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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부안 - 신경숙 작가와 함께 떠난 문학기차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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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 그 바쁜 삶의 터전 곁으로 빠알간 ‘레이디버드(Lady Bird)'가 달린다. 붉은 바탕에 검정 반점을 가진 무당벌레를 본 떠 만든 관광레저특급열차 레이디버드. 서울역에서 이 레이디버드를 만나는 순간, 그 예쁜 자태에 사람들의 표정이 금새 밝아진다. 교보문고가 격월로 실시하는 문학기차여행을 떠나는 날. 신경숙 작가의 고향이자 소설의 무대가 된 정읍, 부안을 향해 레이디버드는 출발한다.

글+사진=방금숙 기자
취재협조=교보문고 1544-1900

“7시40분에 출발하는 정읍관광열차에 탑승해 주십시오” 

기차를 타는 바쁜 발걸음이 이어진다. 엄마와 딸, 아이들과 함께한 부모, 친구들끼리 저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상기된 얼굴이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떠난다. 아마도 ‘문학기차여행’이기에 가능한 게 않을까.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주는 ‘문학’이 있으니….

열차 실내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 사람들은 “모항에 딱 해당호가 피었을 때 아니야?” “문학기차여행은 다 가봤어. 이제 설명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소사는 600년에 생겨서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는데 내소사로 바뀌었대…”라며 소소한 대화로 여행의 설렘을 더한다. 서울역을 출발하자, ‘아름다운 것들’ ‘민들레 홀씨 되어’ 음악이 흘러나온다. 비가 오는 창밖 풍경과 청아한 목소리의 노래가 참 잘 어우러진다.

신나는 라이브 공연도 펼쳐져 흥을 돋운다. 직접 참가해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는 데 멋진 기타 연주를 준비한 남학생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문학기차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사연을 전하거나 장기를 준비하면 기차여행이 더 특별해진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요’ 노래를 부르며 기차 안은 열기로 달아올랐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하고 박수를 치는 동안 “이게 기차여행의 묘미구나!” 싶어졌다. 

모성(母性) 같은 공간, 정읍

신경숙 작가는 기차 맨 뒤 칸에 자리를 잡았다. 고향 가는 길, 아니 300명의 사람들에게 고향의 보여주러 떠나는 길이다. 작가는 유년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상념에 잠긴 모습이다. ‘외딴방’, ‘풍금이 있던 자리’, ‘부석사’ 그리고 최근에는 6년만의 침묵을 깨고 ‘리진’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작가 신경숙. 기차 안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유년 시절 고향을 만나게 된다. 

작가와의 만남 시간. 신경숙 작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을 회상했다. 

“정읍은 16살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서 자주 들러보는 곳입니다. 인간은 13세 이전 기억들로 많은 것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제게 정읍은 문학이나 저 자신에게 모성 같은 공간, 거름 역할을 하고 평정심을 찾게 해주는 고장입니다. 

라디오만 있는 집에 살았습니다. 귀로 들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세세한 기억, 어두운 마당에서 강아지와 함께한 추억, 마루 밑에서 새끼 강아지가 태어났던 일, 아궁이에 불을 때던 일 모두 아련히 떠오릅니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1992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회사를 그만두고 ‘딱 1년만 글을 써보자’ 하며 도전했고 그녀는 ‘풍금이 있던 자리’로 문단에 등단했단다. 6년만의 소설 ‘리진’이 탄생하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도 계속된다. 리진은 프랑스 대사를 사랑한 조선시대 신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A4 1장으로 2200매를 쓰면서 내가 굉장히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쓰며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1/3은 재료가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기까지는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주인공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집니다! 가끔은 리진이 작가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결국 죽어야하는데 죽이고 싶지 않은 자신과 투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목소리로 작품을 들어 보는 시간으로 작가와의 만남은 여물었다. 그녀는 <종소리>를 154페이지부터 읽어내려갔다. 내소사 당도하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트래비

터널처럼 양옆으로 전나무길이 이어졌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르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전나무길이 육백미터는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나무의 숫자도 그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고갤 돌려보면 전나무 사이로 야트막한 계고기 엿보이기도 했다. 

- 종소리 中


오전 11시. 정읍역에 도착. 버스를 갈아타고 변산반도 채석강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모항을 들릴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스쳐가기로 했다. 멀리서 모항의 바다 풍경과 갯벌을 바라본다. 한 없이 펼쳐진 바다. 서해 바다의 침착함과 고즈넉함 그리고 소박함이 물씬 풍긴다. 바다 반대편으로는 유채꽃의 향연도 이어진다. 부안이 프라하의 연인. 왕의 남자, 불멸의 이순신처럼 촬영지로 각광을 받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버스는 격포항 앞에서 멈춰 선다. 격포항 옆 닭이봉 아래 전체가 ‘채석강’이다. 7000만년 전 퇴적한 것들이 암석이 된 것이라는 데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서도 볼 수 없는 세계적인 퇴적암 관광지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 수 만권의 책들을 쌓아놓은 모습에 한 시인은 “쌓아놓은 책을 바다가 읽느라고…”도 표현했단다. 뺑 둘러 1km 정도지만 사람들은 방파제 위에서 한 눈에 내다보이는 채석강을 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채석강의 끝인 죽막마을을 경계로 북쪽이 적벽강이고, 남쪽이 격포해수욕장을 포함한 채석강인 셈. 이름처럼 사연도 많은 채석강과 적벽강은 변산 해변의 또 다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내소사, 이곳에서 다시 소생하다 

채석강을 지나 40여분 달렸을까. 소설 속에서 만난 내소사 전나무 숲에 닿는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터널처럼 양옆으로 전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 내음이 온몸을 휘감아 기분까지 맑아진다. 사색을 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공간이다. 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요”라는 혜구 두타 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34년(633년)에 창건된 고찰. 전나무 숲을 산책하며 지친 일상도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재충전해본다. 

내소사는 능가산을 어머니 삼아 오롯이 안긴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내소사 대웅전에서 들어서며 사람들은 ‘보물찾기’가 시작한다. 차에서 설명을 들은 마저 색칠을 마치지 못한 한 개의 단청, 그리고 비어있는 한 개의 포를 직접 찾기 위해서다.

“대웅전을 봐라, 못 하나 쓰지 않고 모두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춘 것이라 한다. 그러니 포(泡)를 깎는 일이 이 절 짓는 일의 반은 되얏겄지. 이 절을 지은 대목은 삼 년 동안이나 묵언 수양하며 나무를 깎었다 더라. 한마디 말이 없이 오로지 나무만 깎고 앉아 있으니 사미승 하나가 장난기가 동했던 갑다. 대목이 깎고 있던 포 하나를 몰래 숨겼다는 구나.”

- 종소리 中


ⓒ트래비

대웅전에는 장난기가 동한 사미승이 포 하나를 숨겨 하나가 비어있다는 이야기가 내려져 오고 있다. 또 절을 지은 후 누추한 차림의 화공이 단청을 그리겠다고 찾아와  백일 동안 안을 들여 봐서는 안 된다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99일쯤 사미승이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여다봤다고 한다. 그 곳에는 흰새가 부리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소리에 놀라 날아가 버렸다고. 사연을 담은 단청과 포를 찾는 것은 내소사를 찾는 또 다른 재미다. 문 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꽃살무늬도 내소사만의 독특함이 담겼으니 눈 여겨 보자.

“국화인가, 연꽃인가.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은 주춪돌. 그 너머의 나무문에 아른아른 꽃살무늬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부터 채색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세월의 풍화 속에 지워진 것일까. 나무결을 따라 새겨진 꽃문양은 하나하나 돋을새김을 한 것같이 이를 데 없이 정교했다.”

- 종소리 中

정읍역에서 다시 레이디버드에 올라탄다. 시간에 딱 맞춰 따뜻한 도시락이 자리에 얹혀있다. 식사를 하며 저문 들녘을 바라본다. 문득 “아, 내가 문학과 사색, 휴식과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몰려온다. 다음 작가는 누구일까 슬쩍 물어본다. 문학기차여행은 잊고 사는 문학의 정서와 삶의 여유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는 일상의 여행. 곧 이 여행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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