 그 문제를 담아와 해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제로부터 공간적으로 멀리 떠나와 있을 뿐이라는 자괴감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도망자의 심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돌아올 곳이 없는 여행은 이미 여행이 아니라 방랑에 가까울 것이다. 줄이 끊어진 연이 더 이상 비행하지 못하고 종잇조각처럼 단지 바람에 날리우며 찢기는 것처럼, 여행을 가장한 방황의 끝은 자칫 생채기만을 남기고 지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일이 된다.

이 때문일까. 비행기 화물칸에 담겨진 30kg을 초과한 나의 짐을 난 긍정하기로 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렸으되 내가 현재 짊어져야 할 짐은 기꺼이 어깨에 둘러메고 가는 것이라고. 하늘을 비행하는 연과 연결된 실처럼 팽팽한 삶의 긴장감을 갖고 떠나온 것처럼 돌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30kg을 초과한 수하물을 웃으면서 ‘그냥 봐 드릴 게요’라고 말한 항공사 직원처럼 어학연수를 떠나기에는 비교적 많다고 여겨지는 서른을 초과한(?) 나이도 스스로를 향해 미소 지어주기로 했다. 

2시간 남짓 비행해 왔을까.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내려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을 때 처음 떠올랐던 단어는 ‘허허벌판’이었다. 건물 한 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이 펼쳐진 무채색의 벌판에 희끗희끗한 눈 더미만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이라는 노래가사에서 상상했던 드넓고 황량한, 하지만 우리네 남도만큼 뜨거울 것만 같은 바로 그 벌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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