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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④ “난 조선 사람이지요” 옌볜여행 1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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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난 조선 사람이지요” 옌볜여행 1


ⓒ트래비

이런저런 생필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하얼빈 시내로 나섰던 어느 날이었다. 매장들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 둘이 나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국 학생들이네” 하는 소리는 분명 우리 말이었다. 나도 아주머니들을 향해서 눈인사를 하며 “한국분이신가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난 조선 사람이지요”였다. 그날 이후 ‘조선 사람’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더불어 그 ‘조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것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부풀어 갔다. 

사실 조선족 아주머니의 그런 대답은 다분히 일상적인 것이었다. 분단된 고향땅을 두고 스스로를 한국 사람 혹은 북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리고 엄연히 중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자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조선’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끄러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일 것이라는 인식의 협소함 때문이었다.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으면서도, 한 개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나의 인식 밖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옌볜으로의 여행은 전부터 계획했던 바였지만, 서둘러 일정을 앞당긴 것도 바로 그 조선족 아주머니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동북 3성, 그러니까 지린성 동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옌볜(연변, 조선족 자치구)뿐 아니라 헤이룽장성의 하얼빈과 무단장, 그리고 랴오닝성에도 조선족들이 적잖게 분포돼 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정의는 ‘중국 땅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들’이다. 한말 외세의 침공과 일제의 수탈을 피해 옛 발해와 고구려의 영토인 만주로 넘어간 그들은 척박한 땅을 개척하는 한편 일제에 맞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후 나라가 독립하고 두 동강이 나는 과정에서 일부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일군 삶의 터전에 머무른 조선족들이 현재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트래비

기차로 하얼빈 동역에서 출발해 옌볜의 주도인 옌지(연길)를 거쳐 두만강을 끼고 있는 투먼(도문)으로 가는 길은 12시간이 꼬박 소요되는 거리다. 저녁 7시30분, 하얼빈 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 한 분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한국분이죠?”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살짝 웃음이 실려 있는 그의 눈가는 하회탈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문’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그의 나이는 33살,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멋쩍은 나이였지만 얼굴은 30대 후반으로만 보였다. 

그 조선족 형은 내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사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작았던 탓도 있지만 생경한 어휘와 선뜻 어감을 잡아낼 수 없는 어미의 사용은 대화를 어렵게 했다. 대략 70% 정도 이해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도 말을 건넬 때는 같은 뜻의 다른 단어 두 개를 연이어 사용하는 등 하나의 언어라고 해도 소통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옌지 시내에서 ‘3일 만에 살까기’라는 간판을 보고 한참을 웃었지만, ‘다이어트’와 ‘살까기’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선족 자치구라고는 하지만 현재 옌볜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은 30~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족들이다. 한국 등지에서 목돈을 마련해 외지로 나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조선족 여성들이 이민족에게 시집을 가는 경우도 많아 그 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통일에 대해 물으니 그는 “안 될 꺼라요. 아버지가 둘인데 한집안이 되겠어요?”라며 다소 냉소적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조선족이나 모두 한가지”라며 그냥 웃는다. 

기차는 어두워진 하얼빈을 빠져나와 지린성을 향해 가고 있다. 객차 안 곳곳에서 중국어와 섞여 들려오던 한국어, 아니 ‘조선어’도 잠잠해졌다. 옌볜으로 가는 길은 왠지 떠난다기보다는 돌아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두만강의 푸른 물과 뱃사공, 박경리의 <토지>와 윤동주 등을 떠올리며 난 고향으로 가듯 설레지만 편안한 수면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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