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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주년 특집 - 트래비라이터,포토그래퍼들의 취재뒷담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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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가 창간 2주년을 맞았습니다. 그간 트래비를 만들어 오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기자들 외에 트래비 포토그래퍼나 라이터들의 취재 후기들도 궁금해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트래비 기자들도 모르는 ‘그들만의’ 취재 뒷담화! 트래비 창간호부터 2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고 있는 ‘그들’의 취재에 얽힌 후일담들을 공개합니다~



취재 여행은 국내라도 대개는 1박2일이다. 해외라면 최소 3일에서 일주일은 기본. 취재 의뢰가 들어오면 당연히 좋지만 늘 마음 한쪽이 걸린다. 그 이유는 이제 두살난 아이 때문. 

아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 고모한테 맡기고 간다. 평소에 엄마 노릇을 썩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하루 이틀 자리를 비우면 왠지 티가 난다. 감기가 걸린다거나 기저귀 발진이 돋거나 촌스러워 진다거나…. 평소에 입던 옷인데도 왜 그리 촌스럽게 변하는지. 

지난해 가을에는 자그마치 두달이나 출장을 다녀왔다. 장염에 감기, 한동안 엄마와 헤어진 후유증으로 아기랑 고모 둘 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들었다. 돌아오던 날,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마중 나왔다. 오랜만이라 엄마도 잊어버린 아기. 그저 처음 와보는 공항이며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데만 눈길을 주고, 내가 안으려고 하자 앙~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아이도 좀 자라서 장거리 여행에 익숙해졌다. 가족들끼리 경주 다녀온 데 자신감이 붙어 얼마 전 의성 팸투어에 아이를 데려갔다. 원고 마감 없는, 짧은 라디오 출연용 취재라 부담이 없고 지인이 함께 간다길래 용기를 냈다. 

아이는 의외로 잘 적응했다. 울지도 않고 낯가림은커녕 아빠한테도 잘 안해주던 뽀뽀를 남발해대고, 같이 온 기자들한테 모델까지 돼 주었다. 뱃속에서부터 여행을 태교삼아 지내온 덕분인 듯. 알고 보니 울 아기는 내츄럴 본 트래비스트였다. 



페낭에 위치한 샹그릴라 리조트 취재 중 생긴 일이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가든 그릴로 갔는데, 마침 그릴 내에서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6년 전인가?’ 그때까지 나 역시 이런 무대를 가졌던 통기타 라이브 가수였다. 뭐, 당시 전업은 아니었지만 그저 음악이 좋아서 밤 시간 아르바이트로 짬짬이 노래를 불렀고 나름의 노래 활동을 했었다. 결혼 후 음악을 그만둔 지금도 1년에 한번쯤은 지인들을 모시고 콘서트를 가지곤 한다. 

그런 나에게 타지에서의 하모니카와 통기타 선율은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우리를 인솔하던 리조트 현지 매니저에게 무대에 한번 오를 수 있게 해 달라 부탁을 하니 흔쾌히 자리를 마련 해 주었다.

그렇게 올라선 무대. 가든 그릴에서 식사를 하던 수 십명의 외국인 관객들이 있었고, 이전에 공연을 하던 팀들은 잠시 물러나 있었다. 먼저 이름과 손님임을 밝힌 후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그에 맞춰 통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란 곡을 불렀다. 그러자 관객들이 앵콜을 요청했고 이내 ‘일어나’라는 곡을 다시 불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박수를 치며 큰소리로 입을 맞춰 “김! 봉! 수!”를 반복해서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딱 두 곡만 부른 뒤 무대를 내려 왔지만 박수와 함성은 계속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름 국제 무대에서 가진 나의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다음날 리조트 매니저가 내게 ‘한국의 밥 딜런’이라는 별명을 하나 붙여 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무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관객들의 열광, 그 날 그 무대 위에서의 추억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기억이다.



여행이란 무릇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중요하다. 때로는 혼자 떠나는 여행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지만,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만큼 즐겁고 흥미로운 일도 없다.  

이번 취재 기간 동안 쇼핑 센터는 물론 대형 음식점도, 사람 북적이는 주점도 없는 태국의 섬마을 ‘코란타’의 리조트들을 둘러보았다. 결혼 5년차, 아내를 버려두고 뉘신지 모를 신혼부부들을 위한 여행지를 찾아 태국의 작은 섬으로‘결혼할 니들은 좋겠다’를 외치며.     

여행 둘쨋날 밤, 일행들이 의기투합하여 ‘리조트 탈출’을 감행했다. 화려하고 안락한 리조트를 벗어나 썽태우를 타고 로컬바로 Go! 축축한 밤공기와 침침한 조명 아래 몇몇 커플들이 바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분위기. 쿵~쿵~ 음악을 타고 전해오는 비트에 수 천년 전부터 피를 타고 내려온 ‘한량 정신’이 온몸에 퍼져 살갗을 뚫고 나오려 했다. 마침 해피아워(happy hour) 시간이여서 싱하 맥주를 할인된 가격에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익숙하지 않은 이국적 분위기를 타고 오른 취기와 야외에 마련된 당구대에서 포켓볼 한판을 안주삼아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새벽까지 내달린 탓인지 다음날 일정이 조금 버겁기는 했지만 간밤의 ‘화려한(?) 외출’은 멤버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수영장 사진을 찍을 때는 멤버들이 자청해서 신혼부부 역할을 해주고 코디와 조명기사 역할도 해 주었습니다. 취재 하는 입장에선 ‘자기들이 알아서 즐겨주는’ 이보다 더 좋은 분위기는 또 없다.

‘여행은 친구를 만들어준다’라는 진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지면을 빌어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두진, 은주, 지현, 효상, 기흥, 은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일은 작은 우연같은 연결고리들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이번겨울에 진행된 일본 북부 3개 현의 취재가 그런 우연같이 온 기회였다. 

첫번째로 방문한 아오모리에서는 스키장에서 눈이 쏟아져내리는 환경 속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취재를 했었다. 눈으로 쌓여있는 나무를 가로지르며 내려가는 스키어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옆에서 바라보는 역할로 만족을 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두 번째 찾아온 기회! 마침 이와테현의 테마는 스키였다. 보드를 배운지 얼마 안되서 잘 내려올수있는지 한 번 국내 스키장을 방문해 점검해보고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스키장에 렌트되어 있던 것은 상급자의 보드였고, 그래도 잘 되겠지 하면서 올라간 스키장 정상에서부터 카메라 가방은 자꾸 부대끼고 얇은 장갑은 너무 손이 시려웠다. 렌트된 상급자 보드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결국에는 산정상부터 거의 썰매 타듯이 엉금엉금 내려오고야 말았다. 이 무슨일인가.

그래서 세 번째는 제대로 하고 싶었다. 아키타현의 스키장은 규모도 거대했다. 그리고 자연 슬로프를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고 해서 나름 기대를 가지고 다시 산 정상에 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연 슬로프는 평지와 오르막이 포함되어서 보드를 타고 내려오기에는 정말 난감했다. 결국 산 중턱까지 또 보드로 썰매를 타면서 내려오고야 말았다. 

올 겨울 한번쯤 근사하게 일본에서 보드를 타보겠다는 우연같이 만들어진 계획은 보드로 썰매를 타고서 기어 내려오는 추억에 묻혀서 지나가고 말았다. 물론 이런 일화는 이와테현의 스키장 정상에서 내려오기를 포기한 K기자와 아키타에서 거북이처럼 내려오던 J기자의 경험에 비하면 그리 험한(?) 추억도 아니지만 스키를 경험해볼 수 있는 3곳의 취재를 우연히 모두 갈 수 있게 되면서 겪게 된 그래도 그리 밉지 만은 않은 기억이다.



멀린 레이크(Malign Lake). 브로슈어를 빠르게 넘기던 손이 멈췄다. 멀린 레이크라는 캐나다 로키지역의 호수를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로키 지역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도 두 번째로 큰 빙하호라는 규모 때문이 아니었다. 멀린 레이크 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라는 비현실적인 호수의 풍광 때문이었다. 그 한 장의 사진으로 나는 캐나다를 꿈꾸게 되었다. 

최근 대한항공의 캘거리 전세기 취재차 7박 9일의 일정으로 캐나다 앨버트에 다녀왔다. 앨버트 주의 아이콘은 로키다. 멀린 레이크가 있는 재스퍼가 취재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 내가 어땠겠는가? 그러나 현지에 도착해 멀린 레이크 방문일정은 간단히 취소되었다. 아직 호수가 녹지 않아 크루즈를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로키에는 멀린 레이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앨버트 남부 워터튼 레이크에서부터 로키를 따라 북부의 재스퍼까지 빙하와 빙하호, 만년설에 둘러싸여 여행하는 일은 가슴 벅찼다. 

어느 사이 로키 종단 일정은 끝나고 로키를 떠나 앨버타의 주도 애드먼튼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애드먼튼에서 가장 맛있다는 레스토랑에서 앨버타 관광청 부청장 부부의 초청 만찬이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애드먼튼을  조망할 있는 고층 타워 레스토랑에서 라이브 음악과 함께 캐나다에서 가장 맛있다는 앨버타 스테이크의 진수를 맛보는 저녁이었다.
어느 순간 레스토랑의 무대에서 정장을 한 노부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흔이 넘었을 지도 모르는 그들이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도도하게, 거리낌 없이 춤을 춘다. 아, 그들의 빠른 스텝을 따라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로키의 장엄한 풍광이 주는 설렘과는 다르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복. 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난 행복했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게다. 한국에 돌아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눈에 선한 로키도 잊지 못하겠지만 그날 밤 고개를 곧추 세우고 텅 빈 무대에 올라 스텝을 밟아가던 그들의 모습은 더욱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몸담고 있었던 회사에서 나는 해외출장이 꽤 잦았다. 그래서 출장을 겸해서 트래비의 취재를 기획하는 일이 종종 있곤 한데, 지난 해 이집트 출장 때의 일이었다. 티켓을 워낙 구하기 힘든 때라 카이로행만 편도로 예약하고 올 때는 대기자 명단에만 올려놓은 채 안심하고 있었다. 무사히 열흘의 일정이 끝나고 카이로공항에서 대기하는데 아뿔싸! 자리가 없단다. ‘설마’가 ‘역시’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인천과 카이로 구간의 비행기는 화요일까지 앞으로 사흘. 혹시나 해서 방콕 혹은 홍콩으로 경유하는 노선까지 알아보았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 “그냥 거기서 사흘 쉬어!” 오호~이런 일이! 겉으로야 무척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애써봤으나 도리가 없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뜻하지도 않았던 여행 기회가 생기다니, 게다가 이곳은 이집트가 아니던가. 그 후로 삼일동안 카이로의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그때 둘러본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카이로 최고의 수크인 ‘한 하릴리’이다. <세계 이색 시장 엿보기>의 한 코너를 장식했던 한 하릴리 기사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비행기 놓쳐서 고생 많았다는 사람들의 염려에 호응해서 표정 관리 하느라 애 좀 먹었다. 전화위복! 이런 고생이라면 멋진 기획 취재를 위해 앞으로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2006년 9월, 나는 두 독자 모델 그리고 S기자와 같이 방콕에 있었다. 

첫날의 어색함도 적당히 무마됐을 무렵 우리는 문제의 그 장면을 찍기로 했다. 마침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광활한(?) 수영장은 오로지 우리들만의 것이었다. 멋진 몸매와 예쁜 수영복으로 무장한 모델들, 그리고 바람잡이의 진수를 보여주던 S기자까지 조건은 더없이 완벽했다.

우리는 화보처럼 밋밋한 컷들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윽고 컨셉이 결정되고 두 모델의 다리가 수영장의 난간을 박찼다. ‘촤촤촤촤촥’ 초당 5연사의 스펙에 빛나는 카메라는 더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수영장 위를 나는 듯 뛰어오른 모델들을 포착한 것이다. 나는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리뷰해 보며 좀 아쉬운 부분을 곱씹고 있었고, 모델들은 즐겁게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을 줄 알았다. 설마 1.4m 풀에서 1.5m 이상의 모델이 허우적대고 있었을 줄이야.

곧 S기자는 구명튜브를 꺼내어 모델들한테 던졌으나 딱 손이 닿지 않을 거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빛의 속도로 수영장을 왔다 갔다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대충 윗옷을 벗고 수영장으로 뛰어 들려던 나는 허우적대며 수영장 가장자리로 와있는 모델들과 눈앞의 튜브를 발견하고 튜브를 던져 그들을 구해냈다. 

다행히 무사히 취재 일정 마치고 그 사건(?)은 잊혀 지는 듯 했으나, 과도한 기대였을까. 사진 정리를 마친 후 트래비 편집국을 들렀을 때, 그 사건은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어 있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모델을 구해준 사람만 S기자로 바뀌어 있었다.



여행하면 지금까지 다녔던 여러 곳들이 떠오르지만, 트래비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몽고 울란바토르 어느 PC방이다. 

중국에서의 2년간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선택한 몽고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가는 여행길. 

베이징에서 출발한 국제열차를 타고 몽고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그 다음날 나는 몽고 초원 테렐지라는 곳으로 갔다. 보이는 것은 초원 위의 말들과 양떼.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몽고 사람들. 하루를 초원 위에 핀 작은 들꽃들을 보며, 양치기 소녀와 함께 돌아다니며, 저녁 무렵 초원 위로 지는 초승달을 보며 그렇게 몽고 초원에서의 하루 밤을 보내고 다시 러시아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울란바토르 시내로 나와서 잠시 PC방에 들렀다.

혼자하는 여행, 처음 가보는 몽고와 러시아. 두렵지 않을 수 없는 여행길이었지만 그 PC방에서 기쁜 소식을 받아들게 되었다. 트래비에서 창간 이벤트로 주최한 여행기 공모에서 은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마음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특전으로 주어진 '트래비 라이터'라는 이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이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난다.

트래비의 시작과 나의 '여행 작가(writer)' 시작점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트래비가 벌써 2돌을 맞고 있다. 트래비는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았을까?
또 내가 쓴 글은 누군가의 배낭을 꾸리게 만들었을까?
트래비 2주년을 함께 축하합니다!


“선배, 난 여행이 좋아요. 그 속엔 놀랄만한 긍정의 힘이 느껴져요.” 고해성사 하듯 속엣 말을 뱉어내던 밤, 때마침 거센 우박은 숙소 창문을 다독였다. 모두는 취했지만, 그것은 각자의 삶에 오래도록 기억될만한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후두두둑, 컴컴한 하늘을 가르며 수줍게 흩날리던 우박. 먼지처럼 건조하던 말레이시아는 그제야 자신만의 색을 갈아입고 세상 어떤 도시보다 낭만적인 밤이 되었다. 첫 취재 도시였던 그곳으로부터 1년, 그동안 트래비는 내 마음의 든든한 만화경이 되어 넓은 세상,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그 끝에는 한 장 사진보다도 언제나 근사한 사람이 남았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매 취재 때마다 각별했던 인연들이 있다.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는 말레이시아의 가슴 뻐근한 사람들, 흔쾌히 모델이 되어준 봉평 장터의 독자 커플, 맛있는 센다이를 선물해준 미아기현 서울 사무소의 김도형씨……. 그 가운데 여행스케치의 ‘송민수 계장님’은 몇 문장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다. 

작년 여름, 강원도 산골짜기의 한 폐교에서 진행된 ‘오싹오싹 커플공포체험’의 담당자였던 그가 아니었더라면 취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귀신으로 분한 스텝들이 지뢰처럼 숨어있는 끔찍한(?) 취재여건도 모자라 얄궂은 장대비까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기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손전등으로 어두운 길을 밝혀주며, 급기야 새벽 4시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숯 향 가득한 바비큐를 맛나게 구워주던 송계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금까지도 ‘다신 커플들 취재 따윈 안 갈 거에요!’, 볼멘소리를 뱉는 나이지만 그 인연이 종국엔 힘들었던 시간들마저도 웃게 만들 참이면 새삼 여행은 긍정의 힘을 지닌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트래비에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 참 많이 행복했던 시간들을 트래비와 함께했다. 트래비와 만났던 여행지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선택하라 했을 때 머릿속에는 함께한 독자들 얼굴이 생생한 영상처럼 스쳤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즐거운 여행이었노라고.

독자와의 여행과는 다르게 도시탐험으로 찾은 도시들도 있었는데, 그 중 시드니가 참 좋았다. 2002년 4월. 당시 광고 스튜디오에서 재직 중이었는데, CF촬영차 시드니에서 멀지 않은 ‘헌터 밸리’라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7일 간의 일정이 끝나는 날 시드니에서 6시간의 짧지만 달콤한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짧은 시간의 아쉬움을 신께서 잊지 않고 계셨던 모양인지 2005년 10월, 도시탐험으로 다시 한 번 시드니를 만날 수 있었다. 시드니 외곽투어 목록에 ‘헌터 밸리’ 이름을 발견하고 흥분이 밀려왔던 기억이 있다.     

도착하던 날 날씨가 흐릿한가 싶더니 비 내리는 하버의 색다른 느낌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결과적으론 좋은 기억이 되어 버렸다. 시드니는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하우스에 내부를 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달링하버의 화려한 불빛과 멋들어진 선상 파티도 즐기고, 옛 건물들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록스 펍투어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어깨 위의 카메라 무게를 잠시 잊기도 했다. 햇볕이 좋은 날  하이드 파크에서 설치된 사진전으로 눈이 즐겁기도 했고, 넓은 잔디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행복했던 시간이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나 지났음에도 시드니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또렷함에 다시 한 번 호주로의 긴 여행을 계획해 본다. 사실 이미 떠날 준비가 끝났다. 트래비를 만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갈 발판을 만들어 준 트래비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작년 서호주 퍼스 취재 여행은 ‘막판 뒤집기’한판이었다. 

독자 동행 취재와 도시탐험 모든 취재를 마치고 난 후 퍼스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던 중 취재때 잠깐 지나쳤던 퍼스 유일의 카지노가 떠올랐다. 색다른 여행 체험을 핑계삼아 남아있던 독자 한명과 동행했던 J기자와 함께 카지노로 향했다. 처음엔 그저 한바퀴 휘 돌아볼 요량이었지만, 재미삼아 참여한 룰렛 게임에서 진짜 ‘재미’를 본 일행 모두 어느새 카지노에 흠뻑 빠져버렸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독자와 J기자는 더 신이 나 블랙잭같은 위험성(?) 높은 게임 테이블까지 기웃거리고, 딴 돈으로 맥주까지 홀짝거리며 우리는 모두 카지노에 심취해버렸다. 결국 잠깐 구경만 하고 오자는 게 새벽 3시를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는 것, 10만원 남짓 투자해 원금 이상은 뽑았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이지 않은가! 사실 잃었다 하더라도 일행 모두가 그 값어치에 버금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그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퍼스, 우리는 그곳에서 또 다른 퍼스의 추억을 만들었다. 



1년여의 기간을 잡고 중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물론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트래비와의 인연이 길어 카메라와 삼각대, 노트북, 외장하드 등 연장(?)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오긴 했지만, ‘일’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다. 허나 제 버릇 강아지 못 준다고 했던가. 하얼빈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일복이 터지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하얼빈까지 동행한 유학원 인솔자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책자와 웹상에서 사용할 사진자료가 필요하다면서 도움을 청해 왔다. 

또 학교 수업이 시작되고 나자 이번에는 기념사진 전문 촬영기사가 돼야만 했다. 중국인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몇몇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사진을 찍고 글도 쓰는 일을 한다고 내 소개를 했더니 유학생센터에서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내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우리네 분식집과 같은 학교 주변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화보촬영(?)까지 맡게 됐다. 자주 식당을 드나들면서 친해진 여종업원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나를 불렀는데 취하는 포즈들이 하나같이 80년대 하이틴 잡지에 나오는 표지모델과 같아서 매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진짜 일은 언제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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